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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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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과 공공주택은 공존할 수 없을까요

등록 2021-07-17 01:55 수정 2021-07-17 11:49

저는 공원을 좋아합니다. 예전에 회사(서울 마포구 공덕동) 근처에 살 때 효창공원과 국회 잔디밭 같은 곳을 자주 찾아갔습니다. 특히 국회 잔디밭은 넓고 별 시설이 없고 사람도 적어 가족과 호젓한 시간을 보내기 좋았습니다. 혹시 국회 잔디밭을 어떻게 이용하는지 모르시나요? 그냥 국회 출입문에서 “놀러 왔다”고 말하고 들어가시면 됩니다.

제1371호 표지이야기 ‘공공주택 10만 채 용산에 지을까’를 쓴 뒤 독자 반응은 딱 두 가지로 갈렸습니다. 하나는 ‘공원으로 만들어 녹지를 유지하자’는 것이고, 둘은 ‘공공주택을 지어 주거난을 덜자’는 것이었습니다. 얼핏 두 의견은 상충하는 것 같지만, 사실 얼마든지 공존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용산기지 공공주택 건설에 찬성한 전문가들 가운데 용산기지 전체(300만㎡·91만 평)를 공공주택 용지로 쓰자고 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보통 전체 터의 20~30%만 쓰자고 했고, 최대가 50%였습니다. 저도 20%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머지 80%는 공원으로 쓰면 됩니다. 저는 용산기지에 만드는 공원이 반드시 90만 평이어야 한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70만 평이어도 넉넉하다고 봅니다.

어쩌면 서울에서 집 없이 사는 500만 명에겐 값싸고 품질 좋은 집이 공원보다 더 필요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공원을 누리려는 사람들이 집 없는 사람들에게 공원의 20% 정도만 양보하는 건 어려울까요? 특히 서울 집값 폭등으로 미래의 꿈을 잃고 변두리로 밀려나는 젊은이들을 생각하면 ‘90만 평’이 그렇게 ‘중헌’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공원 복지의 형평성도 생각하게 됩니다. 국토교통부는 서울 노원구의 그린벨트인 태릉골프장(22만 평)에 1만 채의 아파트를 공급할 예정입니다. 여기는 자연환경이 매우 우수한데도 집이 부족하다며 그린벨트까지 풀어가며 아파트를 지으려 합니다. 근데 아시다시피 노원구는 서울에서 아파트 밀도와 주거지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지역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얼마 남지 않은 녹지를 없애서 아파트를 짓겠다는 겁니다.

이런 상상을 해봅니다. 용산기지의 20만 평과 태릉골프장의 20만 평을 대토할 순 없을까? 둘 다 국방부 소유여서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주거지로서 훨씬 입지가 좋은 용산에 공공주택 5만~10만 채를 공급하고, 대신 태릉골프장은 공원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그러면 용산구엔 70만 평, 노원구엔 20만 평의 새 공원이 생깁니다. 이게 90만 평 대 0평보단 사회 정의, 공원 복지의 형평성에 더 맞지 않을까요?

2022년 3월엔 다음 대통령선거가 열립니다. 현재 경쟁 중인 대통령 후보들이 대한민국 시민을 위해 공원과 공공주택이 공존하는 사회 비전을 제시해주기 바랍니다. 입지 좋고 디자인 좋은 공공주택 비율이 20% 이상 되는 사회, 모든 시민이 쾌적한 공원 옆에 사는 사회, 어떨까요? 그런 사회로 가는 하나의 길로서 대선 후보들이 ‘용산기지 공공주택’ 문제를 한번 진지하게 검토해주길 희망해봅니다.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

*1371호 표지이야기 - 용산에선 실현될까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064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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