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마지막 날,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난다며 고향을 찾은 아빠가 아침 산책을 나갔다가 뒷산에서 쓰러진 채로 발견됐다. 서울과 대구, 경남 진해에 사는 우리 가족은 경찰의 연락을 받고 아빠 고향으로 달려갔다. 주말이라 꽉 막힌 고속도로에서 나는 경찰과 통화했다. “119 구조대가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사후경직이 이미 시작된 상태였습니다. 가족은 언제 도착하시죠?” 도착 시간이 늦어질수록 차가운 땅에서 아빠가 머물 시간이 길어질 텐데, 조바심이 났다. 아빠를 우선 옮기기로 했다. 다만 마지막 모습은 사진으로 남기기로 했다. 경찰은 확인하고 싶으면 찾아오라고 했다.
고향에 있는 선산에 아빠를 모시고 출근한 뒤에도 그 사진이 마음에 걸렸다. 몇 번이나 망설였지만 약속을 잡진 않았다. 기자로 일하며 현장 사진을 꽤 봤지만 이번만은 피하고 싶었다. 며칠 뒤 엄마가 아빠가 있는 선산에 간다고 나섰다. 더는 외면할 수 없었다. 다시 아빠 고향으로 가며 경찰에게 전화했다. 교대 근무하는 경찰이 출근할 확률은 몇 퍼센트일까. 오늘 연락이 닿지 않으면 그 핑계로 가지 않을 참이었다. “오늘 근무입니다. 오후 2시까지 경찰서로 오시죠.” 핑곗거리가 몽땅 없어졌다.
책상을 두고 마주 앉은 경찰이 A4용지 50장 정도 묶인 파일을 건넸다. 뒷산 산책길 입구가 첫 사진이었다. 한장 한장 넘기는데 경찰 뒤를 쫓아 올라가는 것처럼 실감 났다. 저 멀리 바위 옆에 쓰러진 아빠가 보였다. 빠른 손놀림으로 다가가 얼굴을, 가슴을, 다리를, 발을 살폈다. 그 마지막 모습에서 의사가 사체검안서에 직접 사인을 ‘심폐기능 저하에 의한 사망’으로, 그 원인을 ‘뇌경색’으로 쓴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아빠 소지품을 찍은 마지막 사진까지 찬찬히 보고는 파일을 덮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고 나왔다. 아무렇지 않은 듯 회사로 돌아와 마감 시간에 맞춰 기사를 고치는 일도 마쳤다. 그러나 밤늦게 집으로 돌아와 무너져버렸다. 불도 켜지 못한 방에서 한참을 소리 내어 울었다. 아빠가 마주한 죽음이, 정확히는 그 순간의 두려움이, 외로움이 가슴에 사무쳤다. 홀로 견뎠을 아빠의 고통이 나를 후벼팠다.
황망한 이별을 겪고 나서 나는 느닷없는 죽음이 남기는 아픔을 어렴풋이 가늠했다. 아들의 마지막 모습을 담은 사진을 7년째 가방에 넣고 다니는 동수 아빠 정성욱씨가 세월호가 바닷속에서 떠올랐던 2017년 봄에 마주한 공포 같은.
“(2017년 3월23일 새벽에) 세월호가 딱 뜨고 올라오기 시작하는데 (2014년 봄에 봤던) 아이들이 하나둘씩 눈앞으로 스쳐 지나가더라. 우리 동수가 (2014년) 5월6일에 나왔는데 그 전에 (세월호에서 주검으로) 나온 애들을 거의 다 봤으니까. 그 아이들이 지나가다 딱 멈추는 거야. 순간 나도 모르게 몸이 부들부들 떨리면서 마비가 왔어. 몸 왼쪽에. 그때 엄마들이 그 옆에 있으면서 마사지를 해줘서 다행히 마비가 풀렸는데. (아이들) 죽음의 장소를 본다는 게, 그 첫 느낌은 무서움이더라.”(2019년 4월10일 인터뷰)
아이가 살기 위해 몸부림쳤을 마지막 고통을 고스란히 품은, 그 괴물 같은 배를 마주하며 엄마 아빠가 왜 그토록 괴로워했는지 늦게나마 헤아릴 수 있었다. 2020년,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냈지만 나는 잃기만 한 것은 아니라고 믿고 싶다. 더불어 내 곁엔 2021년, 더 사랑해야 할 소중한 사람도 많이 남아 있으니.
덧붙임. 2020년 송년호(제1343호) 표지이야기는 <한겨레21> 취재원과 필자·기자 19명이 ‘올해의 하루’를 일기 형식으로 썼습니다. 이주영 화가가 그림일기로 기록한 ‘길 위의 사람들’은 포토스퀘어에 담았습니다. ‘만리재에서’도 일기체이니까 21번째 ‘2020, 우리의 일기’인 셈입니다. 코로나19를 국내외에서 겪어내고 디지털성범죄·검찰개혁·기후변화·차별금지 등 한 해를 꿰뚫은 이슈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이들은 때론 절망하지만 결코 희망을 놓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분명 잘해내고 있습니다.
정은주 편집장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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