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이 디지털성범죄를 정리하고, 앞으로 기록을 꾸준히 저장할 아카이브(stopn.hani.co.kr)를 열었습니다. 11월27일 나온 <한겨레21> 1340호는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이후 1년동안 일궈온 성과와 성찰, 그리고 여전히 남은 과제로 채웠습니다. 이곳(https://smartstore.naver.com/hankyoreh21/products/5242400774)에서 구입 가능합니다.
“사이트 안 들어가지네요.”
11월23일 오전 9시30분, 방준호 기자가 메신저 슬랙의 ‘#n번방’에 메시지를 올렸습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한겨레> 지면에 실린 기사가 인터넷에 잘 출고됐는지 살펴보고 잠시 눈을 붙인 탓에 오전 10시에야 메시지를 확인했습니다. 화들짝 놀라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봤습니다. 괜찮습니다. “지금은 되네.” 편집장이 잠든 사이, 장수경 기자가 닫힌 사이트를 열려고 개인 카드로 서버를 추가로 샀다는 걸 알았습니다. 회사에서 보안 문제를 걱정하며 외부 서버를 사용하자고 했는데 예상보다 많은 접속자가 몰려 문제가 발생한 모양입니다.
처음 하는 일이었기에 예기치 못한 ‘문제’가 수시로 터졌습니다. 인터넷 사이트(아카이브)와 통권호(104쪽)를 함께 만드는 ‘디지털성범죄 끝장 프로젝트 너머n’(너머n 프로젝트)을 진행하면서 말입니다. 지난 8개월간 너머n 프로젝트를 맡은 장수경·고한솔·방준호 기자는 이 문제들을 말없이 해결해왔습니다. 그것이 디지털성범죄와의 싸움에 사활을 건 이들에게 우리가 힘을 보태는 방법이니까요.
2019년 7월 20대 대학생 ‘추적단 불꽃’은 성착취물이 유포되는 텔레그램 방을 발견합니다. 2019년 11월 <한겨레>가 텔레그램에 퍼지는 성착취 세계를 보도했습니다. 대다수의 반응은 시큰둥했습니다. 가해자들은 오히려 활개를 치며 “내 방도 소개해달라”고 조롱했습니다.
반면 피해자 편에서 분노한 여성들이 있었습니다. 디지털 공간에서 잃어버린 여성의 안전을 다시(Re) 세우는(SET) 것을 목표로 익명의 여성들이 모여 프로젝트 ‘리셋’(ReSET)을 만듭니다. 이들은 국회에 텔레그램 성착취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국민동의청원을 내고 경찰을 압박했습니다. 서울지방경찰청은 ‘박사’를, 경북지방경찰청은 ‘갓갓’을,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와치맨’을 알고 있었지만, “잘 나와봐야 2년6개월짜리”라고들 생각해 텔레그램 성착취 수사를 미뤘는데, 뒤늦게 뛰어들었습니다. 그리고 2020년 3월 박사를 잡았습니다. 25살 남성 조주빈. 세상은 온통 ‘조주빈’에 관한 뉴스로 뒤덮였습니다.
늘 그렇듯 언론은 빠르게 달아오르지만 빠르게 식어버립니다. 여성들이 또 나섭니다. 솜방망이 처벌이 나오지 않도록 ‘N번방 성착취 강력처벌 촉구시위’(eNd)를 구성해 전국을 돌아다니며 재판을 방청했습니다. 지켜보는 눈이 적어지면 가해자들이 안심하고 판사도 재판에 소홀해질까봐 한마음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2020년 11월26일 조주빈은 징역 40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신상정보 공개·고지 명령 10년,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취업 제한 10년,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 30년, 유치원과 초등학교 출입 금지, 피해자에게 접근 금지, 압수물 몰수와 1억604만원 추징…. 무엇보다 조주빈과 공범들은 ‘범죄조직’으로 인정됐습니다. 피고인들은 일면식도 없고 서로의 신상도 모르는데 무슨 조직이냐고 항변했지만, 재판부는 사이버 범죄에 범죄단체조직죄를 처음 적용했습니다. 2019년 6월, 세계 최대 아동 성착취물 사이트 ‘웰컴투비디오’를 운영한 손정우에게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했던 법원이 바뀐 것입니다. 수많은 여성이 마침내 단단한 장벽에 균열을 냈습니다.
<한겨레21>은 그 옆에 섭니다. 먼저 지난 1년간 밝혀진 디지털성범죄 세계를 정리하고, 앞으로의 기록을 꾸준히 저장할 너머n 프로젝트 아카이브(stopn.hani.co.kr)를 엽니다. 그리고 ‘너머n’ 통권3호를 펴냅니다. 통권호는 한 가지 주제로만 제작하는 특별한 잡지로, 지난 6월 ‘코로나 뉴노멀’ 통권1호와 8월 ‘<한겨레21>이 사랑한 작가 21명’ 통권2호를 냈습니다. 통권3호는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이후 일궈온 성과와 성찰, 그리고 남은 과제로만 채웁니다. 다섯 개로 구성된 각 장은 피해자 4명이 연대자·피해자·가해자에게 보내는 6개의 편지로 엽니다.
1부(여성에서 여성으로)는 여성 연대로 만들어낸 승리의 역사를 결정적 장면으로 그려냅니다. 그 중심에서 활약한 추적단 불꽃, DSO, 리셋, eNd, 마녀,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가 릴레이 인터뷰를 합니다. 2부(범죄자들)는 텔레그램 성착취가 처음 보도될 때부터 주범 조주빈이 징역 40년을 선고받을 때까지 그 1년을 되돌아봅니다. 멈춰버린 피해자의 시간이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3부(방조자들)는 디지털성범죄 앞에서 방관한 수사기관과 법원, 인터넷 업체, 그 은둔을 돕는 법과 제도를 다룹니다. 4부(기술자들)는 우리 곁을 오늘도 맴도는 ‘여성혐오’를 다양한 시각에서 조명합니다. 5부(남은 것들)는 ‘디지털성범죄 그 뒤’ 우리에게 남은 과제를 훑었습니다. 경찰의 ‘위장수사’ 합법화와 더불어, 오스트레일리아처럼 정부가 피해자 편에 서겠다는 메시지를 내보내길 제안합니다.
디지털성범죄가 없어질 그날까지 묵묵히 기록하겠습니다. 피해자 편에서 우직하게 나아가면 끝이 오리라 믿습니다.
정은주 편집장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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