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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토크] 태평양 건너편 한국의 반면교사

등록 2020-11-22 11:27 수정 2020-11-24 01:48

2020년 미국 대선에서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승리를 사실상 확정지었습니다. 현직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버티지만 그럴수록 추레해 보입니다.

미국 대선은 여느 나라의 선거와 달리, 전세계가 깊은 관심을 갖고 지켜봅니다. 대다수 나라의 언론이 앞다퉈 엄청난 양의 기사를 쏟아냅니다. <한겨레21> 국제 기사를 담당하는 저도 3주 연속 미국 대선 기사를 썼습니다. 한국 주간지가 미국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도할 때는 몇 가지 어려움이 있습니다.

한국은 미국보다 날짜가 하루 빠릅니다. 현지 동부 시각과의 시차가 14시간(‘서머타임’ 적용 땐 13시간)입니다. 아침에 신문을 읽는 한국 독자들은 미국에서 일어나는 일을 날짜로 이틀이나 지나서야 ‘최신 뉴스’로 봅니다. 인쇄매체 언론사들도 실시간 온라인 뉴스 공급을 강화하는 이유입니다. 또 하나는 ‘주간지’라는 발행 주기입니다. 방송·인터넷 매체나 일간신문과 똑같이 속보를 전할 수 없는데다, 적어도 일주일 동안은 유효한 기사를 써야 합니다. 특정 주제에 대한 심층 뉴스에 초점을 맞추는 이유입니다.

2020년 미국 대선을 치른 11월3일은 현재시각 화요일, 한국에선 다음날인 수요일 오후에나 출구조사 결과가 공개되고 당선자 예측이 나왔습니다. 그것도 수많은 여론조사와는 정반대였습니다. 매주 목요일은 주간지 기사 마감일입니다. 특집 기사를 준비하고 전문가 원고도 받아야 하는데, 마감 직전까지 당선자를 짐작조차 못한 채 글을 써야 하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설상가상, 이번 미국 대선은 개표 사흘째에 바이든이 앞서가던 트럼프를 추월하는 대역전 드라마가 일어났습니다. 관전자는 극적인 상황을 즐길 수 있지만, 팩트를 확인하고 의미와 전망을 분석해야 하는 주간지 기자들은 ‘죽을 맛’이었을 겁니다.

밤늦도록 미국 개표 방송에서 눈을 떼지 못하다가 의문이 들었습니다. “나는, <한겨레21>은, 세계의 모든 언론은 왜 미국 대선을 제 나라 일처럼 지켜보고 보도하는 걸까?” 미국이 전세계와 인류의 안녕에 큰 영향을 미치는 ‘슈퍼 파워’여서만은 아닐 겁니다. 부동산 재벌이자 TV 리얼리티쇼 진행자였던 트럼프가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치며 집권한 4년 동안 미국과 세계는 어느 때보다 극심한 갈등과 불화로 몸살을 앓았고, 미국 사회의 분열과 경제 양극화의 골은 더욱 깊어졌으며, 시민권과 민주주의가 심각한 위협을 받았습니다.

대다수 보통 사람에겐 남 일 같은 정치가 얼마나 일상의 삶을 흔들어놓을 수 있는지, 좋은 정치 지도자를 뽑고 매의 눈으로 감시하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를 트럼프는 생생하게 보여줬습니다. 태평양 건너 우리에게도 유용한 반면교사입니다. ‘트럼피즘’을 다룬 제1338호 표지이야기에 국내 독자들이 큰 관심을 보인 것도 그래서일 겁니다. “모든 나라는 그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말의 일반화 오류와 폭력성에도 불구하고, 공동체의 주인 의식에 대한 경구로 되새길 만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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