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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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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재에서] 어린이의 마음으로

등록 2020-05-02 14:29 수정 2020-05-07 10:58
1311호 커버

1311호 커버

TV가 없는 집에서도 주말이면 아이들을 돌보는 프로그램을 휴대전화로 챙겨봅니다. 연예인 부모가 눈에 거슬리지만 아이들의 오밀조밀한 일상을 엿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넘쳐나는 호기심으로 예측불허의 말과 행동을 쏟아내는 아이들과 함께 웃고 울다보면 주중에 쌓였던 옹졸한 마음이 누그러지고 여유가 찾아옵니다.

코로나19로 ‘집콕’ 하는 어린이와 부모가 <한겨레21>을 함께 읽으며, 반나절이라도 즐기길 바라는 마음에서 제1311호는 ‘어린이 잡지’를 닮은 어린이날 특집호로 꾸몄습니다. 딸을 키우는 서보미 기자가 전체 기획을 맡아 큰 주제를 ‘몸’으로 정하고, 초등학교 5학년 황혜원 어린이가 몸에게 쓰는 손편지로 표지이야기를 열었습니다. 만날 방구석에서 휴대전화와 뒹굴며 지루함에 몸부림치는 아이들이 엄마 아빠와 몸으로 놀 수 있도록 ‘방구석 몸놀이’ 비법을 소개해 8가지 몸놀이는 아빠 기자들이 먼저 체험했습니다. 아이들은 재밌다고, 아빠들은 힘들다고 난리입니다. 스웨덴 라떼파파처럼 몸놀이가 온 가족의 일상에 스며드는 날이 곧 오겠지요?

어린이 취재원 20여 명의 목소리가 곳곳에 스며 있답니다. 유튜브 채널 <도티TV>를 운영하는 콘텐츠 크리에이터 도티에게 외모, 사람 관계, 게임, 미래 등 고민을 상담하고, 화난 엄마 아빠를 풀어주는 나만의 필살기를 공개합니다. ‘용돈 플렉스(뽐내고 자랑하는 일)’ ‘인싸(인사이더)·아싸(아웃사이더)’ 구분법 등도 시원하게 털어놓습니다. 코로나19, 엔(n)번방, 국회의원 등 시사 이야기는 어린이들이 던진 물음에 전문가와 기자들이 친절하게 답했습니다. <한겨레21>에 ‘초~상식시대’ 만화를 연재했던 만화가 신명환씨의 아들 신기원(고1)·기준(중1)·기성(초1) 형제가 낸 그림 연상퀴즈는 관찰력과 상상력이 두루 필요합니다. 저는 절반도 못 맞혔습니다.

어린이 취재원은 <한겨레21> 기자들이 다 뛰어들어 인터뷰했습니다. 저도 두 초등학생을 만났는데 40분간 이야기하며 몇 번이나 웃음을 터뜨렸는지 모릅니다. 공부 스트레스에 짠하다가도 생동감과 천진함에 흐뭇해졌습니다. 몇 명은 이름과 얼굴을 비공개하길 원했지만 대부분은 사진을 꼭 실어달라고 당부, 또 당부했습니다. ‘어린이날 특집호를 만든 친구들을 소개합니다’를 따로 마련한 이유입니다. 표지 모델로 엄마 아빠와 몸놀이하며 사진 찍은 홍서진(초6)·서림(초4) 남매는 “더 놀고 싶어서 (사진 촬영을) 끝내기가 아쉬웠다”고 했습니다. 다음 기회가 오면 “꼭 (다시) 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이렇게 적극적인 취재원을 만난 게 얼마 만인지요.

앞으로도 <한겨레21>은 한 주제를 충실하게 다루는 통권호를 두 달에 한 번꼴로 발행하는 ‘선택과 집중’을 하려 합니다. 한 권의 책으로 손색없는 통권호를 만들어 전자책(e-Book)으로도 나눠 독자 여러분이 필요할 때마다 펼쳐 보실 수 있도록 할 계획입니다. 새로운 도전과 실험을 지켜봐주십시오. ‘늘 갈망하며 우직하게 나아가겠습니다.’(Stay hungry, Stay foolish.)

덧붙임. 한 달간 준비한 어린이날 특집호를 마무리할 즈음에 경기도 이천시 물류센터 신축공사 현장에서 일어난 화재 사건이 전해졌습니다. 38명이 죽고 10명이 다치는 대형 참사입니다. 피해자는 대부분 하루 벌어 하루 사는 노동자입니다. 어린이 잡지에 싣기 어려운 슬픈 뉴스를 받아들고는 마음이 무겁습니다. 안전불감증으로 초래되는 인재(人災)를 반드시 우리 세대에서 멈추도록 힘을 보태겠습니다. 미래 세대를 이끌어갈 어린이를 위한 날, 다짐합니다.


정은주 편집장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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