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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제는 감시

등록 2020-04-18 13:51 수정 2020-05-03 04:29
4월15일 서울 종로구 경복고등학교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개표요원들이 비례대표 투표용지를 수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4월15일 서울 종로구 경복고등학교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개표요원들이 비례대표 투표용지를 수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선거는 여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보수야당은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범진보 180석” 발언을 “여당 180석을 막자”는 내용으로 바꿔 유세 과정에 써먹었는데, 그대로 되었다. 양대 세력이 최대 결집한 덕이다.

이번 선거는 여당의 우세 속에 보수야당이 추격하는 구도였다. 여론조사에서 우위에 있었음에도 박빙 선거구에서 여당의 승리를 예측할 수 없었던 이유다. 승패를 떠나 미래통합당이 얻은 표를 보면 보수층 결집이 없었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차명진 막말’ 등의 변수로 결집에 가속도가 충분히 붙지 않았던 것뿐이다.

이례적으로 높은 투표율은 보수야당 지지층이 결집한 만큼 정부·여당 지지자들 역시 투표장으로 몰렸음을 방증한다. 이 현상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안정 희구적 투표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국정 농단과 탄핵에도 전혀 반성하지 않는 보수야당의 태도가 여당 지지층의 적극적인 ‘응징 투표’로 이어졌다고 봐야 한다.

일부 수도권 지역구에서 보수야당의 선전은 정부 부동산 정책에 반발한 결과로도 보인다. 여당 후보들이 ‘강남벨트’에서 일제히 종합부동산세 완화 공약을 걸었던 것도 이 효과를 우려한 것이다. 부동산이나 교육 문제 등 구체적인 이해관계가 걸린 지역의 선거에선 욕망이 명분을 종종 이긴다. 이 현상을 거스르려 한다면 우리 미래가 대의명분에 달렸다는 것을 유권자에게 설득해야 한다. 그러나 종부세 완화 공약은 개혁 정권에도 대의명분은 허울뿐임을 증명한 셈이었다.

거대 양당의 비례정당 창당은 제도의 대의명분이 당장의 유불리 앞에선 무력하다는 점을 보여준 또 다른 사례다. 유권자는 심지어 열린민주당에 주려던 표까지 ‘더불어스’에 몰아주는 것으로 이런 ‘꼼수’를 인준했다.

유권자의 선택을 함부로 깎아내려서는 안 된다. 이 선택의 배경엔 바뀐 선거제도의 최대 수혜자가 될 것으로 예상했던 정의당의 대의명분에 대중이 확신을 갖지 못했다는 사정이 있다. 정의당이 더는 여당을 중심으로 공전하는 위성에 만족하면 안 되는 이유다. ‘언더도그 효과’(객관적 전력이 열세여서 질 것 같은 사람이나 팀을 동정하는 현상)를 누리지 못해 대구에서 큰 표차로 낙선한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고 했다. 지역주의 부활을 쉽게들 말하지만 ‘밭’의 사정도 들여다봐야 한다. 보수야당이 영남에서, 특히 부산·경남 지역에서 선전한 것은 경기 부진으로 정권에 대한 정치적 피해의식이 이미 형성됐기 때문이다. 호남에서 지역주의가 무너진 것처럼 보였던 건, 지난 총선이 대권 주자 결정전처럼 치러졌기 때문이다. 정권이 바뀐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정치개혁을 추진한 참여정부 이후 실리주의적 선택으로 치우쳤던 수도권은 국정 농단과 탄핵 이후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온 듯 보인다. 지역주의든 실리주의든 그것을 뛰어넘으려면 대의명분에 호소하는 거로 승부를 보는 정치가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여당은 대의명분을 동반하는 ‘개혁’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로, 야당의 비협조와 ‘발목잡기’를 꼽아왔다. 이제 안정적인 과반 의석을 차지함으로써 여당은 ‘4+1’ 등의 협의 틀이나 ‘동물국회’의 위협 없이도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 개혁이 시작되는 건지, 아니면 그저 개와 늑대의 시간이 되고 마는 건지는 더 지켜볼 일이다.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 당선 직후 그의 팬클럽은 “이제는 감시”를 외쳤다는데, 지금 많은 사람이 비슷한 심경일 것이다.

김민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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