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 제공
“나중에 기자가 돼 모든 걸 알게 된다면, 그래서 <한겨레21>을 봐도 새로운 내용이 없으면 그땐 구독을 끊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아직 구독하고 있다.”
<한겨레21> 20년 구독자 L은 기자다. 중·고등학교 시절 <한겨레>를 배달하는 보급소가 없어서 신문을 직접 돌렸던 세대라고 털어놓은 L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어수선했던 세기말에 대학교를 다녔다. L은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으로 <한겨레21>을 구독했다. 기사를 읽으면서 기자를 꿈꿨다고 한다. 2002년 기자가 된 L은 정은주 신임 편집장의 친구이기도 하다.
친구가 <한겨레21> 편집장이 됐다는 소식을 듣고 어떤 기분이었나. 편집장 칼럼 ‘만리재에서’를 오랫동안 읽으면서 <21> 편집장에 대한 경외감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내 친구가 편집장이 됐다고 하니 갑자기 출세한 느낌이 들었다.(웃음)
정 편집장은 어떤 사람인가. 정 편집장 카카오톡 프로필 소개글에 “지는 싸움을 한다”고 쓰여 있다. 그 뜻을 물어보진 않았지만 나와는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소심해서 싸움을 잘 못하는데도 이기는 싸움만 해온 것 같다. 그래서 정 편집장을 존경한다. ‘여자 사람’들이 친해지면 보통 하나는 거슬리는 부분이 있게 마련인데, 그는 정말 그런 게 전혀 없는 ‘미친’ 친화력을 갖고 있다. 오래된 취재원도 계속 연락해서 만날 만큼, 의리도 있고 정말 좋은 친구다.
기억에 남는 일화는. 세종시 기획재정부를 출입했는데 같이 힘든 시기를 보냈다. 2년 전쯤 최저임금 인상과 관련해 기사를 쓸 때, 어떻게 기사를 잘 쓸지 함께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집도 가까워서 자주 만났다.
기자로 일하며 바쁜 와중에 <21>을 읽기 쉽지 않을 텐데, 어떤 부분이 계속 <21>을 읽게 했나.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을 추적 취재한 보도가 기억에 강하게 남아 있다. 우리 사회 곳곳에 소수자와 약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만, 잘 드러나지 않는 이야기를 <한겨레21>이 계속 상기시켜주는 게 좋다. 최근에는 방준호 기자와 조윤영 기자가 쓴, 한국지엠과 현대중공업 해고 노동자들의 기사가 생각난다. 지금은 부처에 묶여 재미없는 기사를 쓰지만 ‘그런 취재를 하고 싶은데’ 생각하면서 대리만족을 한다.
정 편집장의 <21>에 한 말씀.
앞선 류이근 편집장이 ‘독자후원제’도 도입하고 많은 변화를 이뤘던 것 같다. 편집장마다 <21>을 자기 색깔에 맞춰 만들었다. ‘세월호 탐사보도’나 ‘한-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FTA) 번역 오류’ 등 끈질긴 취재력을 지닌 정 편집장이 어떤 <21>을 만들지 기대가 크다. 옆에서 많이 도와주시길.
이재호 기자 ph@hani.co.kr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12시간반 조사 이재명 “기소 목표로 조작”…검, 2차 출석 요구
이케아 광명점에 ‘물난리’…엘리베이터에 갇히고 영업 조기 종료
이재명 33쪽 서면진술서 혐의 전면 부인…검찰, 영장 ‘만지작’
근골격을 갈아 만드는 빵…“노동자들은 왜 이리 순할까요”
계속 춥다…일요일 낮 다소 누그러지고 중부지방엔 눈
해질녘 고물상, 할머니는 6천원 쥐고 다시 폐지 주우러 갔다
투사가 된 두 엄마 “참사·재해 바뀌지 않는 세상 너무 처절하다”
어떤 견제도 거부하는 윤 대통령은 무소불위 권력자?
사슴 사라진 작은 섬, 늑대는 ‘해달’ 먹고 버텼다
혈당·혈압 낮추려면…60분 주기 “NO”, 30분마다 5분씩 걸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