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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가 편집장이 됐어요

등록 2020-04-04 06:39 수정 2020-05-02 19:29
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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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기자가 돼 모든 걸 알게 된다면, 그래서 을 봐도 새로운 내용이 없으면 그땐 구독을 끊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아직 구독하고 있다.”

20년 구독자 L은 기자다. 중·고등학교 시절 를 배달하는 보급소가 없어서 신문을 직접 돌렸던 세대라고 털어놓은 L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어수선했던 세기말에 대학교를 다녔다. L은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으로 을 구독했다. 기사를 읽으면서 기자를 꿈꿨다고 한다. 2002년 기자가 된 L은 정은주 신임 편집장의 친구이기도 하다.

친구가 편집장이 됐다는 소식을 듣고 어떤 기분이었나. 편집장 칼럼 ‘만리재에서’를 오랫동안 읽으면서 편집장에 대한 경외감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내 친구가 편집장이 됐다고 하니 갑자기 출세한 느낌이 들었다.(웃음)

정 편집장은 어떤 사람인가. 정 편집장 카카오톡 프로필 소개글에 “지는 싸움을 한다”고 쓰여 있다. 그 뜻을 물어보진 않았지만 나와는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소심해서 싸움을 잘 못하는데도 이기는 싸움만 해온 것 같다. 그래서 정 편집장을 존경한다. ‘여자 사람’들이 친해지면 보통 하나는 거슬리는 부분이 있게 마련인데, 그는 정말 그런 게 전혀 없는 ‘미친’ 친화력을 갖고 있다. 오래된 취재원도 계속 연락해서 만날 만큼, 의리도 있고 정말 좋은 친구다.

기억에 남는 일화는. 세종시 기획재정부를 출입했는데 같이 힘든 시기를 보냈다. 2년 전쯤 최저임금 인상과 관련해 기사를 쓸 때, 어떻게 기사를 잘 쓸지 함께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집도 가까워서 자주 만났다.

기자로 일하며 바쁜 와중에 을 읽기 쉽지 않을 텐데, 어떤 부분이 계속 을 읽게 했나.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을 추적 취재한 보도가 기억에 강하게 남아 있다. 우리 사회 곳곳에 소수자와 약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만, 잘 드러나지 않는 이야기를 이 계속 상기시켜주는 게 좋다. 최근에는 방준호 기자와 조윤영 기자가 쓴, 한국지엠과 현대중공업 해고 노동자들의 기사가 생각난다. 지금은 부처에 묶여 재미없는 기사를 쓰지만 ‘그런 취재를 하고 싶은데’ 생각하면서 대리만족을 한다.

정 편집장의 에 한 말씀. 앞선 류이근 편집장이 ‘독자후원제’도 도입하고 많은 변화를 이뤘던 것 같다. 편집장마다 을 자기 색깔에 맞춰 만들었다. ‘세월호 탐사보도’나 ‘한-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FTA) 번역 오류’ 등 끈질긴 취재력을 지닌 정 편집장이 어떤 을 만들지 기대가 크다. 옆에서 많이 도와주시길.


이재호 기자 p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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