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덕에 뉴노멀(새로운 표준)의 삶을 살게 되었다고들 한다. 사회적 거리 두기와 수시로 손 씻기, 기침과 재채기 예절 지키기, 아프면 일하지 말고 일찍 퇴근하기 등 보건위생 수칙을 일상적으로 지켜야 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뉴노멀의 시그널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경제위기가 현실화하자 ‘닥터 둠’이 다시 불려나왔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대대적인 부양 조처로 주가가 다시 오르던 3월24일(현지시각), 누리엘 루비니 미국 뉴욕대 교수는 이번 사태가 ‘대공황을 넘는 대공황’(Greater Depression)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2008년 금융위기 때보다 심각한 침체 국면이 오고 경기순환 곡선이 V자도 U자도 심지어 L자도 아닌 I자형이 될 수 있다는 말도 했다.
끔찍한 예언과 달리, 벤 버냉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은 코로나19가 종식되면 경기는 다시 살아날 거라고 주장한다. 고장 난 시계도 하루에 두 번은 맞는다는 진리를 떠올리면 ‘닥터 둠’의 늘 똑같은 비관론보다는 실제 헬기에서 돈을 뿌려본 사람의 낙관을 믿고 싶어진다.
그래도 좀 불안한 건 한국은행도 2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금리 동결을 결정할 때 비슷한 얘길 했다는 거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가보지 않은 길’인 0%대 기준금리는 물론 100조원 규모의 기업구호긴급자금과 10조원의 증시안정펀드, 20조원의 채권시장안정펀드라는 이례적 대응을 눈앞에서 보고 있다.
과거 같으면 보수적인 전문가들이 정권이 총선을 앞두고 금융시장에까지 개입한다고 했겠지만, 오히려 시가총액 1% 정도의 증시안정펀드로는 모자란다는 분위기다. 재계와 보수언론이 오직 금리 인하만 외쳐온 걸 돌이켜보면 새로운 일도 아니지만, 때가 때이니만큼 과연 뉴노멀을 실감한다.
뉴노멀은 사실 유지 불가능한 경제구조의 민낯을 드러낸 결과인 것 같기도 하다. 가장 먼저 위기의 희생양이 되는 건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밑바닥 노동자들이다. 고용유지지원금을 확대하고 면제 대상 공과금에 4대 보험료를 넣는다지만 비정규직 노동자가 다수인 사업장이라면 어떨까? 긴급대출을 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서고 분통을 터뜨리는 자영업자들 모습도 눈에 밟힌다.
대책의 효과가 ‘나’에게까지 미치지 못할 거라는 믿음을 갖게 되면 사람들은 각자도생을 선택한다. 유럽인이 아시아인을, 아시아인은 중국인을, 중국인은 우한 출신 사람들을 배척하는 현상의 일면에는 이런 배경도 있다. ‘살아남기’ 위해선 쓰러뜨려야 할 적이 필요한 것이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교수는 이번 사태를 두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양적완화 등으로 봉합해 생긴 금융거품을 코로나바이러스가 터뜨린 거라고 평했다. 글로벌 공급망의 와해 위협과 함께 인종주의와 배외주의 역시 코로나19 창궐 이전에 극우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의 얼굴을 하고 이미 전면에 부상해 있었다. 트럼프 당선과 극우정당 돌풍은 차라리 ‘봉합’이었는지도 모른다. 과거 해결되지 않는 문제의 해결을 위해 사람들이 선택한 비상수단은 파시즘이었다.
어차피 학위도 없고, 한국의 ‘닥터 둠’이 돼보겠다는 것은 아니다. 인류의 가장 큰 무기는 이미 최악의 선택을 해보았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결국 ‘뉴노멀’은 선택적 파국이 아니라 대안이어야 하고 그것을 만들 가장 큰 책임은 정치에 있다. 그런데 총선을 앞둔 정치권은 연동형 비례제, 아니 무규칙 비례제로 또 다른 뉴노멀을 경험하고 있다. 제발 이번 한 번뿐이었으면 좋겠다.
김민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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