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여행경보가 내려졌지만 다바오 해안은 푸른 보석처럼 아름답다. 시간과 돈만 허락된다면 당장이라도 달려가 바다에 풍덩 뛰어들고 싶은 풍경이다. 필리핀 사람들조차 가장 가고 싶은 도시라니. 필리핀에서 두 번째로 큰 민다나오섬 남동쪽에 자리잡은 다바오는 필리핀에서 가장 깨끗한 도시로 알려졌다. 거친 말투와 범죄와의 전쟁을 내걸고 함부로 살상을 일삼아 유명해진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이 필리핀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인 이곳에서 22년 동안이나 시장을 지냈다. 필리핀 최초의 금연도시인 이곳 건물이나 도로에서 담배를 피우다 걸리면 20만원이 넘는 벌금을 물어야 한다.
한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곳이긴 하나 한국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다바오에서 이자스민은 11살 때부터 살았다. 태어나 유년기를 보낸 곳은 수도 마닐라다. 대학 때 항해사였던 한국인을 만나 결혼하고 나선 열대과일의 천국인 섬을 떠나 한국으로 건너왔다.
우리는 그가 어디서 나고 자랐는지 잘 모른 채 시민권 있는 그를 여전히 ‘필리핀 사람’으로 여긴다. 삶의 더 많은 시간 그것도 성인으로서 대부분의 삶을 한국에서 살았는데도 그렇다. 가난한 나라 출신을 향한 ‘GDP 차별’과 보통의 한국 사람보다 좀더 짙은 피부색을 향한 ‘인종차별’은 그가 한국에서 권력의 상징인 금배지까지 달았는데도 사라지지 않는다. 한국인인 그가 아직도 “나도 한국 사람이다”라고 외쳐야 하는 슬픈 현실이다. 그가 나고 자란 곳은 이해를 위한 궁금증이 아니라 혐오를 위한 확인과 호기심에 머무를 뿐이다. 더 잘사는 나라에서 온 더 뽀얀 피부를 지닌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과 너무나도 다르다. 우리와 외국인을 나누고, 외국인 중에서 또 나눈다. 바닥 맨 아래엔 못사는 나라의 피부가 좀더 어두운 여성이 놓인다. 차별 기제는 강력해서, 혹 바닥에서 이자스민처럼 성공해 더 높은 무대에 오를수록 되레 더 잦고 손쉬운 공격의 대상이 된다.
새누리당 의원을 지낸 그가 정의당에 입당했다. 다시 주목받는 그를 향한 응원과 기대 속 혐오도 여전하다. 그를 다룬 기사에 ‘네 나라로 돌아가라’ ‘세금으로 필리핀에 퍼주기만 했다’는 투의 댓글이 난무한다. 그의 나라가 대한민국인데 어디로 가라는 말인가. 태풍으로 고통받는 고국의 필리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자는 결의안 한 번 낸 게 퍼주기인가.
어떤 분인지 이름조차 잘 모르는 연아 마틴(한국명 김연아)이 캐나다 연방 상원의원이 되고 나서 한국에 행차할 때마다 매번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 소비된다. 국회의장도 만나고, 지방자치단체 여러 곳에서 모시기 경쟁을 한다. 얼마 전 넬리 신(한국명 신윤주)이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됐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세계의 중심이자 많은 한국인들에게 선망의 나라인 미국에서 한국계 미국인의 정·관계 진출 소식은 더 비싸게 취급된다. 이들을 다루는 기사에 어김없이 붙는 댓글이 있다. ‘자랑스럽다’ ‘고국을 위한 목소리를 내달라’.
미국과 캐나다에서 잘나가는 한국계 인사에게 한국의 이익을 대변해달라고 하는 목소리는 필리핀계 한국인인 이자스민을 향해서는 필리핀을 위한 목소리를 내선 안 된다로 굴절된다.
이자스민씨처럼 혼인을 통해 한국 국적을 취득한 이는 지난해에만 7689명이다.(그중 필리핀 출신은 563명이다.) 하지만 아직 귀화하지 않은 결혼이민자는 16만 명에 가깝다. 지난 10년 동안 결혼해서 한국 국적을 얻은 이는 모두 8만9909명이다. 이들의 자녀는 또 얼마일까. 다른 나라 출신의 이들 한국인 외에도 지금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은 미등록체류자를 더하면 240여만 명이 넘는다. 이들을 싸잡아 ‘외국 사람’으로 부르는 자칭 토종 한국인이 너무 많다.
국민을 대표한다는 국회에 의원 300명 중 다른 나라 출신은 단 한 명도 없다. 대표를 갖지 못한 국민이 너무 많다. 우리는 지금 이자스민 같은 정치인이 너무 적어서 문제인 나라에 살고 있다.
류이근 편집장 ryuyigeun@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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