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6월27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군복 입은 시위대는 비상구 문틈으로 쇠파이프를 쑤셔넣어 문을 열었다. 닥치는 대로 집기를 부쉈다. 논설위원실이 있던 8층과 출판국이 있던 5층은 쑥대밭이 되었다. 오후 4시50분께 시위대 중 1명이 사옥 옆 전신주에 올라가 전력차단기를 내렸다. 신문사 전체가 정전이 되었다. 베트남 파병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을 세상에 알린 기사를 트집 잡아 벌인 폭력이었다.
시위대는 사옥 주변 나무와 전신주에 올라가 돌을 던졌다. 7층 편집국 창문으로도 돌멩이가 날아 들어왔다. 그때 13년차 패기 넘치던 김현대 기자는 한창 기사를 쓰고 있었다. 중년의 2200여 명 시위대는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 회원들이었다.
2019년 5월8일 다시 한겨레신문사. 대한민국상이군경회라고 쓴 군복 문양 조끼를 입은 노년의 시위대 200여 명은 펼침막을 내걸고 확성기로 서너 시간 시위를 이어갔다. 19년 전 주로 50대였던 군복 입은 남성들은 이제 70대로 보였다. 펼침막에는 “상이군경회 허위보도한 규탄대회”라고 쓰였다. 확성기로 증폭된 외침은 거칠었다. 그들에게 은 “찌라시” “허위보도의 달인”이 되었고, “폐간” “해체”돼야 할 대상이었다. 시위대는 한겨레신문사의 사죄를 촉구하고 “김현대 기자를 당장 파면(해임)하라”고 요구했다. 32년차 선임기자인 김현대는 이 광경을 신문사 3층 테라스에서 지켜봤다. 신변의 위험 때문에 현장에 가까이 가지 못했다. 그는 19년 만에 보훈단체를 다시 회사 앞으로 불러왔다. 지난 1월 ‘고엽제전우회처럼 돈 버는 법’(제1246호) 표지이야기가 마중물이었다. 2000년 그때 전력차단기를 내려 한겨레신문사를 암흑으로 몰아넣었던 고엽제전우회 회원은 이제 김 기자의 취재를 도왔다. 첫 보도 직후 고엽제전우회에서 수백 명이 몰려올지 모른다는 걱정은 기우였다. 전우회를 사조직처럼 오랫동안 주물러온 이들이 비리로 감방에 갇혀 있었기 때문이다.
김덕남 회장이 이끄는 상이군경회는 달랐다. 19년 전에 견줘 10분의 1에 불과한 머릿수였지만 을 위협하기엔 결코 적은 수가 아니었다. 상이군경회의 사업 비리와 김 회장의 재산 의혹을 다룬 김현대 기자의 기사에 보인 그들의 반응이었다. 떼지어 오기 닷새 전 찾아온 상이군경회 임원 다섯을 신문사로 들였다. 대화 막판 김현대 기자와 자리를 함께한 기자들은 상이군경회 임원한테 쌍욕까지 들어야 했다. 군복, 폭력, 욕설, 생떼, 트집, 비리 등 보훈단체에 덧칠된 부정적 이미지가 또다시 떠올랐다.
오래전에 본 영화가 생각나 다시 꺼내 봤다. 론 코빅이란 실존 인물을 다룬 이었다. 주인공 톰 크루즈는 닉슨 대통령이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대선 후보로 재추대되는 현장에 휠체어를 몰고 가 봉변을 당하면서 말한다. “진실을 말하려고 여기까지 왔다.” 아, 진실! 영화를 처음 볼 때도 그랬지만, 우리나라 보훈단체가 어두웠던 과거와 역사 앞에서 진실을 고백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적폐를 청산하겠다며 보훈단체 내부에서도 개혁 움직임이 싹텄지만 아직 미약하다.
“참전 군인들의 참다운 명예를 찾는 첫걸음은 당신들이 이유 없이 전장에서 피 흘려야 했던 역사적 맥락을 직시하는 일입니다.” 2000년 폭력 시위 직후 이 쓴 ‘고엽제전우회원들에게 드리는 글’이라는 제목의 이 기사는 여전히 유효하다. 안타깝지만 보훈단체들은 지금도 참다운 명예를 찾는 첫걸음을 제대로 내딛지 못했다. 이 보도를 멈출 수 없는 이유다. 김현대 기자의 다섯 달 동안 계속된 탐사보도에는 배후도 없고 사적인 감정이나 목적은 더더욱 없다. 그의 목적이 명확하긴 하다. “전우회를 전우의 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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