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어뢰 하나밖에 없다.”
천안함 전시관이 어딨냐는 물음에 안내원의 답이다.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도 천안함 전시관이 있다는 글을 인터넷에서 보고 찾아온 터였다. 안내원은 “전시관은 평택에 있다”고 했다. “어뢰는 어디에 있냐”고 묻자, 그는 “한 층 더 올라가면 카페 옆에 있다”고 안내했다. 계단을 올라 3층 왼쪽 전시관을 더듬어나갔다. 건물 동쪽 끝 구석 카페 옆에 자리잡은 ‘북한의 도발’ 전시관 안에 천안함 피격 사건 전시 코너가 있다. 1m 남짓 크기의 유리 상자 안에 ‘북한산 CHT-02D 어뢰 추진 동력 장치 모형’이란 팻말과 어뢰 설계도, 책 3권(, 국문판과 영문판)이 어뢰와 함께 전시돼 있었다. 그 좁은 공간은 천안함 피격 사건의 원인을 북한산 어뢰로 압축했다.
서사는 명확했다. “천안함 피격 사건의 결정적 증거물인 북한 어뢰의 잔해. 천안함 침몰 해역의 바다 속을 쌍끌이 방식으로 샅샅이 훑어서 찾아낸….” 어뢰 설계도에 첨가된 설명이었다. 알고 보니 전시물은 어뢰의 몸체가 아닌 뒷부분 추진동력장치였다. 천안함 피격 사건 전시장 주위 전시물들의 서사도 이구동성이었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치는 이승복 동상,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청와대 기습 미수 사건, 제1·2 연평해전, 연평도 포격 사건…. 유리 상자 위 모니터는 5분짜리 동영상을 오후 5시 기념관이 문 닫을 때까지 반복해 내보냈다. 영상엔 “천안함 침몰, 북한 어뢰의 공격…”으로 시작하는 자막이 깔렸다.
2010년 3월26일 21시22분께 백령도 서남방 2.5㎞ 해상에서 승조원 104명 가운데 46명이 전사하고 58명이 구조된 천안함 사건의 원인은 북한산 어뢰로 기억되도록 주입돼왔다. 지난 8년 국가가 원하는 기억의 방식은 사상 검증 잣대로도 쓰였다. 이듬해 치른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나경원 당시 한나라당 후보는 박원순 야권 단일 후보를 몰아쳤다. “박원순 후보는 천안함 폭침이 북한의 소행이라고 믿습니까? 안 믿습니까?”
믿지 않는 쪽도 고분고분하지는 않았다. ‘이명박근혜’ 정부의 주입식 기억을 ‘안보 장사’의 결과물로 치부했다. 끊임없이 믿을 수 없다는 근거를 과학적·합리적으로 제시했다.
화학공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이던 그도 이명박 정부의 발표를 믿지 않았다. 진짜 침몰 원인을 밝히고 싶었다. 그래서 기자가 되었다. 묻어뒀던 사명은 지난해 다시 깨어났다. 정권이 바뀌어 침몰된 진실이 수면 위로 떠오를지 모른다는 기대도 컸다. ‘진짜 침몰 원인’의 단서를 찾아헤매던 그가 천안함 생존자인 최광수씨의 이름을 우연히 알게 된 것도 그즈음이다. 지난 3월 취재에 속도가 붙었다. 뜻밖에 누군가 프랑스에 있는 최씨를 소개해줬다. 사고 원인에 대한 양심선언을 기대할 수 있다는 귀띔과 함께.
그는 최씨와 전자우편만 40통을 주고받았다. 카카오톡과 영상통화까지 더하면 셀 수 없다. 집요한 기자는 취재 중 새로운 진실에 눈떴다. ‘그 배에 탔다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 외상후스트레스장애, 따돌림, 패잔병 취급, 자살 시도…. 승조원 58명이 배에서 내려설 땅은 없었다. 그들 가운데 24명을 만나 언론 처음으로 그 고통의 종류와 크기를 가늠해봤다. 이번호(제1221호)는 길게 보면 8년, 짧게 보면 거의 반년에 걸린 그의 취재 결과물이었다. 이념 척도로까지 승화한 어뢰를 놓고 우리 사회가 좌우로 나뉜 틈에서, 그는 천안함 사건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했다. 그의 말은 이랬다. “생존자들은 보수 세력에겐 이용당했고, 진보 세력에겐 외면당했다.”
그는 변지민 기자다.
류이근 편집장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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