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이 2006년 8월부터 북극항로를 이용한 건 돈 때문이었다. 비행 시간과 거리를 줄이면 비용도 적게 든다. 이 단순한 계산법을 허가해준 건 건설교통부였다. 북극항로는 기존 항로에 견줘 33분, 약 300km(뉴욕∼인천 기준) 단축된다. 그만큼 항공유를 아낄 수 있다. 한 번 비행에 2천달러가 절약된다. 지금 환율로는 220만원이다. 여기에 1년치 운항 횟수를 곱하면 대한항공이 1년 동안 절감할 수 있는 비용이 나온다. 정우택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의원은 2013년 국정감사에서 대한항공이 북극항로를 이용해 7년 동안 300억원을 절약했다고 밝혔다. 매년 40억원이 넘는 돈이다.
아낀 돈은 누구의 주머니로 흘러갔을까? 대한항공은 북극항로를 이용하기 시작한 이듬해 1074억원의 순이익을 거뒀다. 북극항로 이용 등 연료 절감 노력도 크게 기여했다. 회사는 이익 가운데 345억원을 주주들에게 나눠줬다. 조양호 회장한테만 배당된 돈이 40억원이 넘는다.
북극항로는 대한항공 오너인 조 회장에게 큰 이익을 안겨줬지만 노동자들에겐 불안의 시작이었다. 12년 전 (제621호 ‘항공기를 노리는 우주방사선’)은 대한항공 조종사의 입을 빌려 이렇게 보도했다. “그토록 우주방사선에 둔감했던 (조종사) 정씨가 여객기 조종석에 앉을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다. 국내 항공사들이 운항시간을 줄이고 항공유를 아끼려고 북극항로를 취항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부터다. …고위도의 극지방을 높은 고도에서 비행하면 우주방사선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었다.” 기사는 ‘이제라도’ 체계적인 방사선량 계측 체계와 피폭 관리 시스템 도입을 제안했다.
이는 당시 조종사 노조의 요구이기도 했다. 노조는 노사협의회에서 우주방사선 피폭 위험성을 이유로 개인별 북극항로 운항의 월 1회 제한과 체계적인 관리 프로그램 운영을 통한 승무원 보호를 주장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무시돼왔다. 그새 ‘대한항공의 황유미’도 하나둘 늘어났다. 8년 동안 대한항공 승무원으로 일하면서 북극항로를 자주 다녔던 K씨는 급성골수성백혈병(제1216호 ‘KAL의 황유미’ 참조)에 걸려 회사를 상대로 6월11일 산업재해를 신청했다. 보도 이후 기사를 쓴 변지민 기자에게 우주방사선이 원인이 돼 암에 걸렸다고 주장하는 제보자만 10여 명에 이른다. 이들을 포함한 대한항공의 부당한 산재 및 공상, 병가 처리 제보는 20건을 넘어섰다.
제보자 가운데 상당수는 회사를 그만뒀다. 일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너무 아파서다. 이미 죽은 이도 있다. 비용 절감을 내세운 회사가 북극항로를 이용하면서 병이 찾아왔다고 말하는 이가 적지 않다. 회사는 북극항로를 이용해 얻은 수익을 북극항로 탓에 병에 걸렸다고 호소하는 직원들에게 쓰지 않는다. 치료비는 대부분 아픈 직원과 그 가족이 감당할 몫이다. 회사는 또 그렇게 살뜰히 비용을 아꼈다. 아픈 노동자에게 인색한 대한항공은 지난해에도 8019억원의 순이익을 거뒀다. 240억원의 배당액 가운데 또 일부가 조 회장 일가로 흘러갔다.
회사는 병든 노동자를 가차 없이 버린다. 제보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억울해하고 회사와 조 회장 일가에 분노하는 이유다. 객실승무원인 J씨는 암에 걸려 퇴사를 강요받았다. 그는 “아프니까 다 쓴 소모품처럼 버린다”고 말했다. 회사는 회복되길 기다려주지 않는다.
아픈 노동자들이 겪는 슬픈 현실과 달리 조 회장의 말은 화려하다. 그는 2016년 대한항공 지속가능보고서 CEO 편지에서 “유엔 글로벌콤팩트 가입사로서 인권, 노동, 환경, 반부패 분야의 10대 원칙을 준수”한다고 공언했다. 또 그가 서명한 윤리헌장엔 “우리는 임직원 개개인을 존중하며 삶의 질 향상을 위하여 노력한다”고 돼 있다. 대한항공 노동자 1만7천 명 가운데 그의 말을 믿는 이가 몇이나 되겠는가.
류이근 편집장 ryuyigeun@hani.co.kr전화신청▶ 1566-9595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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