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3월26~30일)도 대한민국은 ‘다이나믹 코리아’였습니다. 숨 가쁘게 진행 중인 한반도 대화 국면을 예의 주시하던 통일·외교 담당 기자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월요일(26일) 밤이었습니다. 그날 밤 중국 베이징에 북한의 최고위급 인사를 태운 것으로 보이는 ‘특별 열차’가 도착했고, 그 때문인지 베이징 시내에 삼엄한 경비가 펼쳐진다는 외신이 긴급 타전됐습니다. 방중한 최고위급 인사가 김정은 조선노동당 위원장이었다는 중국과 북한 관영언론의 공식 발표가 나오던 28일 오전까지 충혈된 저의 눈은 풀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날 오후엔 ‘박근혜의 세월호 7시간’의 정체가 검찰 수사로 밝혀졌습니다. 결과는 허무와 참담 그 자체였습니다. 박 전 대통령은 사고가 나던 날 아침 출근하지 않은 채 관저에서 늦잠을 잔 것으로 보이고, 오후에 ‘문고리 3인방’과 함께 대책회의를 주재한 것은 최순실이었습니다. #미투의 원형질인 2009년 고 장자연씨 자살 사건의 재조사가 이뤄질 예정이며, 올해도 어김없이 봄 하늘을 뿌옇게 가득 메운 황사와 (초)미세먼지도 중요하게 다뤄야 할 사회문제입니다.
한 주 내내 굵직한 뉴스가 쏟아졌지만, 이번호 표지이야기로 독자님께 올리는 것은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의 사연입니다. 2009~2010년 제주의 지역 거점병원인 제주의료원에선 임신 중이던 간호사 9명이 유산하고, 4명이 연달아 선천성 심장질환아를 낳는 비극이 벌어집니다. 실태조사에 나선 서울대 산학협력단의 2011년 역학조사 결과, 간호사들이 환자가 먹기 좋게 빻아주었던 알약 가운데 태아에게 심각한 악영향을 줄 수 있는 성분이 다수 포함됐던 것으로 확인됩니다. 산학협력단의 보고서에 따르면 2009년 제주의료원의 자연유산율은 같은 해 전국 평균의 2배, 선천성 심장질환아 출산율은 전국 평균보다 무려 12.7~14.6배 높았습니다.
“내 탓에 아이가 이렇게 된 게 아닐까”라며 자신을 책망하던 엄마 간호사들이 어렵게 용기를 냅니다. 이들은 2012년 12월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 신청을 냈습니다. 그러나 공단은 유산한 간호사들의 산재는 인정했지만, 심장질환아를 낳은 간호사들의 신청은 거부합니다. 법상 요양급여 수급자가 ‘근로자’로 한정돼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합니다. 엄마들은 절규합니다. “애가 죽어야 산재란 말이냐!”
변지민 기자에게 이들의 사연을 전해듣고, 피폭자 2세 운동을 벌이다 2005년에 숨진 김형률(1970~2005)의 이름이 떠올랐습니다. 그의 모친은 일본 히로시마에서 여섯 살 때 원자폭탄에 피폭됐습니다. 그 영향 때문인지 그의 쌍둥이 동생은 생후 20일 만에 숨졌고, 그 자신은 면역글로불린결핍증이라는 유전성 희귀병을 앓게 됩니다. 김형률은 “피폭자 2세의 피해는 의학적으로 입증되지 않는다”는 미국·일본·한국 정부를 상대로 ‘선 지원, 후 규명’을 해야 한다고 절박하게 외치다 서른다섯에 숨졌습니다. 피해자들은 목숨 걸고 자신의 고통을 호소하는데, 국가나 책임 있는 기관들은 처음엔 인과관계를 증명하라며 목소리를 높이다 할 말이 없어지면 법조문 문구 하나하나를 물고 늘어지며 지원 대상을 축소하려 합니다.
제주의료원 참사의 최종 판단은 이제 대법원 몫입니다. 참고할 만한 좋은 선례가 있습니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1977년 임신 기간에 일어난 업무상 재해로 태아의 건강이 손상됐을 때 산재보험에서 보상받지 못한다면 ‘인간의 존엄성과 모성 보호, 보편적 평등 원칙, 사회국가 원칙을 위배한다’고 밝혔습니다. 저는 대법원이 한국 사회는 인간의 존엄성과 모성을 보호하며 같은 공동체 내 동료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사회국가임을 확인해줄 것이라 믿습니다. 우린 그저 상식적인 사회에서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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