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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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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나의 진실

등록 2017-11-28 15:19 수정 2020-05-03 04:28

제가 ‘사진기자’ 김성광(32)의 존재를 인식한 것은 2년 전인 2015년 10월3일치 토요판 1면에 나온 사진 한 장을 본 뒤였습니다. ‘지뢰받이 이경옥’이라는 제목이 달린 대형 사진 속에 민간인 지뢰 피해자 이경옥(당시 53)씨는 지뢰로 흉측하게 절단된 왼쪽 다리를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은 어찌 보면, 굉장히 ‘폭력적’인 행위입니다. 게다가 이경옥씨는 5살 때 당한 지뢰 피해로 깊은 육체적·정신적 상처를 입어 네 번이나 자살을 시도한 사람입니다. 자신에게 닥친 불행을 원망하며 평생 살았을 이경옥씨를 설득해 카메라 앞에서 의족을 벗게 한 김성광이란 젊은 사진기자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사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습니다. ‘볼펜기자’ 길윤형은 2007년 8월 비무장지대(DMZ) 근처의 강원도 철원 대마리를 취재한 적이 있습니다. 휴전선과 가까운 전방 지역이라 이 동네에도 적잖은 지뢰 피해자들이 있었습니다. 미리 연락하고 찾아간 마을 이장에게 “마을의 지뢰 피해자들을 소개받을 수 있겠냐”고 물었습니다. 이장은 난처해하며 거절의 뜻을 내비쳤습니다. 기자라 해도 다른 이의 일상에 느닷없이 침범해 ‘당신의 아픔을 털어놓아라’고 요구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저는 제 무례함을 사과했고, 마을을 뒤로했습니다.

‘볼펜기자’ 길윤형이 실패한 지점에서 김성광은 어떻게 상대를 설득했을까. 그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습니다. 답변은 명료했습니다. “평화나눔회라는 단체의 소개로 이경옥씨를 만났다. 그를 여덟 번 찾아갔다. 그 과정에서 신뢰가 싹튼 것 같다.”

이번호 표지이야기에서 사진기자 김성광의 또 다른 작품들을 소개합니다. 한국의 공장에서 일하다 큰 화상을 입은 뒤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한 외국인 노동자 세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김성광은 2014년 화상을 입은 외국인 산재 노동자를 처음 만난 뒤 큰 충격을 받고 이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경북 포항, 경남 통영, 스리랑카 파나두라를 찾아갔습니다. 김성광은 지난 4년의 시간에 대해 “화상 피해로 망가져버린 30대 젊은이들이 평생 겪을 고통의 시간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짧지만, 그 찰나의 시간에 카메라 뷰파인더 너머로 형용할 수 없는 그들의 고통을 엿볼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사진을 통해 외국인 산재 노동자, 특히 ‘안면 화상’이라는 견디기 힘든 고통을 겪는 산재 노동자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인식이 변하길 기원합니다.

그리고 최근 발생한 사태의 경과를 알려드립니다. 은 제1186호(발행일 기준 11월13일치) 표지이야기에서 대기업 LG가 2013년 10월 우파단체인 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에 1억원을 지원했음을 보여주는 영수증(계산서)을 공개했습니다. 이 기사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회사 경영진은 기사의 여러 문제점을 지적하며 ‘표지를 교체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전해왔습니다. 그러나 은 처음 기자들이 정한 대로 표지를 내리지 않았습니다.

현재 회사에서 이 문제는 경영진의 ‘편집권 침해’ 논란으로 번진 상태입니다. 사장은 11월23일 입장문을 통해 “한겨레에서 편집권을 침해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 이는 모든 한겨레 구성원한테 그렇듯 저 자신의 굳은 신념이기도 하다”며 이번 사태가 발생한 것에 “깊은 반성의 마음”을 밝혔습니다. 논란이 완전히 정리된 뒤 이번 사태의 처리 결과를 다시 전해드리겠습니다.

편집권 훼손에 대한 경각심과 우려는 의 소중한 자산입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라는 원칙을 다시 한번 되새기겠습니다.

길윤형 편집장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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