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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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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박근혜 때도 기업 보수단체 거액 지원 계속돼

LG가 국정교과서 찬성 단체인 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에 2013년 1억원을 준 영수증 단독 입수…

국정원 TF 발표와 달리 박근혜 정부서도 보수단체 기업 거액 지원 방증, LG “우린 N분의 1인데 표적이 돼”
등록 2017-11-07 04:25 수정 2020-05-02 19:28
11월2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LG그룹 트윈타워 사옥 앞으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11월2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LG그룹 트윈타워 사옥 앞으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LG그룹이 박근혜 정부 시절 지주회사 (주)LG를 통해 국가정보원 화이트리스트 단체인 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이하 공학연)에 1억원을 지원한 내용이 담긴 영수증을 이 단독 입수했다. 국가정보원 개혁발전위원회 산하 적폐청산 태스크포스(이하 국정원 TF)는 10월23일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의 요청을 받은 국정원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등을 통해 ‘보수단체-기업체 매칭 사업’을 벌였지만, 국정원 심리전단 댓글 활동이 노출된 2012년 12월 이후에는 “급하게 사업을 종료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 입수한 영수증은 박근혜 정부에서도 보수단체에 대한 기업의 거액 지원이 계속됐음을 보여준다.

굳이 영수증 발급 LG는 왜

이 단독 입수한 세금계산서를 보면, LG그룹의 지주사인 (주)LG는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3년 10월2일 공학연에 1억원을 ‘전시 협찬금’ 명목으로 지원했다. 세금계산서에는 공학연과 LG그룹의 단체명·대표자명·주소 등이 나란히 적혀 있다. 이에 대해 LG그룹 쪽은 “공교육이 중요하다는 취지에서 1억원을 협찬한 것은 맞지만, 당시에는 공학연이 국정원 화이트리스트 단체라는 것 자체를 몰랐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공교육이 중요하다는 취지에서 1억원을 협찬했다’는 LG그룹의 해명을 곧이곧대로 믿긴 힘들다. LG 쪽 설명과 달리 공학연은 ‘좌파 교육감 반대’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 추방’ ‘역사 교과서 국정화 찬성’ 등 우파 집회를 여는 것 외에 공교육과 관련해 뚜렷한 활동을 한 적이 없다. 보수정권의 자금 지원을 받아 정권을 옹위하는 행동대로 활동했던 전형적인 ‘화이트리스트’ 단체다. 공학연의 어떤 활동을 보고 ‘공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됐느냐’는 질문에 LG 관계자는 “당시 지원을 집행했던 임원이 퇴사해 정확한 사정은 알기 어렵다”고 답했다. 공학연은 2011년 9월부터 2013년 6월까지 SK그룹 최태원 회장의 개인 소유 오피스텔을 사무실로 사용하기도 했다.

LG가 공학연에 현금을 지원했을 때의 사정을 소상히 알고 있는 공학연 관계자의 설명을 들어보자. 이 관계자는 최근 과 한 인터뷰에서 “지원금은 영수증에 적힌 대로 급하게 내려온 협찬금이었다. LG의 지원은 공학연을 주축으로 진행한 ‘기적을 캐고 나라를 구하라’(2013) 전시가 자금난으로 마무리되지 못하던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급히 요청해 이뤄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LG가 1억원을 지원한 전시는 2013년 9월4일부터 사흘 동안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렸다. 박정희 정권 시절 독일에 파견된 광부와 간호사들에 관한 내용이었다. 애초 이 행사의 주관은 공학연이 아니었다. 이 전시를 기획한 단체는 공학연 사무총장 이희범씨가 사무총장을 겸하던 (사)대한민국감사국민위원회(이하 감사위)였다. 의 취재에 응한 공학연 관계자는 “공학연과 감사위는 사실상 같은 단체다. 당시 감사위가 기부금 수령 단체가 아니라서 공학연 이름으로 돈을 받은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보수단체 관계자는 “박근혜 정부 시절 정부 입맛에 맞는 전시를 열어 돈을 모으는 게 보수단체들의 주요 수익 창구였다. 몇 가지 키워드로 전시를 기획해 정부·기관·기업의 후원이나 협찬을 받고 전시는 외주업체에 맡겨 얼렁뚱땅 해치우는 식으로 자금을 만들었다. 삼성에서 10억원 가까운 지원을 받은 전시도 있었다”고 말했다. 보수단체가 합법적 지원이 가능한 행사를 기획하면 이를 계기로 민관 지원이 이뤄지고, 여기에 대기업이 돈을 댔다는 것이다.

공학연 관계자는 “박근혜 정부 시절 보수단체가 전경련 소속 기업들의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조정하는 ‘컨트롤타워’가 있었다. 보수단체 활동을 하다 청와대에 입성한 최홍재 정무수석실 선임행정관, 허현준 선임행정관 등이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 현진권 시민사회비서관(이후 자유경제원 원장)이 국정원에 대기업들이 보수단체를 지원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라는 ‘보수단체 역할 강화 방안’을 지시했듯 이들이 컨트롤타워가 돼 국정원에 지원 실무를 맡겼을 가능성이 크다. 이들의 비호를 받은 공학연의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이희범 사무총장은 2014년 독일 대사관의 초청으로 독일을 방문했고, 2015년에는 대통령이 파독 노동자들에게 ‘감사편지’를 보내는 행사를 프레스센터에서 열었다. 2015년 행사에는 친박 실세인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과 나경원 의원이 참여했다.

‘LG에 지원 요청하라’는 지시
2015년 10월 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조합원들의 연가투쟁을 규탄하는 집회를 벌였다. 연합뉴스

2015년 10월 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조합원들의 연가투쟁을 규탄하는 집회를 벌였다. 연합뉴스

2013년 10월 LG에 갑작스레 돈을 요청한 데는 공학연 내부 사정도 있었다. 이희범 사무총장은 전시를 앞두고 참여 작가들에게 “일회성 전시가 아니다. 이후 월남전, 중동 건설 관련 전시를 계속 열 계획”이라며 “총 1억2천여만원의 작품료를 줄 것”을 약속했다. 하지만 자금 조달이 여의치 않았다. 대통령 직속 국민대통합위원회과 EBS를 공동 주최자로 넣고 여러 기업에 후원을 요청했지만, 두 기업이 2천만원을 보내는 데 그쳤다. 전시가 끝나면 경상북도의 한 지방자치단체가 작품을 사기로 한 계획도 실행되지 않았다. 급기야 전시 직후 미지급금을 둘러싼 분란이 발생했다. 광화문광장에 전시 컨테이너를 설치한 업체는 돈 지급이 안 됐다는 이유로 철거를 거부하기도 했다. 공학연 관계자는 “준비가 졸속이었고, 호응도 거의 없던 전시였다. 1억원 가까운 예산이 소요됐으나 후원금을 포함한 수익금은 4천만여원밖에 되지 않아 난감한 상황이었다”고 증언했다.

단체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는 “이런 상황에서 이희범 사무총장이 사무실에서 누군가와 통화했고, 이 총장이 부하 직원에게 ‘LG에 지원 요청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말했다. 이후 해당 직원이 지원금 요청 문서를 팩스로 보내자, LG 쪽에서 바로 “어떻게 전시 협찬금을 보낼까요”라고 연락해왔다. 이를 통해 박근혜 정부 시기에도 대기업과 보수단체 사이에 일상적인 의사소통 채널이 있었으며, 이를 통해 보수단체가 자금 지원을 요구하면 신속한 대응이 이뤄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관계자는 협찬금을 보낸 대기업이 LG로 정해진 이유까지는 알지 못했다.

LG “우린 ‘n분의 1’이었을 뿐”

공학연에 1억원을 지원한 적이 있냐는 의 확인 요청에 LG 쪽은 “공학연에 1억원을 지급한 게 맞다. 돈은 이희범 사무총장이 직접 받아 처리했다”고 밝혔다. LG 고위 관계자는 “지원을 요청하는 연락이 왔고, 돈을 지원했다. 비즈니스 차원의 지원은 아니었고 그냥 협찬금이었다. 당시 돈을 현금으로 주었는지 계좌로 입금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지만 세금계산서를 발행한 정상적 집행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왜 돈을 지원했는지에 대해선 국정원 TF가 발표한 사실관계가 큰 틀에서 맞다”며 정권 차원의 외압이 있었음을 사실상 인정했다. 그래서인지 LG는 1억원이나 되는 거액을 지원하면서 지원금 사용 내역은 물론 사업 진행 관련 보고를 받지 않았다. 지출 품의서 같은 내부 근거도 전혀 남아 있지 않다는 게 LG 쪽의 공식적인 상황이다. 이번 의 취재에 대해 LG 쪽은 “우리 쪽에서만 지원이 이뤄진 게 아닌데 LG만 표적이 되는 것 같다”며 여러 차례 당혹스러운 심경을 드러냈다.

LG에서 자금 업무를 담당하는 한 직원은 이같은 회계 처리에 “계열사라면 납득되지 않는 일이지만, (주)LG는 지주사이기 때문에 가능할 수도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는 “(주)LG는 모든 계열사로부터 브랜드 로열티를 받는 지주회사다. LG그룹 내에선 삼성의 미래전략실 같은 위상의 회사”라고 말했다. (주)LG는 계열사들의 컨트롤타워로 1년에 두 번 계열사들의 사업 보고를 받고 경영 기획과 성과를 점검한다. 이번 사례에서 보듯 “오너와 관련된 일을 처리하고 권력과의 관계에서 필요한 대관 업무를 수행”하기도 한다.

LG는 2003년 대기업 가운데 가장 먼저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해 안정적 지배구조를 갖췄다. 그 때문에 박근혜 정권을 무너뜨린 지난해 말 촛불집회 정국에서도 삼성 등 다른 대기업과 달리 별다른 외풍을 맞지 않았다. 그런 LG조차 1억원이라는 거금을 신속하게 전달했다면, 다른 대기업에선 이같은 자금 지원이 더 빈번하게 이뤄졌을 것이라 추정할 수 있다.

LG의 1억원 영수증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2012년 하반기 “국정원 심리전단의 댓글 활동이 노출되며 급하게 사업을 종료했다”는 국정원 TF의 발표와 달리 대기업의 보수단체 지원이 계속된 것으로 확인되기 때문이다. 국정원 TF 발표는 ‘이명박 정권 시기’에 이뤄진 대기업과 보수단체 사이의 검은 관계를 밝히고 있을 뿐, 박근혜 정부의 지원 ‘메커니즘’은 공백으로 남겨두고 있다. 이 입수한 공학연의 내부 결산 보고서를 보면, 공학연은 2013년 LG로부터 1억원을 협찬받은 것 외에 추가로 1억1천만원, 2014년엔 8600만여원의 출처 불명의 별도 뭉칫돈을 후원금 명목으로 받은 것으로 확인된다. 이 후원금을 지급한 곳은 어딜까. 박근혜 정부 때 보수단체와 대기업의 검은 유착이 어떤 고리로 어떻게 이뤄졌는지 더 철저한 조사와 수사가 필요한 이유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박근혜 정부 때 이뤄진 대기업과 보수단체 사이의 커넥션에 차가운 칼날을 들이대긴 쉽지 않다는 분석도 있다. 국정원 조직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보수단체 지원 실무를 담당했던 이들은 대체로 물러났지만, 박근혜 정부에서 비슷한 업무를 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들은 일부 고위직을 제외하고 대부분 현직에 남아 있다. 이들에게까지 ‘개혁’의 칼날을 들이대면, 국가정보기관인 국정원 조직의 동요를 감당하기 어려워진다. 한 사정기관의 고위 관계자는 과 만나 “언제까지 국정원 적폐 문제를 끌고 가야 하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너무 오래 끌고 갈 순 없다. 이제 평가할 것은 평가하고 다음 진도를 나가야 하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한 청와대 고위 관계자도 최근 한 여당 의원에게 이번 국정감사에서 “국가 사정 조직을 너무 흔들지 말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LG 쪽은 이번 지원 맥락과 배경을 확인해달라는 의 거듭된 취재 요구에 “박근혜 정권의 분위기가 그랬다. LG는 ‘n분의 1’ 역할만 했을 뿐 핵심적 역할을 한 게 아니다”라는 대답만 되풀이했다. 이에 대해 국회 교육문화위원위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LG는 굴지의 대기업이고 대기업은 시스템으로 돌아간다. 공학연에 대한 LG의 거액 지원은 시스템에서 벗어난 것이다. 시스템을 무너뜨릴 만큼 큰 힘, 최고 권력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정원 개혁 시기는 MB 때까지만?

남은 문제는 국정원 개혁이다. 국정원 개혁위와 검찰은 주로 이명박 정부에서 이뤄진 국가권력의 남용을 공개하고 있다. 동시에 국정원 내부에선 “요즘 직원들 고생이 많다”며 국정원 퇴직자들의 모임인 ‘양지회’ 지원을 늘리는 중이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국정원 안팎에선 “하위 직급 인사를 청산해야 할 적폐 대상자들이 주도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이 한통속이 되어 부정과 범죄를 저질렀다. 국정원 개혁위는 이명박 정부 시절의 추악한 과거에는 칼날을 들이대지만, 박근혜 정부에서 벌어진 문제를 다루는 데는 다소 인색한 모습이다. 경제권력 단죄는 삼성을 제외하곤 손도 못 대고 있다. 기업과 보수단체를 직접 연결해 권력을 옹호해온 ‘이명박근혜식 시스템’은 끝내 해체될 수 있을까. 지난 11월1일 서울 남부지검은 (주)LG의 지원을 받았던 공학연 단체 사무실과 이경자 대표, 이희범 사무총장의 자택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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