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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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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시선

등록 2017-08-08 15:49 수정 2020-05-03 04:28

지난 월요일, 백만 년 만에 처음 퇴근길의 아내를 불러내 영화관에 갔습니다. 영화 를 보지 않고 지난호(제1173호) ‘만리재에서’를 쓴 게 영 마음에 걸렸기 때문입니다. 핫도그와 과일 스무디를 양손에 들고 극장에 들어가니 ‘저녁 있는 삶이란 참 좋구나’ 생각이 들더군요.

영화에 대한 구체적인 평가는 다른 평론가들께 맡깁니다. 다만, 전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잊을 수 없습니다.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연합군의 폭격으로 엉망이 된 섬에서 거대한 탈출을 시도합니다. 우리의 ‘유시진 대위’(송중기)를 중심으로 뭉친 조선인들은 탄광회사 직원들과 처절한 전투를 벌인 끝에 석탄운반선을 탈취해 지옥과도 같았던 섬을 떠납니다.

그리고 어슴푸레 동이 터오는 저만치 동쪽 하늘에서 거대한 버섯구름이 피어오릅니다. 원자폭탄이 내뿜는 강렬한 섬광을 바라보는 영화의 시선은 기묘합니다. 원폭 투하는 우리 민족을 괴롭혔던 일본인에 대한 신의 거대한 응징처럼 묘사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독백. “저기도 조선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을 텐데….”

저는 이 장면을 바라보는 한·일 양 국민의 시선 차이가 핵무기에 대한 두 나라의 입장을 결정적으로 갈라놓았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의 핵능력이 고도화되면서 이제 한국과 일본도 핵무장을 준비해야 하지 않냐는 얘기도 나옵니다.

한국에 잘 소개되지 않는 통계가 있습니다. 일본 단체 언론NPO는 한국의 동아시아연구원 등과 함께 매년 양국 국민의 의식을 조사합니다. 이 가운데 자국의 핵무장에 대한 의견을 묻는 항목이 있습니다. 2016년 조사에서 ‘한국이 핵무장을 해야 하나’라는 질문에 한국인의 59%가 찬성 의견을 밝혔습니다. 절반 넘는 수치입니다. 북한의 핵위협이 계속되는 탓인지 이 수치는 7월 초 공개된 2017년 조사에선 67.2%로 튀어오릅니다.

이에 비해 일본에선 핵무장 찬성 여론이 2016년 5.1%, 2017년엔 소폭 올랐지만 9%에 불과했습니다. 북의 잇따른 핵과 미사일 실험에도 반대 여론은 여전히 70%를 상회합니다. 아베 신조 1차 정권 때 방위상인 규마 후미오는 2007년 6월 말 지바현의 한 대학 강연에서 “원폭 투하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말했다가 경질됩니다. 그만큼 원폭 투하로 일본인들이 받은 상처는 아주 깊고, 이는 여전히 치유되지 않은 채 지금의 삶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원폭 당시 나가사키에 살던 조선인은 얼마나 될까요. 1945년 8월6일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으로 조선인 5만 명이 피폭되고 이 가운데 3만 명이 숨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로부터 사흘 뒤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폭으로 피폭된 조선인은 2만여 명, 사망자는 1만여 명에 이릅니다. 결코 적은 수가 아니니 그 버섯구름을 바라보는 한국인들의 시선 역시 지금보다 더 복잡해져야 합니다.

이번호 표지이야기에선 한국의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처리장 문제를 정면으로 다룹니다. 정말 중요한 문제인데도 이에 대한 기초연구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고 변지민 기자는 한탄합니다. 특집에선 하어영 사회팀장이 북한 을 분석해 계속 미사일을 쏘아대는 북한의 속내를 탐구했습니다. 여기에 ‘만리재에서’와 제일 끝 ‘노 땡큐!’까지 핵 타령이니 이번호는 핵으로 시작해 핵으로 끝나는군요. 핵핵핵~~. 힘이 듭니다.

길윤형 편집장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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