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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도의 역사적 상흔

등록 2017-08-01 06:54 수정 2020-05-02 19:28

영화 가 7월26일 개봉했습니다.

한국에서 재능 있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류승완 감독이 만든 는 개봉 당일 관객 97만 명을 끌어모았습니다. 이 추세라면 1천만 관객 돌파도 문제없어 보입니다. 영화가 흥행 조짐을 보이자 일본 우익 등은 “영화가 사실을 왜곡한다”는 불만을 쏟아냈습니다.

아직 영화를 못 본 제가 얘기를 꺼내는 것은 소설 (란 제목으로 새로 출간)를 통해 군함도를 한국 사회에 처음 소개한 한수산 작가 때문입니다. 한 작가와 저는 2015년 6월 함께 섬을 방문했습니다.

군함도의 공식 명칭은 ‘하시마’입니다. 나가사키항에서 배를 타고 40분이면 도착합니다. 멀리서 보면 섬은

말 그대로 바다 위에 떠 있는 군함 같습니다. 한 작가와 저는 왁자지껄 떠드는 일본인 관광객 틈에 섞여 섬을 둘러본 뒤 뭔가 정리되지 않은 마음으로 섬을 떠났습니다.

한 작가는 15살에 군함도에서 모진 노동을 감당했던 고 서정우씨와 1990년 처음 섬을 찾았던 얘기를 해주셨습니다.

“그날 서씨와 나는 서로 밀어올리고 당기며 드높은 방파제 위로 올라갔다. 서씨는 ‘늘 배가 고팠던 생각밖에 나지 않는다’며 어두운 기억을 떨쳐내려는 듯 하늘을 쳐다보았다. ‘혼자 저기 방파제 밑에 와서 울곤 했지. 너무 힘들었거든. 그리고 저기였어. 맞아서 욱신거리는 허리를 구부리고 누워 있던 자리야.’ 나 또한 그에게서

옛 기억을 되살려내는 것이 죄송하고 고통스러워 먼바다를 내다보는데, 그가 바다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쪽이 고향이다. 저 바다를 건너면 고향이다. 얼마나 많이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몰라.’”

군함도에서 이뤄진 조선인 강제동원 역사와 함께 또 하나 기억할 사실이 있습니다. 이 역사적 사실을 우리에게 전해준 일본 시민사회입니다.

군함도에서 석탄이 발견된 것은 1810년입니다. 이후 1890년 미쓰비시합자회사(이후 미쓰비시광업주식회사)가 섬을 매수한 뒤 본격적으로 해저탄광을 개발했습니다. 전쟁 말기가 되자 해저탄광에 조선인들이 본격적으로 동원됩니다. 한국 정부의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 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가 2012년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1944년 군함도에 조선인 노동자 500~800명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희생자 수와 관련해선 1925~45년 섬에서 숨진 조선인이 122명이라는 것이 공개돼 있습니다. 일본 시민단체 ‘나가사키 재일조선인의 인권을 지키는 모임’(이하 모임)의 한 회원이 섬을 방문했다가 이 시기에 숨진 일본인 1162명, 조선인 122명, 중국인 15명의 이름·본적·사망일시·사망원인 등의 정보가 담긴 정사무소(한국의 동주민센터)의 화장인허증을 발견했습니다. 숨진 일본인 노동자 수가 조선인보다 훨씬 많다는 데서, 군함도는 조선인은 물론 일본의 하층 노동자에게도 ‘지옥섬’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일본 나가사키에 갈 기회가 있다면 군함도를 들른 뒤 ‘오카 마사하루 기념관’을 가보시기 권합니다. 모임에 참여했던 일본 시민들이 만든 자료 전시관입니다. JR나가사키역에서 내려 서쪽 언덕 방향으로 10분 정도 걸으시면 됩니다.

길윤형 편집장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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