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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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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발

등록 2017-05-16 16:59 수정 2020-05-03 04:28

황사가 지나간 5월에 봄바람이 붑니다.

커피 한잔을 손에 들고 청와대 산책에 나선 문재인 대통령과 그가 임명한 참모들의 하얀 와이셔츠가 청량감 있게 다가옵니다. 이낙연 전남도지사를 왜 국무총리 후보로 지명했는지, 서훈 전 국가정보원 3차장을 왜 국정원장 후보로 지명했는지를 직접 설명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모습을 보면서 시대가 변했음을 느낍니다. SNS에선 문재인 대통령,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 등의 사진을 올리며 문재인 정부의 용납할 수 없는(?) ‘외모 패권주의’의 폐해를 지적하는 농담도 만개하고 있습니다. 너무 상식적이어서 눈물겨운 대한민국의 하루하루입니다.

4년 전 문재인 통합민주당 후보의 뼈아픈 패배를 기억합니다. 그때 그의 거리 유세 장면을 담은 동영상에서 소중하게 기억하던 문장이 있었습니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문재인 후보가 패한 뒤 찾아온 지난 4년의 시간 동안 우리가 어떤 ‘짐승의 시간’을 견뎌내야 했는지 다시 말할 필요는 없을 거라고 봅니다. 그때 소중하게 기억했던 저 문장이 5월10일 발표된 ‘대통령 취임사’에 다시 담겨 있었습니다. 몇 번을 읽어도 소중하고, 아름다운 문장입니다.

그러나 생각해야 합니다. 현재 문재인 대통령을 둘러싼 주변 여건은 녹록지 않습니다.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안보 환경은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위태롭습니다. 일본의 군사력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동맹을 강화한 미-일 두 나라는 한국에 중국을 봉쇄하고 북한을 고립시키기 위한 한-미-일 3각 동맹을 심화해야 할 때라고 말합니다. 그 상징이 미국과 박근혜 정권의 ‘잔당’들이 기습 실행한 사드 배치입니다.

외교에 에누리란 없습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5월11일 문재인 대통령과 첫 전화 통화에서 “서로의 중대한 관심 및 정당한 이익을 상호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시 주석이 말하는 중국의 정당한 이익이 무엇인지는 삼척동자도 아는 것입니다. 살벌한 주요 2개국(G2)의 전략적 대결에서 한발 삐끗했다간 우리 민족의 운명은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습니다.

현재 문재인 정권에 일본 주필을 지낸 후나바시 요치치 등이 2013년 9월 펴낸 이란 책은 반드시 참고해야 할 필독서입니다. 2009년 9월 하토야마 유키오 민주당 총리는 일본 국민의 압도적 지지를 얻어 자민당의 오랜 집권을 끝냈습니다. 정권을 손에 쥔 지 열흘이 못 되는 시점에서 정권의 중추에 있던 마쓰이 고지 관방부장관이 후나바시에게 말합니다. “권력을 쥔다는 것은 어제까지 친구였던 사람들이 적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책의 우선순위에 대한 ‘판단 미스’가 이어집니다. 하토야마 총리는 ‘잃어버린 20년’을 끝내기 위한 효과적인 경제정책을 탐구하는 대신, 오키나와의 미 해병대 기지 ‘후텐마 기지’의 이전 문제에 집착했습니다. 그 사이 정권 안팎에서 각종 사고가 터지고 높았던 기대는 이내 환멸로 바뀝니다. 70%를 넘던 지지율이 20%대까지 폭락하는 시간은 채 6개월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모두 기회가 평등하고, 과정이 공정하고, 결과가 정의로운 사회를 원합니다. 그런 사회를 만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번호에선 일단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뒤 첫 72시간을 뒤쫓아봤습니다. 어쩌면 문 대통령의 첫걸음에 해답이 있을지 모르겠네요.

길윤형 편집장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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