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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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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을 위한 마음

등록 2016-11-15 23:33 수정 2020-05-03 04:28

전자우편이 왔다. 9월29일. 독자 단박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것이다. 생활 1년6개월 만에 이런 전자우편 내용은 처음이다. 경기도 수원시 정자동에 사는 이용범(49) 독자였다. 반가운 마음에도 인터뷰는 자꾸 미뤄졌다. 11월8일 그에게서 다시 전자우편이 날아왔다. 드디어 약속을 잡았다. 11월10일 밤 10시5분. 기다린 만큼 인터뷰는 1시간 넘게 길어졌다. 밤이 깊어갔다.

이용범 제공

이용범 제공

밤 10시 넘어 전화를 달라고 했는데.

아내가 올해 3월 동네에 죽전문점을 개업했다. 밤 9시에 주문 마감하면 설거지 등 정리하고 셔터를 닫고 차로 아내를 모셔온다. 방금 전 집에 들어왔다.

어떤 일을 하나.

20년 동안 세무공무원으로 일하다 지난해 명예퇴직했다. 지금은 세무사 자격증 시험을 준비 중이다. 아침 6시30분 아내를 죽전문점에 출근시키고 청소하고 쌀을 안치고 밤 9시에 정리 작업을 한다. 사장님(부인)과 합의해서 한 달에 급여 70만원씩 받고 있다. 원래 100만원 이상 받아야 하는데…. (웃음)

공무원 생활을 그만둔 이유는.

경제적 이유다. 공무원 생활을 하며 주변을 돌아보면 생활에 쪼들리는 직원이 많다. 수도권에서 나처럼 초등학생, 중학생, 대학생인 세 아들을 키우면 (경제적 문제가) 더하다. 한계에 부딪혀 좌절할 때가 있다. 정치적 의사를 마음대로 표현할 수 없는 갈증도 있었다. 갈수록 정부 정책이 거꾸로 간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 직장 동료들과의 술자리에서조차 그런 얘기를 금기시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답답한 마음이 들고 제대로 살고 있는지 회의감이 들었다. 그런 점도 100에 10은 퇴직에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퇴직해서 좋은 점은.

올해 초 정의당에 가입했다. 민생을 챙기려는 점이나 정책이 가장 후련하고 선명한 정당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당에 가입하니 시민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는 한다는 안도감 내지 뿌듯함을 느낀다. 2018년 1월 세무사 개업이 목표인데,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 지역구에서 당에 조세 관련 의견을 내고 싶다.

전직 공무원으로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바라보는 심정은.

이번 사태가 드러났을 땐 이미 현직이 아니었지만, 그동안 나라의 녹을 먹은 사람으로서 비애감이 컸다. 아내의 죽전문점에 오는 손님들 얘기를 들어보면 정치가 불안정하니 경제에도 후폭풍이 불까봐 불안해한다. 정치가 불안하니 경제도 예측할 수 없다는 생각에 돈 쓰기 겁난다는 분들도 있다.

은 언제 보나.

죽전문점 아침 청소를 하고 나서 10분 정도 훑어보고, 저녁 8시20분께 손님 끊기는 시간에 정독한다. 가게에 독서대가 있는데 과 를 비치해놓고 있다. 손님도 종종 죽을 기다리면서 잡지나 신문을 본다.

에 바라는 점은.

최근 ‘모병제’ 관련 기사를 관심 있게 읽었다. 큰아들이 대학교 1학년인데 내년에 군대에 갈 예정이다. 둘째와 셋째도 현재로선 군대에 가야 하는 상황이다. 기사를 몇 번이고 다시 읽어봤다. 모병제든 징병제든 그 중간 형태든 부모들이 안심하고 자식을 군대에 보낼 수 있는 제도와 국방 개혁에 대한 심층보도를 부탁한다. 그리고 4대강이 썩어서 이대로 방치하면 앞으로 수년 안에 식수 문제가 불거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일반 시민의 입장에서 4대강과 수질 문제도 심층보도해주면 고맙겠다.

두 번이나 독자 단박인터뷰를 신청한 이유는.

아내도 팬이다. 열심히 사업을 꾸려가는 아내를 응원하고 싶었다. 아내가 개업한 지 1년이 채 안 됐다. 단박인터뷰를 통해 아내가 큰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 가게도 흥했으면 좋겠다. ‘흙수저’라고 일컫는 많은 사람이 힘내면 좋겠다. 지금 서민들은 생계도 꾸리기 바쁜데 나라까지 걱정해야 하고 대통령 하야 이후 로드맵까지 제시해야 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박근혜 게이트’가 빨리 끝나고 서민들이 나라·정치인·관료 걱정 없이 저녁 있는 삶, 여유로운 삶을 꾸려갈 수 있으면 좋겠다.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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