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16일, 공부한답시고 휴직 중이었다. 대학원 수업 준비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나중에 비극의 일말이 드러나자 (천벌 받을 일이겠지만) 삿된 욕심에 사로잡혔다. 기자로서 인생을 걸어볼 사건이라 생각했다. ‘휴직자’의 신분이 아쉬웠다. 나는 도덕보다 욕망에 끌리는 잡놈인 것이다.
열흘 뒤, 이 글을 부탁해왔다. 한국 언론의 세월호 보도를 비평해달라는 의뢰를 받아 졸문 ‘한국 언론의 임박한 침몰’(제1009호)을 썼다. 막스 베버를 인용해 적었다. “진실로 좋은 기사 한 건을 쓰는 일은 학문적 성취만큼 어려운 작업이다. 기자의 실재적인 책임이 학자보다 훨씬 크다는 사실은 일반적으로 간과되고 있다.” 후배 기자들에게 내 공명심을 투사하고 싶었던 것 같다. ‘역사적 기사를 쓸 기회야. 달려들라고!’
호승심이 아닌 인간애에 바탕을 두고 진짜 취재를 벌인 기자는 따로 있었다. 그해 여름을 거쳐 겨울이 지날 때까지 정은주 기자는 유족들 곁에 있었다. 의 다른 기자들도 그 곁을 함께했다. 이 매체의 ‘동행취재’는 당시 한국 언론을 통틀어 거의 유일한 세월호 보도였다. 그러나 조금 답답했다. 아픔을 드러낼 뿐, 그 실체인 ‘사실’로부터 비켜서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잡놈의 단견이고 오판이었다. 지난해 봄, 정 기자는 (이 신문사의 관행에 따라) 일간 로 부서를 옮길 참이었다. 욕심 많은 새 편집장은 “세월호에 달라붙어보자”고 정 기자를 꼬드겨 붙잡았다. 고개 숙이고 있던 정 기자가 나에게 말했다. “마침 분석해야 할 자료가 있긴 한데요….” 욕심이 아니라 진심을 다했기에 그의 품을 찾아온 자료였다.
그다음 일은 이번호 특집 기사에 적혀 있다. A4용지 500장이 든 상자 300개 분량의 문서, 2시간짜리 영화 1000편 이상 분량의 영상·음성 파일을 정 기자는 재단법인 ‘진실의 힘’과 함께 지난 1년 동안 들여다봤다.
그렇게 시작된 1년 추적의 한 매듭을 이번호에서 짓는다. 정 기자는 이제 일간 로 옮겨간다. 그동안 무엇이 밝혀졌는가. 민간에 책임을 떠넘기려던 해경의 중대 과실이 드러났다. 선장과 선원이 어떻게 승객들을 죽음으로 몰았는지 제대로 밝혀졌다. 다만 국가정보원과 청와대의 책임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 있다. 우리가 지난 1년 동안 매달린 자료는 검찰·감사원의 수사기록이다. 수사는 처음부터 국정원과 청와대를 비켜갔으므로 그 기록에는 그들의 자취가 없다.
이제 다른 매듭을 시작한다. 일간 사회부 사건팀·법조팀을 거친 정환봉 기자가 세월호 추적보도의 2탄을 준비한다. 1년 전, 이 지면에 적었다. ‘밝혀지지 않으면 지옥까지 가려는 게 이별당한 이의 삶이다. 우리는 그들의 이별을 그렇게 놓아두지 않으련다.’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으므로 그들의 이별을 이대로 놓을 수 없다.
이번 총선에 바라는 바가 있다. 가난한 이들이 모여 살던 작은 도시의 학생들이 생애 처음이었을 제주도 수학여행을 떠나다 떼로 죽었다. 살았어도 죽음 같은 고통에 묶여 있다. 그 영문을 아직도 정확히 모른다. 힘없고 억울한 이들을 보살피는 게 나라의 일이니, 지금이라도 발 벗고 그 일에 나서는 정치를 20대 국회가 실현해주기 바란다. 기대가 가망 없다면, 지난 1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다시 손을 뻗어 우리가 하겠다. 추적하여 밝히겠다. 우리는 기자다.
안수찬 편집장 ahn@hani.co.kr※카카오톡에서 을 선물하세요 :) ▶ 바로가기 (모바일에서만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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