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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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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동

등록 2016-02-02 17:12 수정 2020-05-03 04:28
*아래 글에는 2015년 8월호에 실린 필자의 졸문이 포함돼 있습니다.

한국인은 양력과 음력으로 두 번 새해를 맞는다. 한국 사람의 인생 행보도 그 습속을 닮았다. 같은 일을 두 번 결정한다. 한 번은 남의 시선을 따른다. 관습이 합리를 짓누르는 사회라 더욱 그러하다. 그다음에야, 관습에 찌들어 앓고 난 다음에야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진짜 결정을 내린다. 처음부터 그러고 싶었던 것인데 오래 미뤄왔음을 뒤늦게 알아차린다.

두 번째 새해가 진짜 새해이듯 인생의 참된 결정도 두 번째에 이뤄진다. 특별히 10~20대를 염두에 두고 이 글을 쓴다. 두 번째 결정에 대한 비밀 하나를 일러주려 한다.

우선 담담하게 수긍해야 할 진실이 있다. 인생은 우연으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인생은 불공평하다. 예컨대 재벌 집안에서 태어나는 것은 오로지 우연이다. 누군가 나보다 먼저 번듯한 직업을 갖는 것도 수많은 우연의 귀결이다. ‘성공한 사람들’의 훈계와 달리 인생은 노력의 결과물이 아니다. 고시원에서 밤잠 설쳐가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청년이 재벌 3세보다 덜 노력한다고 누가 말할 수 있는가. 노력은 성취를 보장해주지 않는다.

인생은 우연에 의해 툭툭 끊어져 있다. 그 사이를 어떻게든 이어붙이려는 노력은 첫 번째 결정과 관련이 있다. 두 번째 결정을 내리려면 다른 힘이 필요하다. 마음속에 푸른 똬리를 틀고 당신을 가만히 바라보는 그윽한 열망, 즉 충동이다. 어느 날 느닷없이 밀어닥치는 호르몬이 인생을 바꾼다.

내 청년 시절 역시 충동으로 가득 차 있었다. 간절히 사랑하고 싶었으므로 사랑했다. 무모하게 구애했고 몸서리치며 저주했다. 그리고 분노했다. 화나게 하는 것들, 납득할 수 없는 것들을 향해 소리치고 팔매질하고 격문을 썼다. 책도 읽고 음악도 듣고 영화도 보았지만, 지금 돌아보면 연애와 데모에 쓸모 있는 만큼만 그러했다는 것을 알겠다.

그 충동이 내 인생을 만들었다. 삶의 곡절을 채우는 기쁨·분노·슬픔의 감정을 속속들이 알아보고 이해하려는 버릇 또는 능력, 그 감정을 촉발한 원인과 구조를 파고들어 궁구하는 버릇 또는 능력이 충동에 몸과 마음을 맡긴 가운데 영글었다. 그리고 기자라는 직업에 나를 가닿게 했다.

영어 단어 impulse의 어원인 라틴어 impulsus는 ‘충격’이라는 뜻 외에 ‘격려, 고무’라는 뜻도 있다. 위안을 바깥에서 구하지 말고 자기 내면에 꿈틀거리는 충동에 귀 기울이며 살펴보면 그것이 곧 청춘을 북돋우는 힘이 될 것이라고, 오늘의 젊은이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다만 충동에도 종류가 있다. 얕고 가벼워 일순 사라지는 충동이 있는가 하면, 심장 아래 복부에서 치밀어오르는 깊고 근본적인 충동도 있다. 얕은 충동을 따라가면 하루치의 위안을 얻는다. 깊은 충동에 심신을 맡기면 평생의 궤적이 바뀐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우리의 노동은 노력이 아니라 몰입이 된다.

예컨대 깊은 사랑에 빠진 사람이 그(녀)에게 바치는 시간이 어찌 노력이겠는가. 그것은 완전한 몰입이다. 그 몰입의 끝에서, 그것이 성공하건 실패하건 새 인생이 시작된다. 깊은 충동에 충실한 이는 매일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우연으로 가득 찬 인생은 불공평이라는 이름의 딱딱한 껍질을 뒤집어쓰고 있다. 그걸 깨작거려봐야 우연조차 만날 수 없다. 껍질을 깨는 방법을 원숭이도 알고 있다. 거머쥐고, 머리 위로 추켜올려. 주저 없이 내려친다.

인생은 불공평하다. 우연을 예측할 수는 없다. 하지만 뜻대로 살 수 있는 드문 기회가 기적처럼 찾아온다. 그때 필요한 것은 관습이 아니라 충동, 노력이 아니라 몰입이다. 그것이 삶을 바꾸고 세상을 바꾼다. 충동에 몸을 맡겨 몰입할 순간이 올해가 아니라고, 그 주인공이 당신이 아니라고 누가 말하던가.

안수찬 편집장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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