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정당방위

제7회 손바닥문학상 가작 수상작
등록 2015-12-29 14:56 수정 2020-05-03 04:28
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1

시험 종료를 알리는 종소리가 전국에 울려퍼졌다. 선미는 감독관의 지시에 따라 양손을 머리 위에 올렸다. 한숨 소리가 여기저기서 새어나왔다.

“망했다.”

한 수험생이 허무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툭 내뱉었다. 몇몇은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몇몇은 얼굴만 움찔했으며, 나머지는 미동도 없었다. 어떤 행동을 취했든 대부분 비슷한 심정이었다. 해방감은 순간이었고, 그냥 흘려보냈던 시간을 아쉬워하거나 앞일을 막연히 두려워했다. 그러나 선미는 달랐다. 그녀는 당장에 일어나 환호성이라도 지르고 싶었다. 역대 최고점을 받으리란 걸 직감하고 있었다. 누군가가 망했다고 하는 소리를 들으니 더욱 확신이 서면서, 자신의 직감이 맞는지 확인해봐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선미는 제출했던 휴대폰을 되찾은 뒤 곧바로 전원을 켜고는 누구보다 먼저 교실을 빠져나갔다.

선미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며 교문을 나섰다. 엄마가 전화를 받지 않아 휴대폰을 귀에 댄 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많은 부모들이 자식을 기다리며 겹겹이 서 있었다. 선미는 그들의 틈새로 자신의 부모를 찾았다. 여전히 휴대폰에서는 통화 연결음만 단조롭게 이어졌다. 선미는 다른 부모들과 눈이 마주쳤다. 점잖게들 서 있지만 하나같이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 그녀는 조금 웃기다고 생각했다. 수능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대학이 인생을 결정짓는다고 믿는 것만큼. 웃기다고 생각했다. 선미는 이런 모순을 이해하고자 했다. 승리자가 있으면 패배자도 있는 법이고, 패배자를 위한 변명도 필요할 터였다. 어찌되었건 그런 변명은 자신과는 상관이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그녀는 늘 승리자였다.

엄마가 전화를 받았다. 선미는 자신의 위치를 설명하려고 또 한 번 주위를 둘러보다가 부모들이 서 있는 뒤쪽으로 차를 한 대 발견했다. 경찰차였다. 마구잡이로 주차되어 있는 꼴을 보아하니 경찰관의 주차 실력이 형편없거나 다급한 사건이 발생한 것 같았다. 선미는 통화를 마치고, 경찰차가 세워진 곳으로 조금씩 다가갔다. 형사로 보이는 남자가 통화를 하고 있었다.

“곧 서로 돌아가겠습니다. 일단 사고 수습은 어느 정도 끝났…….”

“어허, 참, 형사 양반! 애들 듣겠네.”

한 아저씨가 남자의 말을 끊었다. 선미는 애들이 들어선 안 될 사건의 내용이 궁금했다. 조금 더 기웃거려볼까 하는데 누군가 왼쪽 어깨를 확 잡았다. 아빠였다. 그 옆에 엄마도 있었다.

“엄마! 아빠도 어떻게 왔네?”

“우리 딸 수능 날인데 일찍 퇴근했지.”

“딸, 시험 보느라 수고했어 정말.”

가족은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딸, 뭐 먹고 싶어? 다 말해봐. 어디 갈까?”

세 사람의 몸이 떨어지자마자 엄마가 선미에게 물어왔다. 쫓기는 듯한 목소리였지만 선미는 눈치채지 못했다. 본인이 더 급했다.

“엄마, 나 가채점부터 하면 안 돼? 지금 빨리 하고 싶은데.”

“어, 그러면 일단 차로 갈까? 저쪽에 대놨어.”

아빠가 그녀의 팔을 잡아끌면서 말했다.

조금 뒤 세 사람은 차에 탔고, 엄마와 아빠는 어느 레스토랑에 가면 좋을지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선미는 휴대폰으로 웹브라우저를 켰다. 바로 실시간 검색어가 떴다. 1위 수능 정답, 2위 수능 시간표, 3위 수험생 자살…까지 읽고, 선미는 1위를 터치했다. 주요 과목 3개의 정답지가 이미 공개되어 있었다. 그녀는 답을 적어온 수험표를 꺼내서 몇 분 동안 조용히 답을 맞췄다. 예상대로였다.

“대박! 나 총 2개밖에 안 틀렸어!”

선미의 기쁜 목소리가 차 안에 울렸다.

2

다른 사람들이 모두 교실을 빠져나갈 동안 효진은 미적미적 가방을 꾸렸다. 마지막 사람이 나가고 나서야 계속 깔고 앉은 오리털 파카를 집어들었다. 아침에 장롱 깊숙한 곳에서 꺼낸 옷이었다. 수능 한파라는 옛말을 곧이곧대로 믿어버린 탓이다. 집을 나서고 얼마 안 돼 잘못 입었다는 걸 알았지만, 갈아입고 오는 시간이 아까워서 그냥 고사장으로 향했다. 효진은 내내 창피했다. 아무도 자기를 주목하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래도 부끄러운 기분은 어쩔 수 없었다. 온몸으로 말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오늘 날씨 따뜻하다고 알려주는 엄마가 없었다고. 점심시간에 꺼낸 편의점 도시락도 마찬가지의 이유로 부끄러웠다.


<i>그래도 부끄러운 기분은 어쩔 수 없었다. 온몸으로 말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오늘 날씨 따뜻하다고 알려주는 엄마가 없었다고. 점심시간에 꺼낸 편의점 도시락도 마찬가지의 이유로 부끄러웠다.</i>

“아, 나도 편의점에서 사올걸. 엄마 밥 맛없는데.”

한 수험생이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녀는 그 말에 더 위축됐었다. 효진은 오리털 파카를 접어서 돌돌 말았다. 이미 책으로 가득 찬 가방에 파카를 밀어넣었다. 절반도 들어가지 않았다. 체중을 실어서 꾹꾹 눌러봤지만 오리털 파카는 그녀 마음만큼도 위축되려 하지 않았다.

효진은 오리털 파카를 가방에서 꺼냈다. 쓸데없이 힘쓰는 일은 그만두고 잠시 미뤄둔 일을 끝내기로 했다. 교실에는 정말 그녀뿐이었다. 휴대폰 전원을 켰다. 걸려온 전화는 없었다. 효진은 자기가 전화를 걸어볼까 하다가 웹브라우저를 켰다. 바로 실시간 검색어가 떴는데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뉴스를 검색했다. 검색창에 폭력, 남편, 의식불명을 썼다. 1시간 전에 뜬 최신 기사가 보였고, 떨리는 손가락으로 기사를 터치한 뒤 읽어나갔다.

‘정당방위을 인정할 수 없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효진은 이 문장을 꼭꼭 씹어 읽었다. 그러고는 책상에 얼굴을 묻었다. 그렇게 몇 분을 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메시지를 보내놓고 멍하니 앉아 있는데, 학교의 수위가 교실로 들어왔다.

“학생, 집에 안 가?”

효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집에 가도 치매 걸린 할아버지뿐이었다. 점심을 거르셨을지도 모른다. 저녁을 챙겨드려야 했다.

“부모님 밖에서 기다리실 텐데. 빨리 가봐. 곧 문 잠글 거야.”

수위가 말실수를 했다고 생각했지만 효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수위는 다른 교실을 확인하러 갔다. 효진은 할 일이 없어서 다시 웹브라우저를 켰다. 이제 실시간 검색어가 눈에 들어왔다. 1위 수능 정답, 2위 수능 시간표, 3위 수험생 자살…까지 읽고 그녀는 생각했다.

‘나보다 불쌍한 애가 있네.’

그뿐이었고, 1위를 터치했다. 미루어봤자 결과는 바뀌지 않는다는 걸 방금 깨달은 참이었다.

조금 뒤 효진은 엄청난 결과를 맞았다. 운이 좋아도 너무 좋았다. 마킹이 밀리지만 않았다면 틀린 문제는 딱 두 개였다. 그런데도 효진은 그다지 기쁘지 않았다. 그녀는 다짐했다. 만약에 신이 이걸로 인생이 공평하다 말한다면 절대 용서치 않겠다고.

3

오후 5시, 정애는 결국 효진을 데리러 가지 못했다. 아직도 법원 앞이었고, 오직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으니 2심도 당연히 무죄라고 생각했다. 변호사도 고용하지 않았다. 실은 그럴 돈이 없었다. 재판이 끝나자 검사에게라도 매달렸다. 검사는 대법원에 가도 판결이 바뀔 것 같진 않다고 했다. 정애는 딸에게 전화를 해야 할 것 같아 휴대폰을 집어들었는데 전할 말이 없었다. 하릴없이 손가락만 꿈지럭대다가 웹브라우저를 켰다. 실시간 검색어를 살폈다. 1위 수능 정답. 수능을 본 것도 아닌데 긴장감이 몰려왔다.

‘효진이는 더 긴장했겠지.’

얼굴 보기 민망하다고 너무 일찍 집을 나온 게 미안해졌다. 아침부터 마음 심란해지지 말라는 배려였다고, 속으로 변명하고 있었는데, 이제야 변명인 줄 알았다. 2위 수능 시간표. 생각해보니 도시락도 챙겨주지 못했다. 정애는 저도 모르게 주먹으로 가슴을 두드리다가 3위에 오른 검색어를 보고 동작을 멈췄다. 주먹을 쥔 손이 떨렸다. 손가락을 뻗어 수험생 자살이란 글자에 갖다 댔다. 기사의 미리보기 창에 효진이 시험을 치른 학교의 이름이 보였다. 마른침을 한 번 삼키고 그 기사를 터치하려는데 전화가 왔다. 효진이다. 안도감이 밀려왔다. 내 딸은 아니었다. 정애는 전화가 끊어질 때까지 가만히 있었다. 받을 용기는 없었다. 그러나 전화가 끊어진 순간, 정말 효진이 건 전화가 맞는지 의심이 들었다. 죽고 싶은 여자는 생각했다. 딸이라고 죽고 싶지 않을까.

‘엄마 어디야?’

그때 문자메시지가 왔다. 안도감이 두 번째로 밀려왔다. 답장은 하지 않았다. 딸아이와 이렇게나마 조금 더 멀어져서 모든 걸 끝내고 싶었다. 정애는 그날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4

아침 7시, 선미는 TV를 틀었다. 거의 1년 만의 시청이었다. 앵커와 기자의 목소리는 여전히 단조롭고 재미라고는 한 움큼도 느낄 수 없었지만, 굳이 채널을 돌리지는 않았다. 이제 곧 성인이니 뉴스도 봐야 한다고 생각하며 애써 귀를 기울였다. 시위, 파업, 당쟁 같은 단어들이 귀에 박혔다. 뉴스는 1년 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선미는 소파에 몸을 가만히 기댔다. 저 화면 속의 이야기들은 지금도 자신과 관련이 없었다. 그래서 “지난밤 서울시 ××구의 한 골목에서 여고생이 살해된 채 발견됐습니다.”라고 말하는 앵커의 멘트에 관심이 크게 쏠릴 수밖에 없었다. 마침 안방에서 나온 엄마가 선미의 손에서 리모컨을 뺏어 들었다.

“이런 건 아침부터 왜 봐.”

“아, 엄마 잠깐만.”

엄마와 딸이 실랑이를 하는 동안 앵커는 다음 소식으로 넘어갔다.

“폭력을 휘두른 남편을 때려 의식불명 상태에 빠지게 한 아내에 대해 정당방위를 인정할 수…픽.”

꺼진 TV 화면을 배경으로 앵커 대신 엄마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딸, 예쁜 것만 보고 들어도 부족한 인생이야.”

선미는 내심 동의했지만, 수능이 끝났는데도 구속받는 자신의 처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도 이제 알 건 알아야지.”

볼멘소리가 흘러나왔다.

“알면 다쳐.”

선미의 엄마는 장난스럽게 인상을 쓰고는 곧 부엌으로 갔다.

사실 선미는 알고 있었다. 알면 정말로 다친다. 그녀는 세간에서 말하는 온실 속 화초였다. 평탄한 인생을 살아왔고, 수능마저 기대보다 잘 봤다. 혹자는 선미의 굴곡 없는 인생을 권태롭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정작 그녀 자신은 별일 없는 자신의 인생을 사랑했다. 선미는 불행에 면역이 없었고, 안정이 곧 행복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작은 불행도 자신의 인생을 크게 뒤흔들 수 있음을 어렴풋하게 알고 있었으며, 이를 가장 두려워했다. 선미의 엄마도 그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제 고사장에서 있었던 일을 딸에게 얘기하지 않았다. 딸을 지키는 최선의 방법은 말하지 않는 것이라고 믿었다. 언젠가는 불행이 닥칠지도 모르지만, 늦게 겪을수록 좋았다. 행복하기만 해도 부족한 인생이었다. 그러니 아침부터 푸짐하게 한 상 차렸다. 선미도 음식이 한가득한 입으로는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

5

선미는 닫힌 교실문 앞에 서 있었다. 기분 좋은 긴장감에 한껏 들뜬 채로 교실문을 드르륵 열었다. 친구들이 인사를 건넸다. 우정과 경쟁심이 뒤섞여 얼기설기한 인사였다. 떠들썩하지만 서로 눈치만 보고 있는 교실이 선미는 마음에 들었다. 친한 친구들 틈에 끼어 앉았다.

“망했어.”


<i> 다들 망했다고 해도 같이 망했다고 할 수 없었던 그때를 기억했다. 불행은 늘 그녀를 비껴나갔다. 축복받은 인생이었다. 선미는 그런 식으로 자기가 사는 세상과 타인이 사는 세상을 철저히 분리했다.</i>

곧 한 친구가 시작했다.

“나도 망했어.”

다른 친구가 이어 받았다.

“정말 망했어. 나 어떡해.”

이건 또 다른 친구였다.

“왜 사냐, 나란 년.”

으레 자조가 따라붙으며 레퍼토리가 완성됐다. 선미는 입이 근질근질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일단은 가만히 있는 게 상책이었다. 그러면 예의 질문이 들어왔다.

“선미, 넌?”

이런 식으로.

“아, 난 생각보다는 잘 봤어.”

선미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와, 맨날 너만 잘 보고. 나쁜 년.”

“올 1등급 아니야?”

선미는 나쁜 년이라는 욕도 적당히 납득하려고 했다.

“응… 올 1 나왔어.”

또 한번 수그리며 말했다.

“헐, 대박.”

한동안 온갖 감탄사와 욕이 난무했다. 그러다 누군가 그 소란을 깼다.

“효진이 넌? 너도 잘 봤지?”

선미도 효진의 점수가 궁금했다. 슬쩍 안색을 살피니 영 우울해 보이는 게 잘 본 것 같진 않았다.

“아, 나도 잘 봤어. 사탐 하나 빼고 다 1등급이야. 답안지 밀려 쓰지만 않았으면?”

효진은 표정을 바꾸어 자랑하듯 실실댔고, 다들 아까처럼 감탄사와 욕을 내뱉었다. 선미는 그저 잘됐다고 말했는데 속으로는 꽤 놀라고 있었다. 자기보다 늘 떨어지던 효진이 비슷한 성적을 받았다는 게 놀라웠고, 자기처럼 겸손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도 놀라웠다. 무엇보다 우울했던 표정을 금세 바꾸는 게 신기했다. 효진은 자주 우울한 표정이었다. 문제를 안고 사는 얼굴이었다. 선미는 그럴 때면 효진을 피했다. 그녀는 생각했다. 친구라도 해결해줄 수 없는 문제는 많다. 그렇다면 굳이 그 문제가 뭔지 듣고 함께 고민하고, 또 함께 고생할 필요는 없다. 나 살기도 힘든 세상이라고 흔히들 말하지 않던가. 그런데 알고 보니 효진은 원래 우울한 얼굴일지도 모른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담임 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왔다.

“다들 지금까지 고생했다. 그런데 앞으로 좀 더 고생해야 되는 거 알지? 오늘은 종이에 가채점한 점수 적고, 교무실로 와서 나한테 제출하고 가면 돼. 뭐 더 공부할 사람은 남아서 공부해도 되고.”

담임은 자신의 농담이 재밌다는 듯 웃고 교무실로 돌아갔다. 선미와 효진의 무리는 갑자기 생긴 시간을 어떻게 보내면 좋을지 고민했는데 모두 허사로 돌아갔다. 선미는 논술 특강이 일찍부터 잡혀 있었고 대부분이 그랬다. 효진은 잠깐 학교에서 할 일이 있다고 말하며 떠나는 친구들을 배웅했다. 어제처럼 교실에 혼자 남을 때까지 한참을 미적미적거렸다.

6

선미는 집으로 가는 버스를 그냥 보냈다. 마음이 여느 때보다 가벼웠기 때문에 마포대교 정도는 걸어서 건널 수 있을 것 같았다. 논술 학원도 3시까지 가면 되는데 아직 11시밖에 되지 않았다. 날씨도 따뜻한 편이었다. 적당한 바람에 기분이 좋았다. 선미는 다리를 건너면서 아까 교실에서 있었던 일을 생각했다. 다들 망했다고 해도 같이 망했다고 할 수 없었던 그때를 기억했다. 불행은 늘 그녀를 비껴나갔다. 축복받은 인생이었다. 선미는 그런 식으로 자기가 사는 세상과 타인이 사는 세상을 철저히 분리했다.

그러나 다리를 절반쯤 건넜을 때 선미는 정애를 보고 말았다. 정애는 다리의 난간 아래로 신발을 가지런히 놓아둔 채, 누가 봐도 강물에 몸을 던질 태세를 하고 있었다. 신발 밑에는 종이 한 장이 금방이라도 날아가버릴 듯 강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선미는 자신이 누군가의 자살을 목격하기 직전이라는 것을 알았다. 제대로 가늠은 안 되지만 그녀의 인생에 한동안 트라우마가 될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상황을 그냥 내버려둘 수 없었다. 선미는 빠른 걸음으로 정애에게 다가갔다. 정애는 조금 전에야 겨우 죽기로 마음먹고 강물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흐르는 강물결에 온 정신이 쏠려 있었기 때문에 선미가 자기 바로 옆까지 다가온 것을 눈치챘을 때에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미안한데요…”가 선미의 첫마디였다. 정애는 “아줌마, 지금 여기서 뭐하시는 거예요?”라든가 “죽으면 안 돼요!”라든가 “잠깐 제 얘기 좀 들어보세요.” 같은 말을 들을 거라 기대했기 때문에 그 첫마디에 저절로 고개가 돌아갔다. 정애는 선미의 차가운 표정과 마주했다.

“저는 아줌마의 죽음을 보지 않을 권리가 있어요.”


<i> “저는 아줌마의 죽음을 보지 않을 권리가 있어요.”
죽기 전에 또 한 번 이런 기막힌 일이 생기다니. 정애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숨을 가다듬었다. 강바람이 셌는지 호흡이 가빠왔다.
</i>

죽기 전에 또 한 번 이런 기막힌 일이 생기다니. 정애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숨을 가다듬었다. 강바람이 셌는지 호흡이 가빠왔다.

“학생, 미안한데 내가 너무 억울해서 죽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네. 학생은 그냥 갈 길 가면 돼.”

“아줌마가 어떻게 죽든 제가 상관할 바는 아니죠. 그런데 제가 그 사실을 알아야 할 필요는 없잖아요? 그러니까 일단 여기서는 죽지 말아주세요.”

정애는 놀란 눈을 하고 선미를 위아래로 훑었다. 효진과 같은 교복을 입고 있었지만, 아주 다른 사람이었다. 정애는 선미의 말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다가 무언갈 깨달았다.

“그래 너 같은 사람들 때문이야. 남의 고통에 이토록 무관심한 사람들.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 줄 알아? 내가 얼마나….”

선미는 귀를 막았다.

“듣고 싶지 않아요. 아줌마 사정 같은 거. 그냥 좀 아줌마 집 같은 데로 가주세요.”

정애는 선미의 손목을 잡고 손을 귀에서 떼어냈다.

“네가 그냥 네 집에 가면 되지.”

“마포대교, 중년 여성, 자살. 뉴스에서라도 이런 단어들을 보게 되면 난 아줌마를 생각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 생각 평생 가지고 살고 싶지 않으니까. 아줌마가 가요.”

그 순간 바람이 아주 강하게 불었다. 신발 밑에서 펄럭이던 정애의 유서가 다리 밑으로 떨어졌다. 정애는 문득, 자신이 죽어도 아무도 그 이유를 모를 수도 있다고, 자신의 죽음이 단지 실종처리로 끝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내버려둘 정도로 결심이 간단치는 않았다.

“너, 못 가. 보고 가.”

정애는 선미의 손목을 잡고 있던 두 손에 힘을 꽉 줬다.

“아, 이거 놔요! 놓으라고!”

선미는 벗어나려고 발버둥쳤다.

“너처럼 잔인한 애는 이런 걸 봐야 돼. 그리고 평생 죄책감 갖고 살아.”

“아아악, 그만두라구요!”

선미는 정애를 확 밀쳤고, 그 바람에 정애는 바닥에 고꾸라졌다. 정애의 손바닥과 무릎에서 피가 배어나왔다.

“이, 이건, 정당방위예요. 아줌마가 내 인생을 망치려고 했잖아요!”

선미는 어제 치른 법과 정치 영역 시험에 정당방위에 대한 문제가 있었다는 게 기억났다.

정애는 고꾸라진 상태에서 고개만 들어 선미를 노려보았다.

“정당방위? 나도 정당방위였어. 10년 동안 당했다고. 그날도 또 술 먹고 때리려고 하길래 나도 정당방위로 좀 민 것뿐이야. 맞는 것도 지긋지긋했단 말이야!”

정애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선미의 표정을 보고서도 계속 말했다.

“치매 걸린 자기 아부지 병원 데려갔다 온다는데도 때리려고 했어. 그 놈이 다치게 될 거라는 걸 내가 이미 알고 있었다고? 그게 뭐? 그 자식은 내가 다칠 걸 모르고 때렸니? 난 이제 치매 걸린 시부에 식물인간 된 남편까지 뒷바라지하면서 살아야 돼. 근데 감옥까지 가라고? 내가 뭘 잘못했는데!”

정애는 바닥에 엎드린 채로 엉엉 울었다. 선미는 대충이나마 사연을 들으니 인지상정 정애에게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동시에 열정적으로 울고 있는 정애가 지금 당장 죽지는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선미는 자신이 사람을 살렸을지도 모른다는 묘한 쾌감마저 들었다. 그녀는 이제 정애의 곁을 빠져나가려고 살며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정애가 손으로 자신의 발목을 움켜쥐자 선미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정애는 선미의 다리를 지지대 삼아 일어섰다.

“네가 마지막까지 내 인생을 망치니 나도 정당방위 좀 하자. 학교는 알겠고. 몇 학년 몇 반이야?”

정애는 선미의 손목을 끌고 선미가 왔던 길로 되돌아 걷기 시작했다. 선미는 자기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정애가 학교에 가서 자신에 대해 어떤 식으로 말하려고 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정애가 말하는 정당방위가 무엇인지도 알 수가 없었다. 머리를 쥐어짜도 소용이 없었다. 걸음이 무척 빨랐다. 손목을 잡은 힘이 너무 세서 뿌리칠 수가 없었다. 정애는 정신이 반쯤 나가버린 것 같았다. 선미는 다만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더 이상 정애는 모르는 사람이 아니었다.

7

정애와 선미가 교문에 들어섰을 때, 효진과 담임 선생님이 그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양쪽에서 서로를 알아보았다.

“엄마!”

효진이 소리쳤고, 정애는 그제야 조금 정신을 차렸다.

“어, 효진아.”

“효진이 어머님이세요? 그동안 한 번도 얼굴을 못 뵀네요. 근데, 선미랑 같이 오시나봐요?”

담임은 그냥 하는 말이었지만 정애는 변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선미의 손목을 꼭 붙들고 있는 걸 효진이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아, 그게…….”

“앞에서 만났어요. 효진이 보러 오신다길래 그냥 저도 같이 왔어요.”

선미가 낚아채듯 대답했다. 효진은 의아한 표정으로 선미와 정애를 번갈아 쳐다봤다. 정애도 같은 표정으로 선미를 쳐다봤다.

“그럼 선미도 알고 있는 거니? 어머님, 안 그래도 효진이랑 오늘 상담을 했는데 그동안 맘고생 많으셨죠. 사실 제 친구 중에 변호사가 있는데 오늘 한번 얘기를 해보려구요. 효진이도 많이 생각하고 얘기해줬으니까 저도 노력해볼게요. 선미도 도와주는 거지? 법과 정치도 만점이더라, 너?”

담임이 또 농담이랍시고 웃었다.

“네!”

선미는 얼떨결에 대답했다. 하지만 얼떨결이 아니었다고도 생각하면서 효진을 바라보았다. 효진은 우울한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눈가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그 앞에서 정애는 울었다.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해요. 정말로요.”

정애가 선미의 손목을 놓고, 이젠 담임의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효진은 그런 엄마가 창피했지만 말리지는 않았다. 선미는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왠지 자신도 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곧 울먹이며 말했다.

“울지 마세요. 효진이 이번에 시험도 정말 잘 봤는데…….”

이유경

가작    이유경  수상  소감


오래된  감기처럼  내게  들러붙은  이야기


이유경 제공

이유경 제공

메일이 왔다. 당선작 선정과 관련해 이야기를 하려는데 개인정보가 전혀 없으니 연락을 달라는 내용이었다. 작품에 이름 석 자만 달랑 적어 보냈었다. 그런 사람이 나뿐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마저도 꼭 써야 하나 고민했을 만큼 무엇 하나 확신하지 못했다. 그런 시기를 보냈고, 지금도 보내고 있다.
스물여섯의 끝자락. 내 이름 적는 데도 용기가 필요할 만큼 모든 것이 불안불안 위태위태하다. 그런데 이 와중에 글을 썼다.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 오래된 감기처럼 내게 떡 들러붙어 떨어질 생각을 않던 이야기였다. 키보드 자판을 두드리고 두드려 겨우 떨쳐냈다 했는데 좋은 소식을 가지고 돌아왔다. 몇 번이나 다시 읽으며 뺨을 맞았다. 세상의 뺨이 아니라 내 뺨을 때리는 손바닥이었다. 그래도 맞고 나니 불안함은 좀 가시는 것 같다.
글을 쓸 수 있는 장을 마련해준 에 감사드리고, 부족한 글에서 좋은 점을 발견해주신 심사위원 분들께 감사드린다. 내 글을 읽어주실 모든 독자분들께도 미리 감사드린다. 마지막으로 글에 대한 고민에 누구보다 귀 기울여준 은정 언니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