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서가 예뻤다. 퀴즈큰잔치 엽서는 형식과 규격이 정해져 있다. 이 딱딱한 엽서가 화사한 꽃밭이 됐다. 서너 종의 꽃들을 눌러 말린 압화들이 엽서 곳곳에 곱게 앉았다. 아기자기한 스티커도 무뚝뚝한 엽서에 생기를 입혔다. 이동욱(33)씨는 고등학교 사서 교사다. 아름다운 것에 관심이 많은 남자 선생님이다.
미술 쪽에 관심이 많다. 꽃을 가꾸고 압화를 만드는 것도 좋아한다.
학교 도서관에서 을 구독한다고.사서 교사는 어린 시절부터 꿈이었다. 책을 좋아했다. 입시 공부에 지친 학생들에게 책을 통해 넓은 세계를 안내해주는 역할을 하고 싶었다. 2010년 3월 초임 사서 교사로 임용됐다. 학교에 부임한 첫해에 교장 선생님께 결재를 받고 구독을 시작했다. 학생들이 을 읽고 사회현상에 대한 정확한 안목을 갖게 하고 싶었다.
교과 교사가 아니어서 학생들 만날 기회가 많지 않을 텐데 어떻게 학생들을 책의 세계로 안내하나.고민 끝에 생각해낸 것이 ‘토요 프로그램’이다. 인문계 고등학교는 대학 입시를 떠나서 생각하긴 어렵다. 책읽기를 통해 ‘고등학교 이후’를 모색해볼 수 있도록 ‘개론서 읽는 시간’을 운영하고 있다. 사회복지학이나 법학, 국어교육학, 게임기획학 등 여러 분야에서 대학 1~2학년 수준의 책들을 읽어내도록 ‘탐독’과 ‘발췌독’을 훈련한다.
시사주간지를 학생들은 어떻게 수용하나.특별활동으로 도서부를 맡고 있는데 을 교재로 활용해 시사토론을 한다. 찬반이 맞서는 이슈를 두고 학생들이 사고능력과 말하기, 글쓰기 능력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된다. 학생들이 과월호를 찾아가며 논술 공부를 하기도 한다. 이 청소년 의제와 청소년 독자에게 좀더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 청소년이 읽고 토론할 수 있는 눈높이의 콘텐츠를 기획해주길 바란다.
사서 교사로서의 바람이 있다면.책의 중요성에 비해 학교 현장에 채용되는 사서 교사가 많지 않다. 전문성을 갖춘 사서 교사들이 학생과 책으로 소통할 수 있는 길이 많이 열렸으면 좋겠다.
그는 엽서 말미에 이렇게 썼다.
“앞으로 제가 정년퇴직하는 2043년 그날까지 학교도서관으로 계속 정기구독할 생각입니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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