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4월 노래 <나를 돌아봐>로 데뷔한 듀스는 ‘서태지와 아이들’과 함께 1990년대 가요계의 아이콘이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악적 바탕이 록이었다면, 김성재와 이현도로 이뤄진 듀스는 뉴잭스윙과 솔 등을 기반으로 흑인음악을 일관되게 추구한 뮤지션이었다. 듀스를 한국 힙합의 원조라고 하는 이유다.
그가 떠난 지 올해로 26년이 됐다. 그 무심한 세월 동안, 김성재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은 여전히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 김성재 변사 사건이 대한민국 연예계 최대 미제사건으로 불리는 이유다.
경찰은 사회적 이목을 집중시킨 살인, 강도 등 강력사건 가운데 6개월 이상 지났는데도 피의자를 검거하지 못한 사건을 실무상 미제사건으로 본다. 대검찰청의 2019년 범죄통계를 보면, 살인 총 발생 건수 849건(기수·미수 모두 포함) 가운데 808건에서 피의자를 검거했고, 41건은 미제사건으로 남았다.
김성재의 유족은 오늘도 고통 속에 살고 있다. 가장 격이던 큰아들의 느닷없는 죽음으로 가족의 삶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범인이 누구인지, 죽음의 이유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탓에 온전히 망자를 떠나보낼 수조차 없었다. 한국 사회는 이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당시 수사에 문제점은 없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특히 김성재 변사 사건은 경찰 초동수사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대표적 사례다. 사건을 미궁 속으로 빠뜨린 당시 검시제도의 문제점은 오늘날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전문가 증언을 배척하거나 채택하는 등의 문제 또한 유효하다. 모두 김성재 변사 사건으로 짚어봐야 할 공익적 가치다.
지난 1년6개월여 동안, 그날의 진실을 알기 위해 수사·공판 기록과 당시 신문·잡지 기사 등 3천 쪽 넘는 관련 문서를 검토하고 당시 수사기관·법원 관계자들을 수소문해 인터뷰했다. 유족과 지인들을 만났고 법의학자와 의사들의 조언도 구했다. 살인 용의자로 지목돼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가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가 확정된 김성재 전 여자친구 쪽 변호인들도 수차례 접촉했다. 이제 26년 전 한국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죽음의 진상을 들여다본다. _편집자주
① 운명의 밤
② 오른팔의 주사 자국
③ 누가 부검을 반대했나
④ 진정서와 동물마취제
⑤ 제보자와 황산마그네슘
K 김성재 여자친구
L 김성재 매니저
육미승 김성재 어머니
정희선 국과수 약독물과장
안원식 서울서부지청 검사
“김성재 사건과 관련해서 제보할 게 있는데요.”
1995년 12월7일 목요일 오후, 한 남자가 경찰에 전화해 이렇게 말했다. 제보자는 서울 반포동물병원장 배○○(당시 32살)이었다. 배 원장의 제보는 충격적이었다.
그는 평소 애완견 치료차 드나들던 K가 자신의 병원에 와 “애완견이 갑자기 똥오줌을 가리지 못하는 치매증 상태로 괴로워서 볼 수가 없어 안락사를 시켜야겠다”고 하여 K에게 동물용 마취제인 프랑스제 수입품 졸레틸50(분말과 희석액 각 한 병씩) 한 세트와 황산마그네슘 7g, 주사기 2개(3cc용) 등을 11월 초1 3만원에 판매했다면서 이런 사실을 경찰에 알리지 말아달라고 12월1일에 찾아와 부탁했다고 했다. 이 자리에서 K는 부검하면 졸레틸 성분도 나오느냐고 먼저 물었다고 배 원장은 말했다. 김성재의 애인이라는 이유로 곤경에 빠질까 두려워 이같이 부탁한다는 K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배 원장은, 김성재 몸에서 졸레틸이 발견됐다는 뉴스와 신문 보도를 보고 놀란 나머지 신고를 결심하게 됐다고 했다.2
배 원장의 신고는 K를 김성재 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로 만든 가장 강력한 이유였다. K가 배 원장에게 동물마취제를 사간 사실을 숨겨달라고 말한 12월1일은, 김성재 몸에서 동물마취제가 검출됐다는 내용의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 부검 결과가 서울 서부경찰서(서부서)에 아직 통보되기 전이다. 따라서 그 내용을 국과수 관계자가 아닌 일반인은 알 수 없던 시점이었다.
배 원장 신고를 접수한 서부서 형사과장 이석채는 여인근 경장과 경찰들을 K의 자택인 서울 여의도 S아파트로 급파했다. K가 자택에서 긴급체포된 시각은 12월7일 저녁 6시25분이었다. 체포 당시 K는 배 원장의 제보 내용을 완강히 부인했다. 자택을 수색했지만 범죄와 관련한 증거물을 찾지 못한 경찰은, K를 형사과로 압송한 뒤 곧바로 배 원장과 대질심문을 했다. K는 대질심문에서 졸레틸과 황산마그네슘, 주사기 등을 구매한 사실을 거듭 부인하다 4시간 만에 결국 배 원장의 제보 내용이 맞다고 시인했다.3 이날 밤, K는 유치장에 수감됐다.
K를 체포한 다음날인 12월8일, 경찰은 김성재를 살해한 혐의로 김성재 여자친구인 K를 긴급체포했다고 발표했다. 체포는 7일에 했지만 8일 발표하면서, 12월9일치 신문에 체포 소식이 실렸다. 경찰은 “K가 범행 당일 텔레비전 쇼프로그램 출연으로 피곤해하는 김성재씨에게 피로회복제라고 속인 뒤 동물마취제를 김씨의 오른팔에 28회 주사해 약물중독으로 숨지게 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K가 지난 11월 초 서울 서초구 반포동물병원에서 동물용 마취제 1세트, 황산마그네슘 7g과 1회용 주사기 2개 등을 구입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 마취제 성분이 김성재 사체에서 발견된 성분과 같다”고 했다. 김성재를 죽인 범인이 여자친구라는 경찰 발표로 듀스 팬들과 연예계는 또 한 번 큰 충격에 빠졌다.
K “의사 국시 떨어져 자살하려고 샀다”“약품은 치과의사 국가고시에 떨어진 뒤 좌절감에서 자살하려고 샀던 것으로 곧바로 동네 쓰레기통에 버렸어요.” 이날 서부서 형사과에서 K와 출입기자들의 일문일답도 이뤄졌다. 1995년 당시엔 경찰서 출입기자들이 주요 사건 피의자와 문답을 주고받는 일이 가능했다. 이때 K는 범행 사실을 강력히 부인했다. 그는 “1993년 9월 서울 강남 젬마나이트클럽에서 처음 성재씨와 만난 뒤 서로 결혼을 약속할 만큼 아주 사랑하는 사이였고 그가 헤어지자는 말을 한 적도 없다”며 “사건 당시 김씨가 잠든 것을 보고 곧바로 호텔을 나왔다”고 주장했다. K는 “범행을 저지를 이유가 없는데 경찰이 물증도 없이 표적 수사를 벌이고 있다”고 했다. 차분하고 조리 있게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그러나 경찰은 K가 범인이라는 확신에 차 있었다. 직전까지 김성재 사인을 환각성 약물 투약에 의한 사고사라고 굳게 믿었던 그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전광석화와 같은 태세 전환이었다. K가 긴급체포되기 반나절 전인 7일 오전, 주요 일간지에 타살 가능성이 잇따라 제기되자 경찰은 내부보고용 해명자료를 만들었는데, 여기에서조차 사고사에 방점을 찍고 있었다.
12월9일 토요일 오전 11시35분. 긴급체포 만료인 48시간을 7시간 앞둔 시점. 서부서는 살인 혐의로 K에 대한 구속영장을 서울지검 서부지청에 요청했다. 서부지청 안원식 검사는 이를 바탕으로 곧바로 서울지법 서부지원에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안원식은 주검에서 발견된 졸레틸을 배 원장에게서 K가 구입한 점, 이 사실을 배 원장에게 숨겨달라고 한 점, 사망사고가 발생하기 넉 달 전인 1995년 7월 김성재에게 가스총을 쏘고 테이프로 결박하는 등 집착하는 행동을 했다는 참고인들 진술4을 볼 때 혐의가 충분히 소명됐다고 판단했다.
그날 오후, 관할 서울지법 서부지원은 K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K는 서부서 유치장에서 영등포구치소로 이감됐다. K의 구속으로 경찰은 쾌재를 불렀지만, 언론의 반응은 싸늘했다. 언론은 경찰을 연일 강도 높게 비판했다. 초동수사 부실로 물증 확보에 실패한데다, 피의자를 검거한 것도 수사가 아닌 결정적 제보로 얻어걸린 형국이었기 때문이다. 주요 일간지들은 물증 없이 심증과 정황만으로 K를 구속했다며 향후 치열한 법정 공방이 벌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혐의 입증 자체가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적지 않았다.
한편, 딸을 면회한 뒤 무죄를 확신한 K의 어머니 고○○이 변호사 박○○과 함께 마포서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12월11일 월요일 오후였다. 고○○이 말했다.
“성재와 딸 K가 계속 만나왔고 성재는 검은 부츠를 선물로 건네오는 등 사이가 좋았기 때문에 상대방을 살해할 만한 아무런 심리적 동기가 없습니다.”5
이 자리에서 변호사 박○○은 범인으로 의심 가는 사람이 있고 추후 누군지 밝히겠다며 사건 이후 미국으로 돌아간 흑인 백댄서의 마약 투약 의혹 등을 아울러 제기했다.
김성재의 죽음을 사이에 두고 두 엄마는 싸움을 치렀다. 고○○의 자리는 정확히 김성재의 어머니 육미승의 반대편에 있었다. 두 사람의 운명은 얄궂었다. 서로 모르고 살던 두 여자가 자식들의 인연 때문에 마주 섰다. 한 엄마는 죽어서 말할 수 없는 아들을 대신했고, 또 다른 엄마는 갇혀서 말할 수 없는 딸을 대변했다. 자식을 위한 엄마들의 싸움이 시작된 것이었다. 양보할 수 없고, 피할 수 없는 다툼이었다.
‘김성재 몸에선 반포동물병원장 배○○이 K에게 팔았다는 황산마그네슘이 검출되지 않았다. K가 주사했다면 다 검출돼야 하는 거 아닌가? 환각 성분이 있는 졸레틸만 검출됐다는 점에서 약물중독에 의한 사고사가 명백하다. 따라서 K는 결백하다.’
당시 K의 변호인 박○○은 언론을 상대로 이런 취지의 무죄 주장을 펼쳤다. 기소하기 위해서라도 경찰은 이를 반박해야 했다. 경찰이 다시 국과수에 김성재의 주검에 황산마그네슘이 있는지 분석을 의뢰한 배경이었다. 12월12일 화요일이었다.
김성재에게선 일반인보다 많은 마그네슘 검출12월16일 토요일, 서부서는 K를 서울지검 서부지청으로 구속 송치했다는 내용의 살인 피의사건 수사결과 보고를 서울경찰청에 상신했다. 이제 수사는 경찰에서 검찰로 넘어갔다.
K가 검찰에 송치되는 와중에 국과수 약독물과장 정희선은 수십 차례 분석한 끝에 김성재 몸에서 황산마그네슘을 찾아냈다. 그러나 끝이 아니었다. 마약 검사용으로 의뢰된 소변 30종과 다른 사인으로 사망한 사람에게서 채취한 소변으로 마그네슘이온을 측정해, 변사자 소변에서 검출된 마그네슘 농도와 비교해야 했다. 황산마그네슘이 외부에서 투여됐음을 좀더 확실하게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황산마그네슘은 인체에 투여되면 황산과 마그네슘염으로 이온이 분리된다.
그 결과, 살아 있는 사람 소변에서 검출된 마그네슘 농도(28.5~128.5ppm)가 변사자 시료(281.5ppm)보다 2~10배가량 낮았다. 또 다른 부검 사체(18.2~51.8ppm) 소변을 변사자 사료와 비교해도 현저히 낮았다. 김성재의 혈액에서도 67.8ppm의 마그네슘이 검출됐다. 이런 실험 결과는 변사자의 몸속이 아닌 외부에서 황산마그네슘이 투입됐을 가능성을 가리키고 있었다. 더욱이 황산마그네슘은 중추신경 억제, 골격근 이완, 경련 진정 등의 마취제와 비슷한 작용을 하기 때문에 졸레틸과 황산마그네슘이 같이 검출됐다면 약물의 상승작용이 있었으리라 예상됐다. 이런 내용을 종합해서 감정서를 작성해 서부서로 보냈다. 12월18일 월요일이 었다.
정희선이 김성재 몸속에서 비정상적인 수치의 마그네슘염을 발견한 이날 저녁, 서부지청은 K의 여의도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K가 사건 당일 들고 있었다는 검은색 털가방 등 직접증거를 찾기 위해서였다. 안원식은 털가방 안에 주사기와 졸레틸 약병 등이 들었을 것으로 추정했지만, 이날 검찰은 K의 집에서 끝내 털가방을 찾지 못했다. 사건 발생 한 달 만에 이뤄진 검찰의 압수수색은 허탕으로 끝났다.
12월20일 수요일, 사건 한 달째인 이날 정희선은 주검에서 또 다른 중요한 증거를 찾아냈다.
오승훈 <한겨레> 기자 vino@hani.co.kr
공동기획 팩트스토리
리얼리Zoom-듀스 김성재 변사 사건 ⑥누락된 증거와 첫 공판로 이어집니다.
1. 배○○은 경찰과 검찰 조사에선 판매 시점을 11월 초라고 했다가 1심 공판에선 9~10월로 번복했다.
2. 배○○ 경찰, 검찰, 1심 공판 진술
3. 서울 서부경찰서 형사과, 수사결과 보고, 1995년 12월15일
4. 항소심 재판부는 사건 전 K가 성재에게 쏘았다는 가스총은 실수로 발사된 것이고, K가 성재를 테이프로 결박했다는 증언은 와전된 것으로 사실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5. 성재 어머니 육미승은 “이 부츠는 백댄서 부츠와 같은 것이다. ‘K가 돈을 주겠다’며 ‘하도 선물을 사오라’고 해 백댄서들의 무대의상을 사면서 함께 산 것이다. 그 사실을 알고 K는 부츠를 신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오승훈 기자는 취재 과정에서 김성재 여자친구 K의 입장을 청취하려 여러 차례 직간접적으로 인터뷰 또는 서면 취재 요청을 했으나 그동안 답이 없었습니다. 보도 이후 2월17일 K가 변호인을 통해 <한겨레>에 내용증명을 보내왔습니다.
K의 변호인은 내용증명에서 “김성재의 몸에서 황산마그네슘을 찾아냈다고 하였으나 김성재의 몸에서 황산마그네슘은 발견되지 않았다”며 “법원은 김성재의 주검에서는 황산마그네슘이 투약되었음을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으며, 피고인이 구매한 것으로 알려진 황산마그네슘 3.5g은 치료약의 범위 내로 인체에 아무런 해를 주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고 밝혔습니다. 또 “K가 반포종합동물병원을 방문한 시기는 11월 초순경이 아니라 9월 초순경(김성재가 사망하기 약 2개월 전)”이라며 “K가 배○○으로부터 구매한 약품은 졸레틸1병과 황산마그네슘 약 3.5g”이라고 했습니다. 아울러 “판결문에 나타나 있는 바와 같이 K는 김성재와 단둘이 있던 상황에서 조작 실수로 가스총이 발사되어 벌어진 것으로서, 가스총은 K가 총포사로부터 빌린 샘플용으로 당시 가스총에는 시험탄인 물탄이 장전되어 있었다”며 “시험탄인 물탄은 인체에 아무런 해가 없고 눈에만 약간 매운 정도에 불과하다”고 전했습니다. 또한 “법원은 ‘결박 사건’에 대하여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니라, 김성재가 장난스럽게 생각되는 가스총 사건과 관련하여 만들어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바 있다”고 했습니다.
또 “법원 판결문 내용에서 보듯, 기자가 증인으로 들고 있는 국과수 약동물학과장 정희선 역시 황산마그네슘 3.5g은 치료약 범위로 인체에 아무런 해를 주지 않는다고 법원에서 진술한 바 있으며, 법원은 김성재의 몸에서 검출된 마그네슘염의 양은 정상범위로 마그네슘이 K에 의하여 김성재에게 투여되었다고 단정 짓기 어렵다는 취지로 판단하였다”고 알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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