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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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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와 신영철

등록 2015-02-07 12:22 수정 2020-05-02 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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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8호는 표지이야기로 ‘떠나는 자’를 집중적으로 다뤄보기로 했다. 오는 2월17일 퇴임하는 신영철 대법관이 그 주인공이다. 굳이 한 대법관의 퇴임에 즈음해 다소 딱딱해 보임직한 기획 기사를 준비한 까닭은, 불행히도 ‘법관’ 신영철이 우리 사회에 남긴 얼룩이 너무 진하고 크다는 판단에서다. 그의 행보는 우리 사회에서 재판부의 독립성이 무참히 훼손되고 법원의 저울이 갈수록 한쪽으로 기우는 불행한 현실과 정확하게 그 맥이 닿아 있다.
이명박 정부의 집권 첫해인 2008년 초여름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집회의 시간이었다. 당시 서울중앙지법원장으로 재직하던 신 대법관은 특정 재판부에 ‘몰아주기’ 하는 방식으로 촛불 재판에 노골적으로 개입했다. 야간 옥외집회 금지 규정에 대한 위헌법률심판 제청으로 재판이 중단되자, 형사단독판사들에게 직접 전자우편을 보내 재판을 독려하기도 했다. 엄정한 법의 잣대보다는 정권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처절한 ‘충정’의 발로였다. 이듬해인 2009년 초 그가 대법관에 임명됐을 때 전국의 500여 판사들은 판사회의를 열어 그의 행동이 재판의 독립성을 훼손한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럼에도 ‘정치 판사’와 정권의 공생 의지가 확고하게 유지되는 한, 대법관 신영철의 지위는 흔들리지 않았다. 온갖 논란과 얼룩에도 6년의 임기를 보란 듯이 채우고 ‘유유히’ 떠나게 된 배경이다.
판사 신영철이 온몸을 던져 구해냈고, 그러기에 그의 충정을 대법관의 영예로 보상해준 인물이 바로 이명박 전 대통령이다. 촛불시위가 한창일 당시 청와대 뒷산에 올라 멀리서 들려오는 시위대의 구호와 노래 소리에 눈물을 흘렸다는 그 대통령 말이다.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MB의 남자’ 신영철 대법관에 대한 표지이야기 기사를 한창 준비하던 중, ‘떠난 자’ 이 전 대통령이 재임 기간을 다룬 회고록 으로 뉴스의 한복판으로 들어섰다. 이 전 대통령은 책장을 넘기기 힘들 정도로 온통 자화자찬과 책임회피 문장으로 일관한 회고록의 올바른 ‘이해’를 돕겠다며 친절하게도(!) 100쪽 남짓 분량의 ‘해설서’를 별도로 내놓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회고록의 내용과 관련해 논란이 일자, 이 전 대통령 쪽은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의 입을 빌려 “이번엔 정치적으로 민감한 대목은 모두 뺐다”고 되받아치는 여유도 부렸다. “그럼, 2년쯤 뒤에 2편이 나오는 것이냐”는 질문에 이 전 수석은 “그렇다”며 앞으로 ‘회고록 정치’에 적극 나설 것임을 시사했다. MB-신영철 조합의 컬래버레이션이 일정 부분 우리 사회의 ‘현재’를 빚어낸 비밀이었다면, 우리 사회의 ‘미래’는 서둘러, 그리고 철저하게 그 얼룩을 걷어내고 그들에게 대가를 치르도록 하는 데 달려 있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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