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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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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레랑스의 힘

등록 2015-01-13 15:51 수정 2020-05-03 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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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22일, 노르웨이 오슬로 인근 우퇴위아섬은 한순간에 비극의 현장으로 변했다. 세상은 이날을 ‘피의 금요일’이라 불렀다. 집권 노동당의 청년캠프가 열리던 중 극우 테러리스트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가 총기를 무차별 난사한 참사가 벌어진 것이다. 오슬로의 한 정부기관에선 동일범 소행의 폭탄테러도 발생했다. 100명에 가까운 희생자가 나왔다. 이날 테러는 집권당의 옌스 스톨텐베르그 총리를 겨냥했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총리가 사고 당일 청년캠프에 참석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잔인한 테러로 큰 상처를 입었으나 참사 직후 노르웨이 사회가 보인 대응은 남달랐다. 참사 며칠 뒤 스톨텐베르그 총리는 연설을 통해 “테러 공격에 위협받지 않을 것이며 개방과 관용, 포용이라는 우리의 가치를 굳건히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이번 사건에 대한 노르웨이인들의 대응은 ‘더 큰 민주주의’ ‘더 많은 개방’ ‘폭넓은 정치 참여’다”라고 분명히 못박았다. 왕세자는 외교장관과 함께 오슬로 시내 ‘세계이슬람선교사원’을 방문해 무슬림 이민자들이 마련한 희생자 추모 기도회에 직접 참석하기도 했다. 테러에 대해선 거부를, 이방인에 대해선 포용과 관용을 천명한 셈이다.
그로부터 약 3년 반의 세월이 흐른 2015년 벽두, 유럽 대륙이 거대한 시험대에 올라섰다. 지난 1월7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의 한복판에 자리잡은 만평 전문 시사주간지 사무실에 무장 괴한이 침입해 언론인 등 12명을 살해한 사건이 벌어졌다. 해당 언론사가 만평을 통해 이슬람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자동소총과 로켓포탄으로 무장한 테러리스트의 공격을 받자, ‘프랑스판 9·11’이라는 표현까지 나온다. 때마침 유럽 전역에서 반이슬람주의와 외국인 혐오를 공격적으로 내세운 극우세력들의 목소리가 부쩍 커진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라, 이번 사태의 파장을 쉽사리 가늠하기 힘들어 보인다. 프랑스로 상징되는 유럽 사회의 톨레랑스(관용)의 오랜 전통이 기로에 섰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당장 극우정당인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 대표는 “위선은 끝났다”며 반이슬람 기조를 분명히 했다. 이웃 독일에서도 ‘서구 이슬람화를 반대하는 애국적 유럽인’(PEGIDA)이라는 포퓰리즘 운동이 극우정당의 기세에 한껏 기름을 붓는 중이다. 물론 테러 행위를 비난하고 희생자들을 추도하면서도, 동시에 이번 테러가 곧장 이슬람 혐오 확산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아직은 높다. ‘더 많은 민주주의, 더 많은 관용’을 외치는 이성은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우퇴위아섬의 비극이 일어난 지 꼭 1년 뒤, 스톨텐베르그 총리는 자신 있게 말했다. “살인마는 실패했고 국민은 승리했다. 브레이비크가 폭탄과 총격으로 노르웨이를 바꾸려 했으나 노르웨이 국민은 우리의 가치를 포용하는 것으로 응답했다.” 사실상 유럽 대륙의 한복판에서 ‘이방인’의 조직적 테러라는, 유럽인들의 오랜 불안감이 눈앞의 끔찍한 현실이 된 지금, 세계가 유럽의 다음 행보를 지켜보고 있다.


제1044호 20쪽에 실린 사진(왼쪽) 설명을 다음 문장으로 바로잡습니다. “2014년 12월31일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굴뚝 밑에서 열린 ‘굴뚝 신년회’에서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활동가 나영씨가 사회를 보고 있다.”</ah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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