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나를 찾아낸 건 지난가을, 연안부두 종합어시장의 얼음창고에서 일할 때였다. 저녁 무렵 배달을 끝내고 핸드카를 창고 속으로 밀어넣는데, 불길한 느낌이 등 뒤에서 전해졌다. 창고 문을 잠그고 뒤로 돌아서자 바로 눈앞에 어머니가 버티고 서 있었다. 다시 돌아서고 싶었지만 그러지를 못했다. 이렇게 정면으로 마주하기는 6년 만이었다. 아무리 오랜만의 만남일지라도 서로 끌어안고 재회의 눈물을 흘리는 일 따윈 우리 모자에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할머니 집을 떠난 뒤 내가 어디에 있든지 어머니는 귀신같이 알아냈다. 어머니가 나타나면 나는 그곳을 떠났다. 최근 어머니가 내 앞에 나타나지 않은 것은 나를 포기했다는 것으로 이해했다. 어머니는 내 턱밑으로 바싹 다가섰다. 남자처럼 머리카락이 짧았다. 눈가의 주름도 골이 깊었다. 회색 스웨터와 무릎이 늘어난 검정색 바지는 어머니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게다가 굽 낮은 검정색 구두라니. 풍만한 몸은 부서질 듯 바싹 말라 있었다. 나는 이제까지 어머니의 이런 남루한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가슴이 저릿해왔다. 연민이 일어나는 것도 잠깐이었다. 변함없는 차가운 목소리가 가슴을 후벼팠다. 어미 버리고 잘도 살고 있구나. 세월이 변화시킨 것은 어머니의 겉모습뿐이었다.
어머니신가? 어시장 상인회 회장이 우리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어시장 주변에 빌붙어 살아가는 노점상들을 야박하게 내쫓는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어머니가 조용히 회장을 향해 허리를 깊게 숙였다. 아들을 잘 보살펴주셔서 고맙다고 했다. 또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이렇게 고생시켜서 마음이 아프다고도 했다. 상대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어머니는 그렇게 자기소개를 했다. 어머니의 뻔뻔한 모습에 속으로 치를 떨었다. 회장도 어머니에게 허리를 굽혔다. 어머니 잘 모셔라, 하면서 사무실로 향했다. 이곳을 빨리 벗어나야 했다. 어디로 갈까 망설이는데, 어머니의 야멸찬 목소리가 등을 떠밀었다. 어디로 가긴, 네 집으로 가야지. 어머니를 힐끗 돌아보았다. 어머니만 나타나면 나는 이유 없이 죄인이 되었다. 어수선한 시장통을 벗어나서 부둣가에 있는 아파트로 향했다. 바람에 뒹굴던 마른 나뭇잎들이 저녁 어스름에 묻혔다. 어머니의 숨결이 끈적끈적한 접착제처럼 등에 붙어 따라왔다. 그날부터 어머니는 한 달에 한 번 마지막 주말에 밑반찬 몇 가지를 들고 내 집을 찾아오기 시작했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어머니는 냉장고를 채워놓은 뒤 돈을 받아갔다.
어머니와 단절되었던 지난 시간 나는 새벽 5시부터 어시장 상인들에게 얼음을 배달했다. 통로를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다닥다닥 붙은 생선가게 좌판 아래 얼음가루를 담는 스티로폼 박스가 있다. 이 박스에 얼음이 가득 차야 상인들이 하루를 시작했다. 바닥에 얼음을 두껍게 깔고 생선들을 종류별로 그 위에 가지런히 눕힌다. 그들은 얼음을 이용해서 생선 비늘을 최대한 반짝거리게 만든다. 홍어는 배를 갈라 내장을 끌어내 얼음 위에 둔다. 우럭이나 민어는 아가미가 팔딱팔딱 움직이는 것 같았고, 광어나 가오리 같은 생선들은 금방 죽은 것처럼 싱싱하게 보이도록 했다. 좌판에 올라온 생선들은 토막 쳐지거나 뼈를 발라낸 후 얇게 회로 뜨일 때까지 하루에도 수십 번 얼음가루를 뒤집어쓴다. 장사가 잘되는 가게는 하루에도 몇 차례 얼음을 시켰다. 일반 횟집에는 사각형의 큼직한 얼음덩어리를 배달한다. 얼음덩어리가 훨씬 더 위험했다. 그래서인지 같은 무게임에도 가루보다 덩어리가 더 무겁게 느껴졌다. 안전화를 신고 안전장갑을 꼈지만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 사고를 당했다. 오른손이 얼음덩어리 사이에 끼였는데 검지 한 마디를 잘라내야 했다. 손가락 마디 하나 잃어버린 것에 대한 보상으로 나는 군 면제를 받았다. 어머니는 내가 불구가 된 것도 모른다. 지난 6년 동안 난 정말 혼자였다. 어머니를 피해 도망 다녔지만 또 한편 귀신도 돌아보지 않는다는 끈 떨어진 뒤웅박 신세라는 생각이 들 때는 죽고 싶기도 했다. 쓰지 않으니 돈은 저절로 모였다. 재건축 대상이지만 작은 아파트를 전세로 얻게 되면서 파삭파삭 메말라가던 영혼이 단비로 촉촉하게 적셔졌다. 혼자여서 다행이라며 어머니를 가슴에서 지우기를 반복했다.
어머니를 창고 앞에서 만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상인회 회장이 나를 불렀다.
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역시 어머니가 계셔서 성실하군. 오륙 년 근무했지? 얼음창고는 여름엔 잘 지내다가도 겨울만 오면 버티지 못하는데 자네 인내심은 정말 대단해. S창고로 옮겨볼 생각 없나?”
얼음창고 뒤에 S그룹에 소속된 대형 물류창고 회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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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이 하나 필요하다기에 30대 초반에 군 면제인 성실한 청년이 있다고 했더니 데려오라고 사정을 하네. 창고 직원들이 전부 60대라 젊은 사람이 꼭 필요한데 구하기가 어렵다는군.”
S그룹의 창고지기들은 팀장을 제외하곤 전부 비정규직이라고 했다. 비정규직이면 어떤가. 얼음창고와는 수준이 다르다. 더구나 꿈도 꿀 수 없었던 S그룹이다. 수습기간 6개월 동안은 보수도 적고 힘이 든다지만 그까짓것 아무려면 어때, 라고 생각했다. 튼튼한 두 다리와 팔이 있는 한 걱정할 것은 없었다. 일반 창고로 옮긴다는 생각에 심장이 두근거려 숨을 쉬기가 어려웠다. 오래도록 바람 부는 바닷가를 헤매고 다녔다. 겨울만 되면 코끝과 입 주변은 얼음이 박혀 빨갛다 못해 퍼렇게 되었다. 박힌 얼음을 녹이느라 수시로 병원을 드나들어야 했다. 산더미처럼 쌓인 얼음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언젠가 영화에서 보았던 오로라를 떠올렸다. 알래스카 얼음의 땅 위에서 밤하늘을 빛으로 휘감던 오로라. 창고를 옮기다니 오로라를 본 기분이었다. 사실 어시장에서 생선을 파는 사람들이 나보다 더 얼음과 함께 사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생선의 신선도 유지를 위해 항상 얼음을 손에 쥐고 있다. 빨갛던 손가락이 파랗게 변하면서 지문의 돌기를 따라 꽃이 피듯 얼음이 박힌다. 그들은 손끝에 박힌 얼음을 얼음꽃이라고 불렀다. 얼음꽃이 많이 필수록 그들의 주머니엔 돈으로 가득 찼다. S그룹 대형 창고의 창고지기가 되면서 나는 얼음꽃을 잊었다.
아침 9시까지 출근하고 저녁 6시면 퇴근했다. 멋진 일이었다. 창고지기 동료들은 모두 내겐 아버지뻘이었다. 그들은 나에게 툭하면 야간 당직을 맡겼다. 즐거운 일은 아니지만 견딜 만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견디기 어려운 것은 어머니의 잦은 방문이었다. 월말에 오기로 약속되어 있지만 아무 때나 들이닥쳤다. 안정된 직장까지 생겼으니 어머니 때문에 이곳을 버리고 떠날 수도 없다. 전세대출금도 갚아야 하는데 어머니는 월급의 3분의 1을 가져갔다. 어머니와 단절되어 살았던 얼음창고 시절이 그리워졌고, 어머니가 오는 날이 다가오자 깊은 우울증에 시달렸다.
이틀 후면 통장으로 월급이 들어오는 날, 어머니가 오는 날이다. 퇴근길 발걸음이 무거웠다. 어떻게 해야 어머니로부터 도망갈 수 있을까, 머릿속은 온통 그 생각밖에 없었다. 해안도로를 걸었다. 봄철 내내 소리 내며 망울을 터뜨리던 벚꽃들이 무더기로 땅바닥에 떨어져 무참하게 밟혔다. 새로 돋아난 이파리 위로 맑고 청량한 봄바람이 불어왔다. 해가 지고 있었다. 붉은 빛이 시간 속으로 소멸하기까지 서쪽 바다는 몹시 아름다웠지만 나는 수습하기 어려울 정도로 서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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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후면 통장으로 월급이 들어오는 날, 어머니가 오는 날이다. 퇴근길 발걸음이 무거웠다. 어떻게 해야 어머니로부터 도망갈 수 있을까, 머릿속은 온통 그 생각밖에 없었다. 해안도로를 걸었다. 봄철 내내 소리 내며 망울을 터뜨리던 벚꽃들이 무더기로 땅바닥에 떨어져 무참하게 밟혔다.
아파트로 들어섰다. 내가 사는 아파트 건물 앞에 대여섯 명 정도의 사람들이 빙 둘러서 있었다. 둘러선 사람들 사이로 땅바닥에 팽개쳐진 여자의 다리가 보였다. 찢긴 치마 사이로 하얀 맨살도 보였다. 사람들 등 뒤로 다가서서 무슨 일인가 살폈다. 깍두기 머리를 한 덩치 좋은 남자가 여자의 긴 머리채를 낚아챘다. 여자는 끌려가지 않으려고 나무 밑동에 손톱을 박았다. 그 옆에 선글라스를 쓴 땅딸한 남자가 허리에 손을 얹고 여자를 내려다보았다. 끌고 가려는 것인지 망신만 주려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그들을 말리는 사람도 없었다. 뒤로 슬그머니 물러섰다. 쓰러져 있는 여자는 위층 준이 엄마였다. 위층을 찾아오던 늙은 남자가 떠올랐다. 발자국 소리를 죽이며 계단을 밟았다. 여자의 흐느낌이 등짝에 달라붙어 따라왔다. 3층에 도착했을 때 위층 아이 준이가 불쑥 나타났다. 모르는 남자들로부터 수모를 당하는 엄마의 모습을 이 아이는 보았을 터이다. 몸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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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자. 아이의 머리에 손을 얹고 문 안으로 밀었다. 아이가 맨발인 것을 안 것은 집 안으로 들어온 다음이었다. 냉장고 안에서 요구르트 하나를 꺼냈다. 어머니는 올 때마다 요구르트를 이삼십 개씩 사왔다. 냉장고 안은 언제나 요구르트 작은 병으로 가득 찼다. 빨대를 꽂은 요구르트를 아이에게 주었다. 아이는 요구르트를 단번에 다 빨아먹었다. 요구르트를 먹는 아이를 보면서 나는 물을 마셔 입안을 헹구었다. 빈 요구르트 병을 식탁 위에 두고 언제나처럼 아이는 문이 열린 작은방으로 들어갔다. 거실에 있으면 창밖으로 누가 볼까봐 그랬을까. 아이는 내가 돌려보낼 때까지 작은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평소에도 아이는 말을 하지 않았다. 청각장애가 있는지 나는 아직도 구분을 못했다. 6살 남자아이가 소리 없이 움직이는 유령 같았다. 바닥에 엎드린 아이에게 담요를 덮어주었다. 방문을 닫고 조용히 거실로 나왔다. 베란다로 나가 바다를 보았다. 귀항을 서두르는 배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뱃고동 소리가 길게 울렸다. 어느새 해가 지고 바다 위에는 배들이 보내는 불빛이 다채로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아직도 위층에선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방문을 열어보았다. 아이는 엎드린 채 잠이 들었다. 이 아이의 아빠는 어디에 있을까. 나도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까마득했다. 아버지는 내가 준이만 했을 때 사고를 당해 영영 만날 수 없게 되었다.
위층 여자가 수모를 당하고 며칠이 지났다. 그날 밤 위층 아이 준이를 밤늦게 데려다주었지만 여자는 시선을 피했다. 나도 시선을 피했다. 위층 여자의 모습은 매장되지 않은 기억들을 불러내어 내 영혼을 온통 뒤죽박죽으로 흔들어놓았다.
어머니가 정기적으로 오는 날, 마침 권씨가 몸이 아프다고 야간 당직을 부탁했다. 이번 달 들어 벌써 여러 차례 대직을 섰다. 대직 전문으로 낙찰을 본 것 같아 기분이 언짢았다. 어머니가 들르는 날만 아니었다면 나는 무슨 핑계를 대든 이번만큼은 권씨의 대직 부탁을 거절했을 것이다.
밤새 비가 내렸다. 새벽 5시, 미꾸라지를 실은 20톤짜리 냉장 컨테이너 트레일러트럭이 방금 작업장에 도착했다는 통보를 받았다. 당직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비안개가 선잠에서 깬 눈썹 위에 내려앉았다. 밤새 내리던 비는 그쳐 있었다. 건물 앞에 게양된 회사 깃발이 젖은 채 펄럭거렸다. 해 뜨기 전 어두운 시간이 바람에 허옇게 떠밀리고 있었다. 점퍼 깃을 세우는데, 또 배가 아파왔다. 며칠 전 병원에 갔더니 신경성 장염이라고 했다. 위층의 소음에 신경을 쓴 탓이거나 어머니가 오는 날이 다가와서일 것이었다.
컨테이너 안에는 중국에서 8~9시간을 걸쳐 인천항에 들어온 미꾸라지들이 있다. 활어라고는 하지만 미꾸라지들은 꼼지락도 할 수 없는 상태다. 빨리 하역 작업을 해서 신선한 물과 공기를 넣어주어야 하는데, 밤새 화장실을 들락거려 머리가 몽롱했다. 멀리 작업장을 밝히는 불빛이 흐릿했다. 어머니만 아니었으면 하지 않았을 대직이다. 새삼 어머니에 대한 증오가 부글거렸다. 땅바닥이 빗물로 질척거렸다.
작업장 에이프런에 거대한 컨테이너가 닿아 있었다. 컨테이너를 내려놓은 트레일러트럭은 이미 가고 없었다. 컨테이너의 잠금장치를 풀고 빗장을 당겼다. 쇠 문짝은 금속 부딪치는 소리를 내며 천천히 열렸다. 찬바람이 아니라 퀴퀴한 냄새가 흘러나왔다. 어머니가 가져다놓은, 냉장고 안에서 상해버린 음식 같은 냄새였다. 께름칙했다. 보통 활어 수산물을 실은 냉장컨테이너의 내부 온도는 수온을 따라 5℃에 맞추어 있다. 5℃는 미꾸라지가 가사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조건이다. 말하자면 장시간 먹이를 섭취하지 않고도 죽지 않는 온도로 죽음을 가장한 생명 유지의 최저 온도였다. 컨테이너 내부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 분명했다.
고개를 안으로 들이밀고 좌우를 훑어보았다. 온도조절기 불빛도 없고, 공기순환기 돌아가는 소리도 없었다. 이 컨테이너는 어제 저녁 중국 다롄에서 출발한 화물선에 실려왔다. 기계가 언제 고장나서 밀폐 상태가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미꾸라지들은 이미 질식해서 다 죽었을 것이다. 쇠문을 열어젖히며 한발을 들여놓는데 무언가 묵직한 것이 발끝에 걸렸다. 희끄무레한 물체가 문을 가로막았다. 물체를 확인하려 한발 물러서는 순간 문짝에 머리를 세게 부딪히며 발 앞에 놓인 물체 위로 엎어졌다. 단단하고 차가운 감촉에 갑자기 서늘한 바람이 전신을 훑었다. 머리칼이 쭈뼛 섰다. 사람의 벌어진 입술이 눈앞에 있었다. 바닥을 짚었는데, 손바닥 아래 조그만 아이의 머리통이 있었다.
어떻게 컨테이너를 나왔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작업장 바깥 질척이는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119와 출입구 관리소에 전화를 해야 했다. 점퍼 안주머니 속에 넣어둔 휴대폰을 찾는 데 땀을 흘렸다. 이빨이 부딪쳐서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사, 사람들이 주, 죽어 있어요. 컨테이너 안에 시, 시체가 있어요. 시체라는 말에 역한 냄새가 났다. 뱃속이 뒤틀리고 울렁거렸다. 컨테이너 안에서 죽은 여자의 벌어진 입에 내 입술이 부딪혔던 것 같았다. 내 입에서 나는 이 냄새가 그 여자의 입에서도 났었던가. 여자와 세 아이는 5℃의 한겨울 날씨 같은 내부 온도에 맞게 두툼한 겨울옷을 입었다. 발에 차였을 때 허옇게 보였던 것은 풀어헤친 여자의 젖가슴이었다. 아기는 엄마의 한쪽 젖을 꼭 물고 있었다. 그 옆에 나란히 누워 있던 아이들 둘은 빨대가 꽂힌 요구르트 병을 손에 쥔 채 잠들 듯 죽었다. 단단하고 동그란 머리통의 감촉, 고슬고슬한 머리카락 몇 개가 손가락 사이에 끼어 있는 것 같았다. 새벽 공기에 요구르트 냄새가 희미하게 섞여들었다. 나는 고인 빗물 위에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바닥을 짚은 채 뱃속의 것을 비워내기 시작했다.
앰뷸런스 소리와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구급대가 여자와 세 아이의 시신을 싣고 간 후 경찰은 나를 앞에 세워놓고 그들이 남긴 물품을 확인했다. 라벨도 떼지 않은 두 개의 여행용 대형 가방 안엔 아기의 분유와 우유병, 장난감 자동차, 사계절의 옷들이 빼곡했다. 조선족 여인은 입국을 위해 전 재산을 브로커에게 넘겼을 것이다. 아직도 이런 방법으로 입국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회사 사람들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고개를 흔들었다. 냉장컨테이너 온도조절기가 고장만 나지 않았다면 신천지에서 더 나은 삶을 누릴 수도 있었을 사람들이다. 빈 요구르트 병들이 경찰관의 발끝에 차여 소리를 내며 굴렀다.
경찰이 떠난 다음에도 발자국 소리가 요란하게 났고, 사람들의 말소리가 앞뒤에서 들렸다. 누가 내 팔을 잡아 흔들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건물 벽에 등을 기대고 서 있는 내게 수많은 눈들이 꽂혀 있었다. 눈앞에 벌어진 상황이 낯설었고, 속은 여전히 메스꺼웠다. 벽에서 등을 떼자 작업장 팀장이 무어라 말하며 등을 떠밀었다. 퇴근하라는 소리 같았다. 사람들이 좌우로 갈라섰고, 그 사이를 빠져나왔다. 꿈속을 걷는 것 같았다. 이 상황이 꿈이기를 바랐다. 회사의 철문을 뒤로하고 해안도로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길 끄트머리의 아파트를 멀찍이 바라보며 등대로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꽃이 막 져버린 벚나무들이 막 피어난 이파리들로 터널을 이루었다. 물방울들이 비 오듯 머리 위로 떨어졌다. 잡풀들은 발밑에서 목이 꺾였다. 잿빛 하늘과 바다, 등대가 더 하얗게 보였다. 갈매기 몇 마리가 낮게 날고, 파도는 물거품을 끝없이 밀어올렸다. 모래밭에 깊게 파인 내 발자국이 물거품으로 부서졌다.
“컨테이너에서 시체들을 발견한 시간이 언제였습니까?”
“저, 여, 연락을 받은 것이 새, 새벽 5시였고, 바, 바로 문을 열었는데요.”
경찰관의 질문에 말을 더듬거렸다.
“5시 정각에 문을 열었단 말씀인데.”
메모를 하던 경찰관이 펜을 든 손을 멈추고 나를 빤히 보았다. 무표정한 그의 얼굴을 마주 보다가 문득 심장이 멎는 것처럼 놀랐다.
“119 신고는 왜 1시간이나 뒤에 했습니까?”
“그게…. 그, 그러니까 그게, 배가 갑자기 아, 아파서 화, 화장실을 들락거리느라고요.”
“화장실 다녀오는 데 1시간씩이나 걸립니까?”
화장실을 들락거리다가 잠깐 방에 다시 들어가서 누웠다.
“도착하자마자 문을 열었다면 이 사람들 살릴 수도 있었겠는데. 한국에 가족이 있을지도 모르고.”
말문이 막히고 고개가 저절로 꺾였다. 경찰관은 나 때문에 그들이 죽었다고 밀어붙이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아도 빨리 열었다면 미꾸라지는 몰라도 사람들은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속으로 몇천 번 더 되뇌며 이 순간이 제발 꿈이기를, 꿈에서 깨어나 아무 일이 없기를 바랐는데. 경찰관은 나의 죄책감에 쐐기를 박았다.
“그건 그렇고, 내일 아침 9시까지 경찰서에 출두해주십시오.”
컨테이너 쇠문의 손잡이를 잡을 때 나는 오직 미꾸라지들만 생각했다. 문 밖에서 사람들의 목숨을 앗을 수 있다는 생각은 한 적이 없었다. 죽은 조선족 여인의 허연 젖가슴과 젖꼭지를 문 아기의 파랗게 변한 얼굴이 떠올랐다. 빨대가 꽂혀 있던 요구르트 병을 잡은 아이들의 얼어붙은 작은 손들도 기억났다. 내 손바닥에 눌렸던 동글동글한 머리통의 차가운 감촉도 되살아났다. 현장검증을 할 땐 몰랐던 여자와 아이들의 표정이 생각났다. 차가운 컨테이너 안에서 아기에게 젖을 물린 여인의 얼굴에 미소가 있었다. 요구르트 병을 들고 있던 아이들도 웃고 있었다는 것이 이제야 떠올랐다. 어시장 상인들의 얼음꽃이 기억났다. 얼음꽃이 필수록 그들은 경제적으로 부유해졌다. 바닷바람이 등 뒤에서 강하게 불어왔다. 행복해했던 조선족 여인은 얼음꽃이 되어 죽었다. 나는 겹겹이 얼음꽃으로 에워싸인 것 같았다. 출구가 없는 곳에서 오래도록 갇힐 것 같은 예감에 몸서리쳤다.
나도 준이처럼 문 밖에서 어머니를 기다린 날이 많았다. 기다리다 지치면 불 꺼진 방에서 혼자 잠이 들곤 했다. 그날도 어머니를 기다리다 저녁밥도 먹지 못하고 잠이 들었다. 잠결에 어떤 소리를 들었고 눈이 저절로 떠졌다. 흐릿한 물체가 있었다. 물체는 어머니 위에 있었고, 어머니는 소리도 내지 못하고 발버둥쳤다. 온몸이 떨렸지만 어머니를 지켜야 했다.
현관문에 키를 꽂는데, 등 뒤에서 아이의 숨소리가 들렸다. 준이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그 사이 머리칼이 길어서 덥수룩했다. 셔츠를 입은 것이 아니라 야윈 어깨에 걸친 것처럼 보였다. 회색처럼 보이는 꾀죄죄한 셔츠는 가까이서 보니 흰색이었다. 늘 문 밖에 있는 아이였다. 오늘은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분노가 치밀었다. 현관문 여는 소리에 얼굴을 든 아이는 나를 따라 들어오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는 아이가 문 안으로 들어서기 전에 ‘쾅’ 소리 나게 문을 닫았다. 실내를 둘러보았다. 어머니가 다녀간 흔적은 없었다. 위층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났다. 늙은 남자가 오늘따라 일찍 온 모양이었다. 늑대처럼 울부짖는 남자의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렸다. 곧이어 우당탕탕 넘어지는 소리가 났다. 불현듯 위층으로 뛰어 올라가 문을 박차고 여자를 끌어내어 목을 조르고 싶은 욕구에 휩싸였다. 내가 위층 아이를 알게 된 것도 위층에서 나는 소음 때문이었다. 어느 날 도저히 참지 못해 위층으로 올라가려 계단을 향하는데 거기 아이가 앉아 있었다. 그 아이를 보는 순간 아파트 로비에서 만난 입술이 빨간 여자가 떠올랐다. 그 후에도 위층에서 소음이 날 때마다 현관문을 열어보면 거기 아이가 앉아 있었다.
베란다로 나가 창문을 열었다. 비가 다시 쏟아질 것 같았다. 아파트 앞 등대로 가는 샛길이 비안개에 젖어 풀어진 회색 실타래처럼 보였다. 샛길 입구에 있는 클레이 테니스코트에서 두 사람이 공을 주고받았다. 무슨 대회 우승이라고 써 붙인 플래카드 한 귀퉁이가 떨어져 넝마처럼 펄럭였다. 도로 위의 자동차들이 빠른 속도로 달려왔다간 부두 쪽 잿빛 공간으로 사라졌다. 창문이 덜컹거렸다. 열린 창과 창틈으로 축축한 공기가 안개처럼 밀려들었다. 베란다로 밀려든 젖은 공기는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내 몸을 휘감았다. 테니스장엔 무채색으로 변한 두 사람이 여전히 공을 주고받았다. 그 너머 멀리 등대가 하얀 점으로 보였다.
위층은 여전히 시끄러웠다. 아이는 아직도 문 밖에 있을까. 문득 냉장고 안 요구르트가 생각나서 현관문을 열었다. 아이는 층계 아래에 몸을 밀어넣고 있다가 문이 열리자 겁먹은 표정으로 일어섰다. 아이를 데리고 들어왔다. 빨대를 꽂아 요구르트를 주어 그 자리에서 다 먹게 했다. 요구르트 빈 병을 식탁 위에 두고 아이는 스스로 작은방으로 들어가더니 문을 닫았다. 아이의 아빠는 도대체 어디 있을까. 그러고 보니 컨테이너 안에도 아이들의 아빠는 없었다. 세상의 아빠들은 다 어디에 있을까. 나는 바람이 불어 덜컹거리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갈매기 한 마리가 종잇장처럼 바람에 날렸다.
등대로 가는 좁은 길 입구에 아이 하나가 서 있었다. 위층 아이와 비슷했다. 나가는 기척도 없었는데 아이는 언제 바깥으로 나간 것일까. 아이는 발끝으로 땅바닥을 차면서 걷다가 테니스장 담장에 매달렸다. 공이 밖으로 날아왔는지 허리를 굽혀 공을 주웠다. 아이의 손에 들린 연두색 공만 유채색이었다. 아이는 아파트 쪽으로 뒤돌아섰다. 나는 머리를 창밖으로 내밀어 아이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아이가 나를 본 것 같았다. 아이는 양다리를 벌려 딱 버티고 서더니 왼쪽 발을 들고 오버스로의 포즈로 팔을 올려 나를 향해 공을 던졌다. 공은 도로 한가운데 ‘톡’ 하고 떨어졌다. 아이는 그 공을 줍기 위해 도로로 뛰어들었다. 달려오던 승용차 한 대가 아이 바로 앞에서 ‘끼익’ 하고 멈추었다. 뒤따라오던 두 대의 차들이 연달아 급정거를 했다. 나는 얼른 창문을 닫고, 유리창 너머로 밖을 내다보았다. 맨 앞의 운전자가 자동차 문을 열자 아이는 공을 쥐고 잽싸게 등대로 가는 샛길로 달아났다. 멈췄던 자동차들이 차례로 떠났다. 아이도 사라지고 자동차들도 떠난 길 위에 굵은 빗방울이 떨어졌다. 빗방울은 어느새 빗줄기가 되었다. 유리창이 뿌옇게 흐려졌다.
어머니는 오지 않았다.
“나쁜 놈, 몇 년 동안이나 제 어미를 찾지도 않다니.”
“왜 찾아요? 버릴 땐 언제고.”
“네가 집을 나갔지, 내가 버렸냐? 나는 너를 12년 동안 애지중지 키웠다. 천벌 받을 놈 같으니라고. 병든 어미 버려 네게 좋을 것 하나 없다.”
남자 때문에 집까지 날린 어머니는 더 이상 사치스러울 수 없었다. 나에게서 받아간 돈이 어머니의 생활비였다. 돈을 줄 때마다 나는 어머니를 다시 만날 일이 없기를 바랐다.
위층의 소음은 어느새 그쳐 있었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발자국 소리가 불안하게 들리고, 현관문 여닫는 소리가 요란했다. 무슨 일인지 궁금했다. 슬리퍼를 아무렇게 꿰어 신고 계단을 내려갔다. 위층 여자가 아파트 로비에 서서 쏟아지는 비를 보고 있었다. 긴 머리카락이 퍼렇게 부어오른 한쪽 눈두덩을 가렸다. 짧은 치마에 맨발이었다. 빨간 발톱이 바닥에 찍힌 핏자국처럼 보였다. 내가 기억하는 어머니의 발톱 같았다. 여자가 준아, 하면서 뛰쳐나갔다. 희고 매끈한 다리가 빗속에 판화처럼 찍혔다. 번개가 번쩍 했다. 하늘이 두 동강 나는 것 같았고, 천둥이 머리 위에서 울렸다. 여자도 길도 빗속으로 사라지고 시간도 멈춘 것 같았다. 준이가 나에게 있다고 말할 기회를 놓쳤다. 그런데 정말 준이가 작은방에 있는지 의심스러워졌다. 계단을 단숨에 뛰어올라 작은방 앞에 섰다. 손잡이가 차갑다. 손이 떨렸다. 준이가 정말 이 방 안에 있을까. 문을 열었다. 차가운 방바닥에 엎드려 있는 조그만 물체. 준이는 내게 와 있었다. 잠이 든 아이의 입술 사이로 울음 같은 소리가 새어나왔다. 방문을 닫으며 잠이 든 아이 옆에 앉았다.
나도 준이처럼 문 밖에서 어머니를 기다린 날이 많았다. 기다리다 지치면 불 꺼진 방에서 혼자 잠이 들곤 했다. 그날도 어머니를 기다리다 저녁밥도 먹지 못하고 잠이 들었다. 잠결에 어떤 소리를 들었고 눈이 저절로 떠졌다. 흐릿한 물체가 있었다. 물체는 어머니 위에 있었고, 어머니는 소리도 내지 못하고 발버둥쳤다. 온몸이 떨렸지만 어머니를 지켜야 했다. 살금살금 기어서 전기 스위치를 눌렀다. 형광등이 몇 번 껌뻑이다가 불이 환하게 들어왔다. 동시에 어머니의 비명과 욕설이 쏟아졌다. 어머니 위에 올라탔던 놈이 일어섰다. 커다란 놈의 성기가 가운데서 오줌을 싸며 흔들렸다. 놈은 두꺼운 손바닥으로 내 따귀를 때렸다. 나는 벽에 부딪히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놈은 내 목덜미를 잡아 방문을 열고 밖으로 집어던졌다. 코피가 터져 끈적끈적한 액체가 목을 타고 흘렀다. 그날부터 놈은 날마다 어머니와 함께 밤을 보냈고, 나는 밤마다 놈에게 얻어맞고 쫓겨났다. 아이가 뭘 안다고 그냥 자게 두지. 어머니는 습관적으로 그렇게 말했다.
운명은 시간과 장소와 사람이 만들어내는 조건들이 하나의 정점으로 치달아 그 정점에서 폭발하게 되어 있는 것 같았다. 어머니와 나의 관계가 그랬다. 20년의 시간 속에 그런 기억들은 서서히 죽어갔다. 위층 여자는 소멸된 어머니에 대한 기억들을 되살렸다. 놈과 맞부딪치던 어머니의 붉은 입술을, 놈의 목을 휘감던 어머니의 긴 머리카락을, 핏자국 같은 빨간 발톱을, 여자는 심연에서 끌어올렸다.
내가 문 밖으로 쫓겨날 때마다 어머니는 내게 요구르트 병에 빨대를 꽂아주었다. 놈이 사왔다고 생색까지 내었다. 그때까지 나는 어머니가 주는 새콤달콤한 요구르트를 가장 좋아했다. 놈이 사온 요구르트는 그런 맛이 나지 않았다. 싸구려 가짜 요구르트거나 아니면 유통기한이 지난 것임이 분명했다. 먹고 나면 입안이 텁텁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놈이 사온 요구르트를 나는 우리 집 강아지 흰둥이에게 먹이곤 했다. 눈이 펑펑 쏟아지던 겨울밤이었다. 너무 추워서 흰둥이를 안고 웅크렸다. 요구르트 몇 박스를 먹어치울 시간이 지났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꽁꽁 언 손을 흰둥이 털 속에 묻고 방 안의 일이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방 안에서 ‘아이구, 사람 죽어’ 하는 소리에 마음이 흔들렸다. 정말 어머니가 죽는 게 아니라는 것쯤은 알았으면서 나는 또 방문을 열었다. 어머니와 한 덩이가 되어 있던 놈이 어둠 속에서 굵은 나무통 같은 다리를 풀고 일어섰다. 잽싸게 문을 닫고 돌아서는데 놈의 주먹이 내 머리통을 갈겼다. 눈 쌓인 땅바닥에 코를 박았다. 씨팔, 도둑놈, 여긴 우리 집이야. 가란 말이야. 나는 놈에게 욕을 했다. 흰둥이도 놈을 향해 짖었다. 마당으로 내려선 놈은 엎어진 나에게 발길질을 하려다가 옆에서 짖어대는 흰둥이의 배를 걷어찼다. 흰둥이는 ‘깨갱’ 하면서 나가떨어졌다. 놈은 끙끙 앓는 소리를 내는 흰둥이를 다시 걷어찼다. 한 번 더 ‘깽’ 소리를 낸 흰둥이는 더 이상 소리를 내지 못했다. 나는 부들부들 떨려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놈이 방으로 들어간 다음 한참 시간이 지난 뒤에야 눈 위를 기어서 축 처진 흰둥이를 끌어안았다. 나는 그날 밤 마당 한 귀퉁이의 얼어붙은 땅을 삽으로 파서 흰둥이를 묻었다. 다음날 어머니의 가방에서 돈을 꺼내어 시골 할머니 집으로 떠났다. 12살로 넘어가던 겨울이었다. 운명은 시간과 장소와 사람이 만들어내는 조건들이 하나의 정점으로 치달아 그 정점에서 폭발하게 되어 있는 것 같았다. 어머니와 나의 관계가 그랬다. 20년의 시간 속에 그런 기억들은 서서히 죽어갔다. 위층 여자는 소멸된 어머니에 대한 기억들을 되살렸다. 놈과 맞부딪치던 어머니의 붉은 입술을, 놈의 목을 휘감던 어머니의 긴 머리카락을, 핏자국 같은 빨간 발톱을, 여자는 심연에서 끌어올렸다. 하물며 위층의 소음은 놈의 정액과 함께 쏟아내던 어머니의 신음 소리를 불러왔다.
이 아이, 준이도 놈과 여자로부터 구해야 했다. 준이 옆에 나란히 누웠다. 추위 속에서 아기에게 젖을 물린 조선족 여자의 벌어진 입술이 떠올랐다. 그 아이들의 아버지는 어디에 있을까. 지금은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는 내 아버지. 이따금 먼 곳에 있는 아버지의 안부가 궁금했다. 나는 아이를 끌어안았다. 아이의 숨결이 고르게 들렸다. 품에 안긴 아이가 입을 동그랗게 움직였다. 아빠라고 부르는 것 같았다. 애당초 문 밖에서 이 아이를 보았을 때 나는 이 아이의 아빠가 되고 싶었다.
새벽의 컨테이너 사건은 벌써 오래전 일처럼 여겨졌다. 경찰서로 가는 일도 먼 미래의 일 같다. 감옥에 간다 해도 그것 또한 아주 먼 훗날의 일일 것이다. 지금은 조그맣고 야윈 몸뚱이를 품속에 넣어주는 일이다. 눈을 감았다. 깊고 컴컴한 바다 밑에서 똬리를 틀고 있던 어둠이 칡덩굴처럼, 나와 아이의 몸뚱이를 하나로 휘어감았다. 해파리들이 헤엄치는 바닷물 속으로 서서히 끌려 들어가듯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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