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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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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인들

제5회 손바닥문학상 가작
등록 2013-12-21 14:01 수정 2020-05-03 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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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보니 주변엔 온통 상인들뿐이었습니다.

자동차 부품을 파는 골목에서 태어나 열 살까지 자랐습니다. 그곳은 답십리였고, 저의 첫 번째 장래 희망은 건물 주인이 되는 거였습니다. 저희 할아버지처럼요. 할아버지가 가진 건물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일을 하지 않고도 어린 손녀에게 꽃등심을 구워줄 정도의 돈은 매월 벌어다주는 건물인 게 분명했습니다. 그 건물에서 장사를 하는 상인들은 골목에서 할아버지를 마주치면 허리 숙여 인사를 했습니다. 그럼 할아버지는 간단히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받고는 가던 길을 갔습니다. 할아버지는 늘 허리를 펴고 뒷짐을 진 채 골목을 걸어다녔습니다. 저는 왠지 인사를 하는 사람보다는 뒷짐을 지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어떤 날은 할아버지랑 같이 걷는 김에 저도 뒷짐을 지어보았습니다. 엄마는 어린 저에게 배꼽티를 자주 입히곤 했습니다. 그래서 손을 뒤로 모아 뒷짐을 질 때면 꼭 손등에는 허리 뒤쪽의 맨살이 닿았습니다. 동네의 상인들과 다방 언니들은 뒷짐을 진 채 걸어다니는 저를 보며 쿡쿡대며 웃었습니다. 그럼 저는 금방 창피해져서 다시 손을 앞으로 모아 배꼽을 가렸습니다. 역시 진짜 건물 주인이 되기 전까지는 뒷짐 지고 싶은 마음을 참기로 다짐했습니다.

골목의 남자의 직업은 모두 상인이었고, 골목 여자들의 직업은 며느리나 할머니나 과부 등이었습니다. 그 여자들도 상인인 남편이나 아들을 도와 일할 때도 있었지만 어쩐지 진짜 상인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왜냐하면 거래처로부터 걸려오는 전화벨이 울릴 때 여자들은 절대 받지 않았으니까요. 그들은 전화가 왔다는 사실을 급하게 전달하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흑룡상회나 진양상회나 신창파이프나 동명쇼바나 전화를 받고 돈을 만지는 건 모두 남자였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셰익스피어 같은 것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셰익스피어는 양면테이프를 실은 트럭을 기다릴 필요도 없고 자신의 물건을 수출한 배의 위험을 걱정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그에게는 장사 밑천이 필요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골목의 여러 상가들 중에서도 쓰리엠 양면테이프를 파는 상인들의 딸로 자랐습니다. 그 가게의 이름은 대훈실업이었습니다. 저의 아빠와 작은아빠와 삼촌인 그 상인들도 장사를 하려면 건물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골목에서 누구를 만나도 허리 숙여 인사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대훈실업 건물도 할아버지의 것이었으니까요.

집안에는 네 명의 어린아이가 있었습니다. 이경희와 이찬희와 이원희, 그리고 이슬아. 이름이 ‘희’자로 끝나는 그 손자들은 초등학생이 되자 양면테이프 가공 기술을 조금씩 가르침 받았습니다. 장사를 물려받을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예외였습니다. 양면테이프 자르는 걸 배워도 되고 안 배워도 되는 사람, 제사를 지낼 때 절을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이유가 궁금해진 저는 쓰리엠 테이프 가게에서 테이프를 포장하는 상인들 중 한 명에게 물었습니다. “삼촌, 왜 나한테는 일도 안 시키고 절도 안 시켜?” 귓등에 담배를 꽂은 삼촌이 말했습니다. “지지배야, 너는 꼬추가 없잖아.” 상인들은 대부분 입이 거칠었습니다. 저는 거친 말들이 제 몸에 눌어붙기 전에 흥, 하고 삼촌을 한 번 째려본 뒤 대훈실업을 나와 상인이 아닌 여자들이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거실에서는 엄마와 작은엄마가 빨래를 개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옆에서 다리를 뻗고 누운 채로 낮잠 자는 척을 하며 며느리들의 뒷담화를 엿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루이틀 듣는 것도 아닌 시부모 욕과 남편 욕은 금방 지겨워지곤 했습니다. 그럴 때면 책을 읽으러 혼자 방에 들어갔습니다.

그맘때쯤 새로운 상인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답십리의 상인들과는 달랐습니다. 이름도 왠지 멋진 안토니오와 바사니오. 그들은 베니스의 상인들이었습니다. 의리 있고 배포가 큰 두 명의 사나이는 심보가 고약한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에게 돈을 빌렸다가 역경을 겪었습니다. 석 달 내로 돈을 갚지 못하면 안토니오의 심장 부위 살을 칼로 베어내는 인육재판이 벌어질 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바사니오의 약혼녀인 포샤의 영특한 작전으로 해피엔딩을 맞더군요.

포샤에겐 여러 미덕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녀가 순수하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바사니오가 구애하러 포샤를 찾아갔을 때 내민 금상자와 은상자와 납상자 중에서, 신중하게 납상자를 집어드는 모습을 보고 바사니오는 사랑에 빠집니다. 포샤가 얼마나 때 묻지 않은 여자인지 감탄하면서 말이죠. 그러나 어린 제가 보기에도 그 이야기는 구라임이 분명했습니다. 사실 진짜로 순수한 건 망설임 없이 금상자와 은상자를 선택한 여자들일 테니까요. 포샤의 납상자 선택은 순수하거나 직관적이지 않았습니다. 그건 전략이었습니다. 저는 속물근성을 한 꺼풀은 감출 수 있는 포샤가 좋았습니다. 장사꾼의 기본이니까요. 포샤의 미덕을 기억하며 낮잠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저는 과연 그녀처럼 상인의 여자가 되고 싶었던 걸까요?

장사라는 건 가끔 너무나 거짓말 같은 일인 것 같았습니다. 쓰리엠 테이프 가게만 보아도 그랬습니다. 명색이 쓰리엠 테이프 가게인데 쓰리엠 테이프를 단 한 개도 직접 만들지 않았습니다. 다만 가공하고 유통하고 납품할 뿐이었습니다. 만약 양면테이프를 실은 차가 어느 날 오지 않는다면? 그들은 팔 게 없는 것입니다. 상인들의 세계는 수많은 약속들로 이루어져 있는 게 분명했습니다. 저는 그것이 불안해 보였습니다. 골목에 있는 상인들의 얼굴은 가끔 너무나 믿음직스럽지 않아 보였기 때문입니다. 베니스에서 무역을 하는 안토니오도 자신의 물건들을 실어 보낸 배가 예상과 달리 돌아오지 않아 고생하지 않던가요. 장사는 가끔 도박보다 위험해 보였습니다.

저는 상인이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상인보다 더 멋있는 것이 되고 싶었습니다. 다만 베니스의 상인에 관한 이 이야기는 참으로 매혹적이었습니다. 저는 낮잠에서 깬 뒤 그 책을 앞뒤로 훑어보았습니다. 그때 보았습니다.

지은이 윌리엄 셰익스피어.

그때 처음으로 셰익스피어 같은 것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셰익스피어는 양면테이프를 실은 트럭을 기다릴 필요도 없고 자신의 물건을 수출한 배의 위험을 걱정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돈을 버는 데 많은 재료가 필요하지 않을 게 분명했습니다. 한마디로 그에게는 장사 밑천이 필요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무엇을 팔면 좋을까요?

답십리 골목뿐만 아니라 어디에나 상인은 많았습니다. 품위 있는 장사꾼, 옹졸한 장사꾼, 손님을 피곤하게 하는 장사꾼 등 성격도 다양했습니다. 조금 더 많은 상인들을 만나며, 그러나 셰익스피어를 비롯한 여러 작품들을 잊지 않으며 자랐습니다. 스물두 살이 되자 부모님 집에서 나와 독립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먹고살려면 한 달에 80만원은 벌어야 했습니다. 곧바로 이야기를 파는 상인이 될 수는 없었습니다. 아직은 맛깔나는 비극이나 희극을 턱턱 써내는 이야기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건 아마 조금 먼 미래의 일일 테죠. 당장 다음달에 낼 월세를 벌어다줄 일이 필요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제 또래의 친구들은 다들 비슷비슷한 노동력을 팔고 있었습니다. 카페 알바나 음식점 서빙 알바가 가장 흔했습니다. 그것들은 적은 시급에 비해 너무나 많은 시간을 잡아먹는 노동이었습니다. 저는 적은 시간을 들이고도 돈 벌 수 있는 일을 원했습니다. 학교도 다녀야 하고 데이트도 해야 하고 책도 읽어야 하고 살림도 해야 하고, 무엇보다 세상엔 재미있는 일이 아주 많으니까요. 흔치 않은 것을 가진 상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리하여 선택한 것이 누드모델입니다.

저는 옷을 벗어서 돈을 벌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옷을 벗음으로써 짭짤하게 돈을 벌 수 있는 이유는 그야 물론 남들이 옷을 벗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사회에서 고급 인력이 되려면 남들이 못하는 일, 혹은 할 수는 있어도 선뜻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잘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할아버지는 늘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을 기억하며 자란 손녀가 스물두 살이 되어 누드모델이라는 직업을 선택할 줄은, 할아버진 꿈에도 모르셨겠지요. 그는 에곤 실레가 그려놓은 누드화 속 여자들을 제가 얼마나 흠모하며 자랐는지도 모를 것입니다.

몸을 그리는 사람에게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은 그리는 사람이 아닌 그려지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저는 50킬로그램의 건강한 여자애입니다. 옷을 입지 않는 사회는 옷을 입는 사회보다 40퍼센트 더 많이 먹는다고 합니다. 그래야 지방층이 더 두꺼워져서 추위로부터 몸을 보호할 수 있으니까요. 원래 인간은 춥지 않기 위해 옷을 입었습니다. 그러다가 언제부턴가는 부끄럽지 않기 위해 옷을 입게 되었고, 또 언제부턴가는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옷을 입었습니다. 신기하게도 21세기에는 인간이 옷을 입기 위해 음식을 덜 먹는 일이 허다해졌습니다. 굶어야만 입을 수 있는 옷을 탐하게 되었으니까요.

이런 시대의 한가운데에서 저는 옷 벗는 일로 돈을 법니다. 누드모델의 세계에 풍덩 들어가게 되면서 나체를 필요로 하는 곳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입시미술을 준비하는 고등학생, 그림을 전공하는 대학생, 화가, 조각가, 게임회사 디자이너, 취미로 크로키를 배우는 일반인 등 돈을 내고 누드 드로잉 수업을 듣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누드모델협회에 소속돼 있는 저는 협회 회장님에게서 일을 받습니다. 그리고 수업이 진행되는 곳에 뚜벅뚜벅 찾아가서 옷을 벗습니다. 옷을 벗으면 사람들은 저를 그립니다. 그 시선들 속에서 포즈를 취한 채로 가만히 있다가 타이머가 울리면 포즈를 바꾸는 게 일의 내용입니다. 출근하는 날에는 가방에 타이머와 가운을 넣고, 마음에 드는 배경음악을 챙겨서 집을 나섭니다. 이 일은 정말 기가 막히게 재미있고 눈물 나게 고단합니다.

옷을 벗으러 백화점에 갑니다.

신세계백화점엔 냄새가 있습니다. 층별로 다르지요. 9층에서는 물감 냄새가 납니다. 비장한 마음으로 신세계백화점 9층에 내린 저는 백화점의 냄새를 가슴으로 들이마시며 모델협회 선생님과 메시지를 주고받습니다.

“선생님, 신세계백화점에 잘 도착했습니다.”

“수고해요, 슬아씨.”

저는 VIP 고객 전용 아카데미 강의실로 향합니다. 강의실 앞에는 ‘누드크로키 수업’이라고 쓰인 표지판이 붙어 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 처음 보는 아줌마들과 중년의 남자 강사에게 인사를 합니다. 물감 냄새의 근원지는 여기입니다.

준비해온 가운을 꺼내 탈의실에서 갈아입습니다. 누드모델의 가운은 기장이 무릎 정도까지 내려와야 하며 입고 벗기가 너무 어렵지 않아야 합니다. 요즘 제가 입는 건 엄마가 골라준 가운입니다. 알몸으로 벗겨지기 전에 제가 입고 있는 옷은 최대한 고급스러워야 한다고 엄마는 말했습니다. 겨울철에는 엄마의 구제 옷가게에서 11만원에 팔던 폴스미스 알파카 롱코트를 가운으로 입곤 했습니다. 그걸 입고 있으면 무대에 올라가기 전에 기분이 좋았지요. 날이 좀 따뜻해지자 엄마는 옷가게에서 7만원에 팔던 랄프로렌의 코트를 새 가운으로 입으라며 골라주었습니다. 두 벌 다 구제이긴 해도 엄마의 옷가게에서 파는 옷 중 아주 비싼 축에 속하는 코트였습니다.

랄프로렌의 코트를 입은 저는 강의실로 나갑니다. 모피코트를 입은 아줌마들이 수다를 떨고 있습니다. 대화에는 이영애나 김희애가 화제에 오릅니다. 아줌마들이 적당히 기품 있고 적당히 천박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저는 미술교실의 강사 선생님에게 오늘의 포즈 시간을 확인받습니다. 선생님이 말합니다.

“앞의 2시간은 크로키 수업이니까 2분씩 포즈를 바꿔주시고, 뒤의 2시간은 유화 수업이니까 고정 포즈로 진행해주세요.”

5분 전입니다. 스피커를 꺼내 준비해온 음악을 재생시킵니다. 모델이 선곡한 배경음악에 따라 그날 수업의 분위기가 완전히 바뀝니다. 오늘은 카펜터스와 마마스앤드파파스를 비롯한 올드팝을 재생 목록에 추가해놓았습니다. 미술학원이나 대학 강의에 갈 때는 좀더 트렌디하고 감각적인 팝을 주로 틀지만, 백화점 문화센터에 올 때는 너무 흔하지 않은 올드팝이 적절합니다. 볼륨을 올려놓은 뒤 저는 이 강의실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음악을 마음에 들어하는지 아닌지 약간 주의를 기울입니다. 아줌마 중 한 명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캔버스를 꺼냅니다.

무대에 올라가기 1분 전입니다. 타이머를 손에 쥐고 나무 상판으로 만들어진 무대 옆에 서서 신발을 벗습니다. 잠시 후 강사 선생님이 형광등을 끄고 무대 위 핀조명을 켭니다. 연극을 하는 기분으로 무대 위로 올라간 저는 말합니다. “2분 크로키 시작하겠습니다.” 그리고 가운을 벗습니다. 이 순간을 좀 좋아합니다. 믿을 수 없이 홀가분하니까요.

사람들의 시선이 제 몸 구석구석에 닿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제 몸을 빠르게 스캔한 뒤 열심히 그립니다. 저는 옷 입는 걸 무척 좋아하지만 가끔은 아무것도 안 입은 제가 제일 예쁘다고 느낍니다. 옷을 벗은 저는 시간이 흐른다는 걸 그 어느 때보다 온전히 느끼며 서 있거나 앉아 있거나 누워 있습니다. 2분 간격으로 타이머가 울리면 포즈를 바꿉니다. 포즈를 일단 한 번 바꾸면 그대로 가만히 있어야 합니다. 가장 고정하기 어려운 신체 부위는 어깨도 다리도 손목도 아니고, 눈동자입니다. 눈동자를 가만히 두는 게 제일 힘듭니다. 여기저기 쳐다보고 싶어서 미치겠으니까요. 눈동자는 이성보다 빠릅니다. 가끔은 눈동자를 굴리다가 그리고 있는 사람과 눈이 마주칩니다. 그럼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아야 합니다.


변덕스러운 저는 백화점 화장실로 가서 잠깐 눈물을 훔칩니다. 넓고 쾌적한 백화점 화장실에서는 울 맛이 나니까요. 더러운 화장실이라면 절대 안 울었을 것입니다. 아까 무대 위에서 모른 척하며 잠시 곱게 접어놓았던 느낌들을 다시 쫙쫙 펴서 곱씹습니다.


앉아서 놀고먹고 싶어 하는 한량과 결혼해 평생을 고생한 우리 외할머니는 툭하면 말했습니다. 어디 한번 눈 씻고 찾아보라고. 가만히 앉아서 돈 버는 일 같은 건 세상 어디에도 없다고. 긍께 느희 할아부지같이 가만히 있으려는 것들은 자고로 다 글러먹은 년놈들이라고.

그런데요 할머니. 가만히 앉아서 돈 버는 일, 여기 있긴 있더라고요. 문제는 그냥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겁나게 잘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거지만요. 이건 시급 3만원짜리 일이에요. 다들 최저임금을 받으며 카페 알바 하는 시대에 이만큼 잘 버는 여대생이 또 있는지 어디 한번 눈 씻고 찾아보세요. 시간 대비 굉장한 고소득이라니까요. 저는 학교도 다니고 잡지사에서 일도 하고 독립한 집에서 살림도 하는 동시에 이 일도 한답니다. 마음 같아선 손녀의 활약을 충분히 자랑하고 싶은데 할머니가 너무 놀라서 쓰러지실까봐 차마 말 못하겠네요.

그런 잡생각을 하는 사이 20분이 흐릅니다. “10분 쉬겠습니다” 하고 무대에서 내려갑니다. 아줌마들이 붓을 내려놓고 제가 다시 가운을 걸치는 사이 크로키 수업의 강사가 무대 옆으로 걸어와서 말합니다.

“이번주엔 아주 재미있는 모델이 왔네요. 그쵸?”

아줌마들이 강사를 쳐다봅니다.

“지난주까지 왔던 모델이 유순한 느낌이었다면, 이번 모델은 뭐랄까, 느낌이 좀 세네요. 작은데도 힘이 있어요. 모델을 보세요. 키는 누드모델치고 작은 편이고, 상체는 거의 빈약하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말랐어요. 그런데 힙과 하체가, 아아아주 풍만해요. 여러분이 특히 주목해서 그려야 할 부분은 저기, 등뼈와 골반선이에요. 등에서 허리를 지나 힙과 엉덩이까지 떨어지는 커브가 장난이 아니죠? 이만한 굴곡은 흔히 찾아볼 수 없어요. 커브가 센 상체를 그려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예요.”

저는 속으로 웃습니다. 중학교 땐 골반이 커서 학교에 가기 싫었습니다. 어떤 남자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저를 보고 애 잘 낳을 것 같은 골반이라고 말한 뒤에는 더욱더 그랬지요. 그때는 스물두 살의 제가 골반뼈가 하이라이트인 누드모델 생활을 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한 아줌마가 저를 보며 말합니다. “탕웨이랑 조금 닮았네.”

오른쪽에 앉은 아줌마가 거듭니다. “그리고 걔 누구더라, 모델 중에 눈 쪽 찢어진 애.”

이번엔 왼쪽에 앉은 아줌마가 끼어듭니다. “장윤주?”

아줌마들이 “맞다! 맞다!” 하며 웃습니다.

그때 구석에 앉아 있던 아줌마가 한마디 꺼냅니다. “신정아랑 너무 닮지 않았어요?”

오른쪽 아줌마가 묻습니다. “신정아가 누군데?”

왼쪽 아줌마가 대답합니다. “왜 그 있잖아요, 국회의원이랑 바람난 년.”

가운데 아줌마가 맞장구를 칩니다. “어머어머, 그러게 말이야. 좀 닮았네. 변양균이랑 바람나고 책 쓴 년 말하는 거지?”

아줌마들은 그 후로 한참을 더 신정아 얘기를 합니다. 저는 들은 척과 못 들은 척 사이의 애매한 중간 지점을 찾아 그냥 살짝 웃고 맙니다.

네 번의 크로키를 반복하고, 타이머가 울립니다. 드디어 4시간짜리 일이 끝났습니다. 진이 빠집니다. 저는 무대에서 인사를 한 뒤 탈의실로 가서 옷을 입습니다. 탈의실이 무척 싸늘하다는 걸 이제야 실감합니다.

강의실을 빠져나오자 일하느라 잠시 구겨놨던 민망함과 서러움이 슬쩍 고개를 듭니다. 변덕스러운 저는 백화점 화장실로 가서 잠깐 눈물을 훔칩니다. 넓고 쾌적한 백화점 화장실에서는 울 맛이 나니까요. 더러운 화장실이라면 절대 안 울었을 것입니다. 아까 무대 위에서 모른 척하며 잠시 곱게 접어놓았던 느낌들을 다시 쫙쫙 펴서 곱씹습니다. 골반뼈의 통증과 어깨와 무릎의 뻐근함과 톡톡 튀는 다리 저림과 으스스한 추위와 중간에 지루한 듯 붓을 내려놓던 아줌마의 표정과 신정아 얘기와 강사가 내 엉덩이보고 궁둥이라고 말할 때의 입 모양 같은 것들을 떠올리며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립니다. 엄마가 보고 싶어져서 조금 더 웁니다.

이제 대충 다 울었습니다. 울고 나니 서러울 거 하나 없습니다. 오늘 번 돈만으로도 이번달 전기요금과 도시가스비와 인터넷요금을 내고도 남는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조금 점잖아집니다. 다만 배가 고픕니다. 화장실 칸에서 나와 세면대에서 눈물 자국을 닦고 고급스러운 향기의 액체비누를 짜서 꼼꼼하게 손을 씻은 뒤 건조기 바람에 뽀송뽀송하게 말립니다.

백화점 9층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푸드코트로 내려가면서 무얼 먹을지 생각합니다. 두근두근 뛰는 마음으로 지하 푸드코트에 도착합니다. 아아, 나를 압도하는 냄새로 가득한 이곳. 맛있는 냄새 때문에 정신이 잠깐 아찔하네요. 신세계백화점 푸드코트는 진짜 신세계입니다. 맛있는 메뉴가 심각할 정도로 많고, 마감세일 중인 지금 이 시간에는 가격도 싸니까요. 저는 아주 신중하게 메뉴를 고른 뒤 간이 식탁에 앉아 그것들을 냠냠 쩝쩝 먹어치웁니다. 행복합니다. 화장실도 좋지만 신세계백화점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푸드코트입니다.

옷을 벗으러 강북 미술학원에도 갑니다.

어느새 여름입니다. 목소리가 걸걸한 미술학원 원장이 학생들을 향해 신경질적으로 소리칩니다. “야야, 숨 쉬지 마. 너희가 뱉은 이산화탄소 때문에 교실 더워지잖아.”

서른 명이 넘는 고등학생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웃고 떠들며 교실을 소음으로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노원구에 있는 한 입시미술학원. 얼굴에 여드름과 뾰루지가 가득한 남녀 고등학생들이 득실득실합니다. 누드 크로키 수업 직전, 고등학생들이 떠는 호들갑과 짓궂은 장난을 지켜보며 무대에 설 준비를 합니다. 여러 번의 실험 결과 이런 날엔 어설픈 팝송보다는 영화 OST를 트는 것이 적절합니다. 에 삽입된 음악들은 발정 난 말 같은 고등학생들을 차분히 가라앉히는 데 탁월하니까요. 곧이어 가운을 벗습니다.

가운을 벗자 입시생들은 손과 고개를 바쁘게 움직이며 그림을 그립니다. 교실은 입시생들이 그린 데생들로 사방이 둘러싸여 있고, 마룻바닥에는 물감 자국과 지우개 가루가 즐비합니다. 서른 명이 넘는 고등학생들이 스케치북을 들고 가운데에 서 있는 제 몸을 그리고 있습니다. 예전에 “지지배야, 너는 꼬추가 없잖아”라고 말하던 삼촌을 기억합니다. 학생들의 스케치북 위에 슥슥 그려지고 있는 제 몸은 누가 봐도 여자의 몸입니다.

아직 덜 벌어진 어깨들. 덜 자란 가슴들. 덜 자란 손발과 덜 높아진 코와 생길랑 말랑 한 쌍꺼풀들과 교정기를 빼지 않은 치아들. 그 몸들 사이에서 알몸인 내가 가만히 서 있습니다. 창밖에서 매미 소리가 들립니다. 스퀴열- 씨-열- 씨-열. 저는 알몸으로 매미 소리를 들으며 포즈를 바꿉니다.

옷을 벗으러 강남 미술학원에도 갑니다.

압구정 미술학원이 강북 미술학원과 다른 건 좋은 교실에서 소수정예로 수업을 한다는 점입니다. 서른 명이 넘는 강북 미술학원처럼 선생님이 이산화탄소 걱정을 할 필요가 없지요. 강북 애들이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가기 위해 입시미술을 한다면, 압구정 미술학원 애들은 미국에 있는 미대를 가기 위해 입시미술을 합니다. 그 애들은 엄마가 태워주는 차로 미술학원 앞에 도착합니다. 비싼 옷과 비싼 신발과 비싼 헤드폰을 걸쳤습니다.

그들 앞에서도 아무 팝송이나 틀 수 없습니다. 다들 영어를 아주 잘하니까요. 미술학원 안에서도 심심하면 영어로 대화하곤 하는 애들. 그래서 저는 압구정 미술학원에 올 때마다 가사가 많지 않은 다프트 펑크의 음악을 틀곤 합니다.

쉬는 시간에 저는 그 애들의 스케치북을 보고 깜짝 놀랍니다. 저를 정말 잘 그려놓았기 때문입니다. 강남 고등학생들이 그려놓은 내 모습은, 나보다도 더 나랑 닮았습니다. 수업이 끝난 뒤 그들은 신사동 가로수길로 저녁을 먹으러 갑니다. 저는 배고픔을 참고 아현동까지 전철을 타고 와서 룸메이트가 차려주는 밥을 먹습니다.

누드모델들은 한여름과 한겨울에 한가합니다.

모델 일의 수요는 주로 학기 중에 많습니다. 경력이 있는 누드모델들은 학기 중에 바짝 돈을 번 뒤 방학 때엔 해외여행을 가거나 여유롭게 바캉스를 즐깁니다.

언젠가, 협회에 소속된 누드모델들끼리 모여 수다를 떨었던 적이 있습니다. 나체를 파는 상인들은 기가 셉니다. 신참인 저는 조용히 웃으며 기 센 언니들의 수다를 듣고 있었지요. 커트머리의 깡마른 모델 언니가 다른 모델들에게 물었습니다.

“이 일 하는 거, 사람들한테 말해요?”

다들 이구동성으로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목선이 예쁜 단발머리의 언니가 불평했습니다.

“말하면 다들 이렇게 묻잖아요. 돈 때문에 그 일 하는 거지?”

커트머리의 언니는 억울한 듯 중얼거렸습니다.

“맞아요. 나는 나름 숭고한 이유가 있어서 이 일을 하는 거거든요. 근데 다들 일단 돈 때문이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러자 옆에 조용히 앉아 있던 긴 머리의 글래머러스한 언니가 피식 웃으며 말했습니다.


“너는 어떤 장소에도 잘 지지 않는 것 같아. 신기해. 나는 자주 장소한테 지거든.” 친구남자는 차분하게 그 말들을 내게 건넸습니다. 그때 어렴풋이 느꼈습니다. 1년째 누드모델로 일하면서 나는 장소한테 지지 않는 법을 배웠구나.


“나는 돈 때문에 하는데, 자기는 아니에요?”

그러자 커트머리의 언니가 당황하며 대답했습니다.

“아니… 물론 페이가 세기도 하죠. 근데 저는 진짜 숭고한 자세로 이 일 하는 거예요.”

긴 머리의 언니가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습니다.

“그 숭고하다는 게 대체 뭔데요?”

커트머리의 언니가 머뭇거렸습니다. 긴 머리의 언니가 또박또박 말했습니다.

“다른 일보다 천박할 이유도 없지만 그렇다고 딱히 더 숭고할 이유도 없죠.”

그 자리에 있던 여덟 명의 누드모델들은 모두 입을 다물었습니다. 긴 머리의 언니는 담배를 피우러 나갔습니다. 그날 저는 그 언니를 따라 나가서 휴대폰 번호를 물어보았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언니, 저는 돈 때문에 누드모델을 해요. 그려지는 게 황홀해서 누드모델이 되기도 하고요. 그러나 무엇보다도, 시간 때문에 누드모델을 해요. 내 마음대로 시간을 쓸 수 있는 몇 안 되는 직업 중 하나잖아요. 일하고 싶을 때만 일해도 생활비를 벌 수 있으니까.”

긴 머리의 언니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시간이 제일 비싸다는 거, 알고 있구나.”

저는 진작 알았다며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상인들 중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사람은 빌딩을 가진 사람도 아니고 자동차를 가진 사람도 아닌, 시간을 가진 상인이라는 사실을 그때 막 실감했습니다. 시급 3만원짜리 모델들. 비참한 마음 없이 벗은 몸을 팔 수 있는 상인들. 우리는 서로에게 휴대폰 번호를 알려주었습니다.

알몸을 파는 상인이 되어 전국을 돌아다닌 지 1년째입니다.

옷을 벗는 장소는 매번 바뀝니다. 일하러 갈 때마다 처음 보는 장소와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매번 새롭게 적응해야 합니다. 그때의 긴장과 피로감을 잘 견디는 게 이 일의 핵심입니다. 저는 점점 어떤 장소에도 잘 지지 않는 몸을 가진 상인이 되어왔습니다.

얼마 전 학교 식당에 앉아 밥을 먹는데 맞은편에 앉은 친구남자가 저를 빤히 바라보더니 안경을 추어올리며 대뜸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디에 있어도 자연스러워, 너는.”

“그게 무슨 말이야?”

“그냥 네가 그 장소에 있는 게 어울린다는 말이야.”

“당연하지. 나 맨날 여기서 밥 먹잖아.”

“여기가 아니더라도 말이야. 너는 남의 방에 들어가 있는 것도 어울리고 바다에 있는 것도 어울리고 산속에 있는 것도 어울리고 밭에 있는 것도 어울려. 어디에 있어도 안 어색해. 원래 그 장소의 일부인 것처럼 거기 서서 웃고 떠든다니까. 뻔뻔할 만큼 편안하게.”

그는 잠시 턱을 매만지고는 이어서 말했습니다.

“너는 어떤 장소에도 잘 지지 않는 것 같아. 신기해. 나는 자주 장소한테 지거든.”

친구남자는 차분하게 그 말들을 내게 건넸습니다. 그때 어렴풋이 느꼈습니다. 1년째 누드모델로 일하면서 나는 장소한테 지지 않는 법을 배웠구나.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언어화해준 그에게 고마워하며 대답했습니다.

“그 이유는 내가, 처음 가보는 장소와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단번에 주인공이 되어버리는 일로 돈을 벌고 있기 때문이야.”

그러자 친구남자는 요즘 어디서 마술이라도 배우는 거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웃고 말았습니다. 아직은 제가 무엇으로 돈을 버는지 이야기하기엔 이릅니다. 기다리는 중입니다. 나를 불쌍하게도 특별하게도 여기지 않는 채로 이 직업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될 때까지.

그러다가 이야기가 목까지 차오르는 날에는 글을 씁니다.

이야기를 파는 상인을 여전히 잊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무슨 글을 써도 종이와 잉크가 조금은 아깝습니다. 적어도 인쇄되는 것이 아깝지 않을 만한 이야기를 쓰는 것이 목표입니다. 셰익스피어가 쓴 이야기에는 맨 아래부터 저 꼭대기까지 모든 계층의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그는 돈을 내기만 하면 상놈이든 귀족이든 극장에 들어갈 수 있게 된 첫 세대의 작가였습니다. 너무나 다양한 계층이 그의 연극을 보러 왔기 때문에 그는 어떤 세대도 소외되지 않는 이야기를 지어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잘나가보고도 싶고 망해보고도 싶습니다. 뭔가를 쓰려고 하는 사람에게 쓸데없는 경험은 하나도 없을 테니까요. 장사꾼보다 더 많은 장사 밑천이 필요한 일이라는 걸 알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양면테이프 자르는 법을 배우던 세 명의 손자들 중에서는 이경희만이 가업을 물려받을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여전히 상인들의 딸입니다. 하지만 포샤 같은 여자를 꿈꾸지는 않습니다. 건물 주인을 꿈꾸지도 않습니다. 뒷짐을 지는 어른이 되고 싶은 마음도 별로 없습니다. 이왕이면 팔을 흔들며 씩씩하게 걷는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구체적으로 뭐가 될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아직 저는 제 손바닥만 한 이야기밖에 쓰지 못하니까요.

그렇습니다. 상인들 사이에서 태어나 자라고 있습니다. 이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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