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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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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트와 오렌지

제5회 손바닥문학상 가작
등록 2013-12-14 13:07 수정 2020-05-03 04:27

“씨발새끼, 또 집착하게 만드네.”

바람이 없었다. 햇살이 그대로 지상에 내려앉았다. 여름의 문턱을 넘어섰지만 그리 덥지 않았다. 신촌역 근처에서 자판기 커피를 마시고 있던 나와 제임스가 공중전화 박스 안에서 흘러나온 소리를 들었다. ‘집착’. 깡마른 여자애는 신경질적으로 수화기로 전화기를 내려쳤다.

“왜? 또 전화 안 받아?”

옆에 있던 긴 머리가 씩씩대고 있는 깡마른 여자애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에잇, 씨발놈.”

나와 제임스의 눈이 마주쳤다. 우리는 당연하다는 눈빛을 나누고 공중전화 앞에 서 있는 여자애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개 같은 새끼! 또 누구랑 있는 거야!”

깡마른 여자애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더니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상대방이 전화를 받지 않는지 또 투덜댔다.

“야, 네 전화로 자꾸 하니까 안 받는 거 아냐? 조금 있다가 다시 공중전화로 해봐.”

“이 새끼 모르는 번호나 발신번호 제한은 아주 개무시해. 씨발새끼, 어떻게 하지.”

그때 내가 깡마른 여자애 앞으로 휴대폰을 내밀었다. 여자애들은 멈칫하면서 나를 쳐다봤다. 나는 말없이 휴대폰을 쓰라며 한 번 더 내밀었다. 깡마른 여자애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내 손에 있던 휴대폰을 낚아챘다. 잽싸게 번호를 누르더니 휴대폰을 귀에 갖다 대고 나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이번에는 상대방이 전화를 받은 모양이었다.

“오빠! 왜 전화 안 받아?”

깡마른 여자애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찢어질 듯 공중을 갈랐다. 그녀는 뒤로 돌더니 찻길을 바라보고 뭐라 알 수 없는 욕을 퍼부었다. 그러더니 이내 다시 번호를 누르고, 휴대폰을 귀에 갖다 댔다. 그동안 제임스는 커피를 다 마셨는지 종이컵을 구겨 바닥에 버리고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리고 내게 와서 담배를 건넸다. 나는 제임스가 건넨 담배를 입에 물고, 그녀의 행동을 지켜봤다. 옆에 서 있던 긴 머리도 우리와 나란히 서서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끊긴 통화를 어떻게라도 이어보려고 안간힘을 썼다.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보내는 전파는 또 다른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거부하는 벽에 막혀 이어지지 못하고 허공으로 깨끗이 사라지고 있었다. 그녀는 포기했는지 고개를 숙인 채 휴대폰을 두 손으로 잡았다. 우리는 필터까지 담배를 빨며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여기요.”

깡마른 여자애가 건네주는 휴대폰을 받으며, 물고 있던 담배를 바닥에 비벼 껐다.

“우리 인천 갈 건데, 같이 갈래?”

나는 휴대폰을 뒷주머니에 넣으면서 말했다. 제임스는 나를 힐끗 쳐다보더니 살짝 미소를 지었다. 깡마른 여자애는 건드리기만 해도 와락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표정으로 긴 머리를 쳐다봤다. 나와 제임스는 여자애들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싫음 말고.”

나는 제임스에게 고갯짓을 하며 가자고 했다.

“인천 잘 알아?”

깡마른 여자애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차이나타운도 알아? 나 거기 데려다줘.”

차이나타운? 인천에 그런 곳이 있었나? 나는 앞장서며 여자애들에게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주저하는 긴 머리의 손목을 끌고 깡마른 여자애가 우리를 따라왔다.

인천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차이나타운은 물론이거니와 인천이 어떤 곳인지 전혀 몰랐다. 서울이 아니고, 지방이니 작은 도시로만 생각했다. 나는 애들을 데리고 지하철을 탔다. 신도림에서 인천행으로 갈아타고, 인천에서 내리면 거기가 인천이겠지. 하지만 지하철 노선도를 보면서 생각에 혼란이 왔다. 동인천역이 있고, 인천역이 있었다. 인천을 제물포라고도 한다고 알고 있었는데, 제물포역도 있었다. 어디서 내려야 하는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인천은 큰 도시였다.

오후라서 그런지 지하철 안은 한산했다. 우리는 나란히 앉았다.

“사람들이 뭐라고 부르냐?”

내가 옆에 앉은 긴 머리에게 물었다. 긴 머리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이름 말이야, 이름. 사람들이 뭐라고 너희를 부르냐고. 얘는 제임스야. 나는 공.”

“제임스? 공? 그게 이름이야? 이름이 뭐 그래? 유학파니?”

“유학파? 하하하, 그건 아니고. 어쨌든 너희는 뭐라고 부르는데?”

제임스는 긴 머리하고의 대화를 귀를 쫑긋 세우며 듣고 있었다. 유학파라는 말에 어깨를 으쓱했지만 이내 내가 아니라는 말에 다시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나는 긴 머리를 쳐다보며 한 손으로 제임스의 어깨를 쓰다듬었다. 물론 제임스와 공은 본명이 아니었다.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 대신에 우리는 제임스와 공으로 불렸다. 제임스의 가방에는 항상 본드가 있었다. 소지품 검사를 할 때마다 본드가 나오자 담임은 007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 이름인 제임스 본드에서 본드를 빼고 제임스라고 불렀다. 그걸 우리가 따라 부르다보니 본명은 온데간데없고, 제임스라는 별칭만 남았다. 친구들과 얘기하다보면 가끔 이 녀석의 진짜 이름이 생각 안 날 때가 많았다. 선생님들도 이름보다 제임스에 더 익숙해져서 출석을 부를 때도 본명 대신 제임스라고 호명했다. 제임스는 가끔 손가락으로 총 모양을 만들어 007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 흉내를 내곤 했다.

어느 과목인지 생각나지 않지만 어디선가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는 말을 들은 이후로 나는 모든 대답을 ‘공’(空)이라고 했다. ‘밥 먹었니?’라는 질문에도, ‘어디 가는데?’라는 질문에도, ‘와, 저년 좆나 삼삼하다’라는 말에도 나는 무조건 “오호, 세상사가 공이거늘” 했다. 그랬더니 친구들이 애늙은이라며 ‘늙은이 공’에서 ‘늙은이’를 빼고, 그냥 ‘공’이라고 짧게 불렀다. 긴 머리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얘는 민이고, 나는 지야.”

민? 지? 깡마른 애가 민이고, 긴 머리가 지였다. 혹시 ‘민지’라는 이름에서 하나씩 나눠가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물어볼까 하다가 나는 어차피 세상사 공이거늘 하며 그만뒀다.

“차이나타운은 왜?”

내가 지에게 묻자 지가 조용히 하라며 집게손가락을 입술에 가져갔다. 그러고는 민을 살폈다. 민은 지하철에 탄 후로 고개를 푹 숙인 채 자신의 휴대폰만 쳐다보고 있었다.

“차이나타운이 뭐하는 곳이냐? 중국집이야? 무슨 자장면 먹으러 인천까지 가냐?”

제임스가 큰소리로 물었다. 지와 나는 동시에 제임스를 쳐다봤다. 이런 등신 새끼, 분위기 파악 못하고. 제임스는 자기가 뭘 잘못했느냐는 표정으로 어깨를 들썩였다. 나는 제임스의 목을 한 손으로 잡고 졸랐다. 제임스는 옆으로 쓰러지면서 바동거렸다.

“에이, 씨발, 진짜!”

휴대폰을 보고 있던 민이 소리쳤다. 우리는 그대로 정지한 채 민을 살폈다.

“변태 씹새끼. 아주 지랄을 해요, 지랄을.”

민은 휴대폰을 지에게 보여줬다. 나는 제임스의 목을 잡았던 손을 놓고 민의 휴대폰을 힐끗 쳐다봤다. 문자메시지가 와 있었다.

“미친 새끼. 근데 돈은 많잖아. 또 할 거야?”

민에게 온 문자메시지를 본 지가 민을 보면서 말했다.

“하긴, 돈은 많지. 달라는 대로 주니까. 근데 더러워죽겠어. 저번에 얘기했잖아. 완전 변태야, 변태.”

민에게 온 문자는 민이 기다리던 사람에게 온 것이 아니었나보다. 민은 돈이라는 말에 힘이 살짝 빠졌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할까? 그 돈 받으면 울 오빠 핸펀 바꿔줄 수 있는데.”


오전에 담임이 나를 부른 건 애들을 잡아오라는 거였다. 우리 반에 세 놈이 무단결석을 한 지 벌써 보름이 넘어가고 있었다. 담임은 나를 힐끗 쳐다보더니 다짜고짜 “갔다 와!”라고 목소리를 깔고 얘기했다.


민은 잠시 고민하다가 답문자를 보냈다. 아까까지만 해도 우울해 있던 민의 표정이 잠시 밝아졌다. 지하철은 지하에서 나와 지상을 달리기 시작했다. 제임스는 내가 졸랐던 목이 답답했는지 목을 쓰다듬으며 민과 지를 힐끔힐끔 쳐다보다가 가방을 들고 객실과 객실 사이 공간으로 들어갔다. 창 안으로 펼쳐지는 햇살을 등지고 민과 지는 앉아 있었다. 오후의 햇살은 객실 안으로 고루 퍼졌다. 그제야 나는 민과 지를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아까는 몰랐는데 민과 지는 살짝 화장을 한 상태였다. 민은 청바지를, 지는 짧은 치마를 입고 있었고, 둘 다 어색한 구두에 가방 대신 핸드백을 메고 있었다. 누가 봐도 학생이었다. 아무리 덧대고, 치장을 하더라도 원모습은 감출 수 없나보다. 다른 사람으로 아무리 차려입어도 어색하고, 어울리지 않는 행색과 행동은 어쩔 수 없다. 자신의 이름 대신에 제임스로 불리고, 공으로 불리는 것도 마찬가지다. 집에서 지어준 이름은 겉치레에 불과했다. 좋은 이름을 가지고 있어봤자 그 사람의 본질이 될 수 없다. 제임스에게 맞는 것은 본드고, 나에게 맞는 것은 허무였다.

“근데, 너네는 왜 인천에 가는데?”

지가 물었다.

오전에 담임이 나를 부른 건 애들을 잡아오라는 거였다. 우리 반에 세 놈이 무단결석을 한 지 벌써 보름이 넘어가고 있었다. 담임은 나를 힐끗 쳐다보더니 다짜고짜 “갔다 와!”라고 목소리를 깔고 얘기했다. 내가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하자 담임은 돌아앉으며 녀석들 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했다. 그러고는 차비라며 지갑에서 오만원을 꺼내 내게 건넸다. 나는 제임스랑 같이 가겠다고 했다. 담임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담임은 말 그대로 무관심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담임을 ‘무’라고 표현했다. 수업 시간에 떠들든, 지각을 하든, 수업을 땡땡이치든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 뭐 하나 기분이 틀어지면 다짜고짜 욕설을 퍼부었다.

“이런 개 같은 좆만 한 씹새끼를 봤나. 에이 호로씨부랄탱이야. 그래서 어디 사람 구실이나 하겠냐? 니 인생이 불쌍하다, 불쌍해.”

물론 수업 시간이나 교실에서는 절대 욕을 하지 않았다. 교사 휴게실에 조용히 불러 중저음의 목소리로 차분하게 욕을 씹어댔다. 그래서 ‘무’에는 무관심 외에 무데뽀의 뜻도 있었다. 아마 체벌이 가능했으면 벌써 몇 명은 아작이 났을 거다.

담임이 녀석들을 잡아오라는 것은 없던 관심이 생겨서가 아니다. 녀석들은 학교 밖에서 담배를 피우다 학생부 독사와 우연히 마주쳤다. 독사는 그 자리에서 녀석들의 담배를 빼앗으려고 했다. 순간, 한 놈이 학생부 선생 중에 가장 독하다는 독사에게 주먹을 날렸다.

“씨발, 여기가 학굔 줄 알아?”

무방비 상태에 있던 독사는 녀석의 주먹을 미처 피하지 못했다. 쓰러진 독사를 녀석들이 한꺼번에 밟았다. 다음날 독사는 담임을 찾아왔고, 녀석들은 학교에 나타나지 않았다. 독사는 담임의 대학 선배였다. 이를 갈고 있던 독사가 담임을 계속 쪼았던 것이다.

나는 녀석들이 인천 어느 부둣가에 있는 음식점에서 배달을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중식과 한식을 같이 하는 곳이라는데 정확히 어디인지 알 수 없었다. 공돈도 생겼겠다, 공식적으로 수업도 빠질 수 있는 기회여서 나는 제임스를 데리고 학교를 나왔다. 담임에게는 녀석들이 돌아올 의지가 없다고, 너무 완고해서 못 데리고 왔다고 하면 그만이다. 어디서 일하냐고 물어보면, 대충 인천에 있는 아무 음식점이나 대면 그뿐이었다. 내가 다녀간 후로 녀석들이 다른 곳으로 옮겼다고 하면 그만이니까.

“왔다!”

민이 휴대폰을 봤다. 아까 민이 보낸 문자에 답문이 와 있었다. 민은 잠시 말이 없었다. 슬그머니 휴대폰을 밑으로 내리더니 지를 쳐다봤다.

“뭐래? 오늘 만나기로 했어?”

“음…, 그게 둘이 하고 싶대.”

“남자 둘에 너 하나?”

“아니, 여자 둘.”

민은 지를 쳐다봤다. 지도 민을 쳐다봤다. 갑자기 지가 손을 들더니 민의 뺨을 짝 소리가 나도록 올려붙였다.

“니미 씨발, 이 개 같은 년아! 죽고 싶냐? 어디서 걸레 같은 년이 죽으려고. 너나 해 이 쌍년아. 나 건드리면 죽을 줄 알아.”

민은 고개를 숙인 채 맞은 뺨을 손으로 만지고 있었다. 지는 계속해서 혼잣말로 욕을 해댔다. 나는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이라 지를 말릴 겨를이 없었다. 그리고 솔직히 궁금했다. 둘의 대화에서 대충 짐작은 갔으나 세세히 알고 싶은 것도 있었다. 또 한 가지, 세상사 공이거늘 내가 굳이 둘의 싸움에 낄 필요가 없었다. 오늘 처음 만났겠다, 아직 잘 알지도 못하는 사이였는데, 내가 둘 사이에 낄 이유가 없었다. 민은 다시 뭐라 답문을 쓰고 있었다.

“잘해라, 오빠에게 말하기 전에.”

지의 말에 민이 문자를 쓰다가 지를 노려봤다. 지는 민을 의식해서인지 알았다는 표정으로 민의 어깨를 주물렀다. 그사이 다음 역이 종착역이라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나는 제임스를 찾았다. 제임스는 객차와 객차 사이의 공간에서 나와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제임스의 걸음걸이가 약간 이상해 보였다. 비틀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뭐에 홀린 것 같기도 했다. 제임스는 잠시 멈추더니 히죽히죽 웃다가 순간 바지를 내렸다. 덜컹거리는 객차 안에서 제임스의 물건이 덜렁거렸다.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나왔다. 나는 벌떡 일어났다. 내가 손쓸 겨를도 없이 오렌지색 넥타이를 맨 남자가 잽싸게 제임스를 발로 걷어찼다. 제임스는 넘어지면서 쭉 뒤로 밀렸다. 넥타이는 넘어져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제임스를 계속해서 걷어찼다. 나는 제임스 쪽으로 뛰어갔다. 넥타이와 가까워졌을 때 나는 손잡이를 잡고 공중으로 몸을 날렸다. 제임스를 위에서 찍어 누르던 넥타이의 등을 향해 정확히 발을 날렸다. 넥타이의 등짝에 내 신발 자국이 선명히 찍혔다. 넥타이는 앞으로 고꾸라졌고, 나는 쓰러져 있는 제임스를 일으켰다. 나는 제임스의 바지를 빠르게 추슬렀다. 넥타이는 갑작스러운 공격에 놀라 나를 쳐다봤다.

“뭐야!”

일어서려는 넥타이를 향해 나는 한 번 더 발을 날렸다.

“니 좆이다!”

마침 열차는 종착역에 도착해서 문이 열리고 있었다. 나는 제임스 손을 잡고 뛰기 시작했다. 민과 지도 후다닥 우리를 뒤따라왔다. 몇 안 되는 객차 안 사람들은 그저 구경만 하고 있었다.

역사를 나온 우리는 막 출발하려는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 안에는 서너 명만이 앉아 있었다. 우리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맨 뒷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버스는 바로 출발했고, 나는 우리가 방금 나온 역사 출입구를 살폈다. 다행히 넥타이는 뒤쫓아오지 않았다. 제임스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반쯤 풀린 눈으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와, 대박. 완전 짱이야. 대단한데.”

지가 제임스를 보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제임스는 자신이 대견스러운 듯 살짝 미소를 지었다.

“여태 본 개똘아이 중에 최상이다. 와, 인간이 미쳐도 저렇게 완벽하게 미칠 수 있구나. 하하.”

지는 여전히 제임스를 보며 조롱 섞인 말을 내뱉었다.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숨을 헐떡이다가 지를 쳐다봤다. 지는 왜라는 표정을 지었다.

“아가리 닥쳐.”

지에게만 들릴 듯 말 듯 작은 소리로 말했다. 지의 표정이 그대로 굳었다. 나는 다시 고개를 숙이고 숨을 골랐다.

세상에 미치지 않은 사람은 없다. 초등학교 때 어머니는 내 손을 잡고 정신병원 문을 두드렸다. 나는 항상 머리가 아팠다. 이유도 없이 어지러웠다. 귀에서는 ‘삐’ 하는 가느다란 소리가 연신 울려댔고, 몸도 못 가눌 정도로 세상이 빙글 돌았다. 그것 때문에 어머니가 나를 데리고 병원을 찾은 것은 아니다. 그때 나는 뭐든지 궁금했다. 방문에 달려 있는 손잡이가 궁금했고, 음악과 사람의 목소리가 나오는 오디오가 궁금했고, 셔터를 누르면 앞의 풍경이 그림이 되어 나오는 사진기가 궁금했다. 내 궁금증은 호기심으로 발전했고, 호기심은 우주의 신비를 파헤치는 과학자처럼 하나하나 의문점을 풀어가도록 만들었다.

먼저 방문 손잡이를 분해했다. 그리고 오디오의 비밀을 방바닥에 늘어놓았다. 분해할 때 나에게는 원칙이 있었다. 분해하는 순서대로 쭉 늘어놓았다. 분해하는 순서대로 가로로 쭉 늘어놓다가 궁금증이 풀리면 역순으로 재조립했다. 아버지가 아끼던 오디오의 신비를 한창 파헤치고 있을 때 아버지가 집으로 들어왔다. 산산조각 난 오디오를 보고 아버지는 말을 잇지 못했다. 할아버지의 유품인 사진기를 하나하나 뜯어서 펼쳤을 때 아버지는 드디어 참고 있던 분노를 표출했다. 아버지가 휘두르는 완강한 완력으로 나와 아버지의 대화는 그때 닫혀버렸다.

나는 집에서 고립된 섬이 되었다. 집에서 밥 먹을 때도, 외식을 할 때도, 식구들이 저녁에 모여 텔레비전을 시청할 때도 나는 입을 열지 않았다. 간혹 내가 말을 하더라도 그들은 못 알아듣는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내가 알아낸 세상의 원리를 아무리 얘기해도 그들은 대화에 나를 껴주지 않았다.

방문을 열려면 손잡이를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힘을 주어 돌려야 한다. 손잡이를 돌리는 순간, 손잡이 안에서는 여러 부품들이 서로 얽혀 밀어내고 당겨주며 닫혀 있던 빗장을 푼다. 그러면 문이 열린다. 그렇게 나는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아니, 방에서 밖으로 나오고 싶었다. 그러나 온통 의문점으로 가득하던 세상을 알고 싶었던 나에게 좀처럼 방문은 열리지 않았다. 돌리고 있던 손잡이를 놓으면 빗장은 원래 자리로 되돌아오듯 문은 닫혀버렸다.


세상에 미치지 않은 사람은 없다. 초등학교 때 어머니는 내 손을 잡고 정신병원 문을 두드렸다. 나는 항상 머리가 아팠다. 그때 나는 뭐든지 궁금했다. 방문에 달려 있는 손잡이가 궁금했고, 음악과 사람의 목소리가 나오는 오디오가 궁금했고, 셔터를 누르면 앞의 풍경이 그림이 되어 나오는 사진기가 궁금했다.


나를 뺀 가족들과 내가 멀어질수록 나는 점점 말이 없어졌다. 나는 말수가 줄어들수록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고, 그때마다 집 안의 물건들을 분해했다. 물건들이 작동하는 원리는 비슷비슷했다. 방문 손잡이처럼 힘을 주면 크고 작은 부품들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작동했다. 학교에서 배우는 도르래 원리나 시소, 미세한 톱니바퀴가 맞물려 정확하게 움직이는 시계의 원리가 작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원리의 비밀에 빠질수록 나를 향한 가족의 시선은 이상해졌다. 마치 성난 야생동물처럼 내가 늘 으르렁거린다는 거였다. 결국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특명을 내렸다.

병원에서는 엑스레이(X-Ray), CT 촬영과 뇌파 검사를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 귓가에 울리는 이상한 소리와 어지럼증을 고치려고 하는 줄 알았다. 검사 결과가 정상으로 나왔을 때 어머니는 당연하다는 듯 정신과 상담을 신청했다. 온갖 이상한 그림을 펼쳐놓고 거기에 맞는 답을 체크하도록 했다. 어머니는 의사에게 내가 작은 것에도 화를 내고, 분노를 참지 못한다고 말했다. 어머니의 말을 들은 의사는 뭔가를 자꾸 써내려갔다. 그때 내 머릿속을 스쳐갔던 것이 있었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본 온통 쇠창살로 된 하얀 건물. 정신병동. 하얀 가운을 입은 환자들이 넋이 나간 듯 좀비처럼 걸어다니고, 시간에 맞춰 약을 먹고, 누군가는 미친 듯 소리를 지르고, 치료를 한다며 전류가 흐르는 물에 환자를 담그는 장면. 어떻게든 거기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얀색의 공포가 내 몸을 떨게 만들었다. 내 별칭인 ‘공’이 시작된 때였다. 세상의 원리는 원리고, 궁금증은 궁금증일 뿐이다. 그렇게 속으로 치유하며 세상사 공이라고 받아들였다.

우리에겐 누구나 응어리가 있다. 제임스의 응어리를 내가 속속들이 아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가 응어리를 어떻게든 풀지 않으면 안 되는 것만은 알고 있었다. 세상은 제임스에게 제임스가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너무나 많은 것을 요구했다. 제임스가 받아들이고 짊어지기에 현실은 너무나 가혹했다. 제임스가 세상의 모든 요구를 받아들이고 이룰 수 있는 순간은 본드에 취해 있을 때였다. 경찰서를 들락거리던 형이 집을 나가 들어오지 않은 지 꽤 오래되었고, 아버지는 하루가 멀다 하고 제임스를 두들겨 팼으며, 학교에서는 누구도 그에게 따뜻하게 말 한마디 건네는 사람이 없었다. 본드에 취해 있을 때 제임스는 전교 일등이 되었고,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어머니가 따뜻한 밥을 차려줬으며, 여자애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제임스의 이상한 행동을 원인과 결과로 본다면 제임스에게는 절대 잘못이 없었다. 누군가 제임스의 방문 손잡이를 힘주어 돌렸고, 크고 작은 부품들이 긴밀히 연결되어 빗장 풀리듯 행동으로 나온 것뿐이었다.

버스는 복잡한 시내를 지나고 있었다. 나는 제임스를 쳐다봤다. 본드에서 깨어나는지 제임스는 머리를 부여잡고 인상을 쓰고 있었다. 나는 지를 쳐다봤다. 지는 나를 외면한 채 창밖만 바라보았다. 민은 여전히 울리지 않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우리는 한동안 침묵한 채 낯선 길을 가고 있었다.

버스가 골목으로 접어들더니 차고지에 닿았다. 기사 아저씨가 종점이라며 우리에게 내리라고 했다. 우리는 낯선 곳에 발을 디뎠다. 낯섦은 몸을 긴장시킨다. 제임스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벽 쪽으로 달려가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 허연 위액까지 다 쏟아내고서야 제임스는 안정을 찾았다.

“여기가 차이나타운이야?”

휴지를 꺼내 제임스의 입가를 닦아주는 나에게 민이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나는 제임스를 일으켜 세우고 민과 지에게 따라오라고 했다. 일단 골목을 벗어나자. 큰길로 나가 사람들에게 물어보자. 미로 같은 주택가 골목을 이리저리 걷다가 큰길로 나왔다. 큰길로 나오자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바람에 짠내가 배어 있었다. 잠깐, 내가 왜 기를 쓰고 차이나타운에 가야 하지? 어차피 애들도 차이나타운이 어딘지 모르는데. 나는 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내 뒤를 애들이 쫓아왔다. 어디든 내가 차이나타운이라고 하면 거기가 차이나타운이었다.

“너 그 변태한테 연락했어? 오늘 하자고?”

뒤에서 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 고민 중이야.”

“야, 그러지 말고 그냥 해. 돈이 얼마야. 일대일로 하는 대신에 두 번 해주겠다고 해. 그리고 돈을 더 받으면 되잖아. 그리고 오빠에게 위치 추적되는 휴대폰 사주면 되잖아.”

민은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힐끗 뒤를 돌아봤다. 민은 휴대폰을 쳐다보며 걷고 있었다. 지가 팔꿈치로 민의 어깨를 툭 건드렸다. 그래도 민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지는 약간 짜증 섞인 표정으로 민을 노려봤다. 민은 고민에 빠졌는지 무의식적으로 걷기만 했다.

“바다다!”

제임스가 소리치더니 뛰기 시작했다. 길 끝에는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지하철 종점을 지나 버스 종점을 거쳐 도착한 길 끝에는 바다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나와 민, 지도 바다를 향해 뛰었다. 바다에는 갈매기들이 어지럽게 불규칙적으로 날고 있었고, 사람들이 과자를 던져주고 있었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상쾌했다. 바다로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놓은 난간에 우리 넷은 최대한 상체를 기울이고 바다 냄새를 맡았다. 멀리서 뱃고동 소리가 들렸다. 모두 바다를 처음 보는 사람처럼 웃기만 했다. 나는 과자를 사오겠다며 주변 편의점을 찾았다. 민도 화장실을 가야 한다며 나섰다.

민의 표정이 밝아져 있었다. 한껏 숨을 들이켜고, 내뱉고를 반복했다. 민에게 차이나타운이 어딘지 모른다고 솔직하게 말할까 하다가 민의 얼굴을 보고는 나중에 얘기하기로 했다. 민의 깡마른 몸이 바닷바람 속을 걷고 있었다. 우리는 문신이 있는 굵은 팔뚝이 백반을 먹고 있는 ‘항구식당’을 지났고, 팔딱거리는 횟감이 수족관에서 헤엄치고 있는 ‘싱싱횟집’을 지났다. 주차장에 차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는 ‘전망 모텔’ 앞을 지났고, 술 취한 젊은 남녀들이 조개탄에 조개를 구워 먹는 ‘벌려라 조개야’ 조개구잇집을 지났다.

민은 바다에 눈을 떼지 않고 걸었다. 민은 두 팔을 벌려 몰아치는 바람을 안았고, 두 팔을 벌린 채 제자리에서 몇 바퀴를 돌며 바닷바람에 자신을 씻어냈다. 그러고는 기지개를 켜듯 두 팔을 머리 위로 높이 들어올렸다. 한동안 민은 그 자세, 그대로 있었다. 깡마른 몸이 세찬 바람에 날려갈 것도 같은데 민은 땅에 뿌리를 내린 것처럼 단단하게 서 있었다.

식당과 모텔, 카페가 늘어서 있는 길 끝에 편의점이 있었다. 나는 민에게 손짓을 했다. 민은 가볍게 뛰어왔다. 그러고는 내게 툭 던지듯 말했다.

“난 우리 오빠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민은 싱긋 웃어 보이더니 건물 화장실로 들어갔다. 나는 편의점에서 소주 몇 병과 과자, 담배를 샀다. 점원이 나를 힐끗 쳐다보더니 이내 물건을 검은 봉지에 담았다. 돌아오는 길은 바람이 뒤에서 불었다. 가만히 있어도 바람에 의해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민은 여전히 기분이 좋았다. 가끔 ‘아’ 하는 감탄사도 내뱉었다.

제임스는 그대로 난간에 기댄 채 바다를 보고 있었다. 지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전화를 하고 있었다. 나는 제임스에게 소주를 넘기고, 민에게 과자를 줬다. 제임스는 소주병을 따고 한 모금 들이켰다. 민은 과자를 갈매기에게 던졌다. 나는 제임스에게 건네받은 소주를 한 모금 마시고, 지에게 다가갔다.


애초에 녀석들도 인천에 없었을지 모른다. 어디든 내가 그곳이라고 하면 거기가 그곳이 되는 것이다. 학교도, 집도, 우주의 원리도, 가족도 어디에든 있고, 어디에도 없다. 담임이 찾아오라는 녀석들은 바다 위에 갇혀, 고립된 섬으로 두둥실 떠다니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 바다를 보고 있었다.


“이년이 안 하려는 거 내가 살살 꼬드겼어. 할 거야. 근데 스마트폰 신형 팔면 얼마나 받지? 그래, 오빠 걱정 마. 아직 오빠 차이나타운에 있는 걸로 알고 있어. 얘는 오빠한테 푹 빠졌다니까. 오빠 설마 딴년이랑 있는 거 아니지? 알아, 알아. 나도 오빠 사랑해. 좆나 오빠랑 하고 싶다. 크크크. 이따가 민이 변태하고 일 끝나면 갈게. 그리고 변태 말고 딴 호구 없어? 잘 찾아봐. 이년이 변태 싫대. 어디 돈 많고 그럴싸한 놈 구해봐. 내가 오늘 민이 사진 몇 장 더 찍을 게. 어디라고? 알았어. 깨끗이 씻고 기다리고 있어요. 하하하.”

나는 뒤를 돌아봤다. 민이 서 있었다. 굳은 표정으로 민은 내 손에서 소주병을 낚아챘다. 민은 휙 돌더니 제임스 옆에 서서 소주병을 나발 불었다. 통화가 끝났는지 지가 나를 툭 치고는 민이 옆으로 갔다.

“야, 그만 마셔. 이따가 안 할 거야? 술 냄새 나면 어떻게 해.”

병째 나발을 불고 있는 민에게 지가 걱정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민은 어느새 반병을 후딱 비우고는 손으로 입가를 훔쳤다.

“씨발, 너 같으면 맨정신으로 그 새끼랑 할 수 있겠냐?”

지는 민의 표정을 살피며 과자를 건네주었다. 나는 제임스 옆에 섰다. 새로 소주병을 따고는 벌컥 들이켰다. 제임스도 내가 건넨 소주병을 들고 몇 모금 마셨다. 나는 담임에게 보고할 식당을 고르고 있었다. 아까 본 식당 중에 어느 식당이 좋을지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민이 과자를 한 줌 움켜쥐더니 하늘을 향해 뿌렸다. 주위를 맴돌던 갈매기들이 순식간에 달려들어 공중에서 과자를 낚아챘다.

애초에 녀석들도 인천에 없었을지 모른다. 어디든 내가 그곳이라고 하면 거기가 그곳이 되는 것이다. 학교도, 집도, 우주의 원리도, 가족도 어디에든 있고, 어디에도 없다. 담임이 찾아오라는 녀석들은 ‘전망 모텔’에서 기거하다가 ‘벌려라 조개야’에서 조개를 만나, ‘싱싱횟집’에서 횟감이 되어, ‘항구식당’에서 출항하는 배를 타고 멀리 바다로 나갔다. 바다 위에 갇혀, 고립된 섬으로 두둥실 떠다니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 바다를 보고 있었다. 매섭지만 시원하게 불어오는 청량한 바람을 맞으며 가끔 고동 소리에 귀기울이며 서 있었다. 지는 민을, 민은 잡히지 않는 바람을 보고 있었다.

“오렌지다. 완전 샛노랗게 잘 익은 오렌지네.”

제임스가 바다 너머로 지는 해를 보며 말했다.

“오렌지 싫어. 너무 시거든.”

내가 무덤덤하게 말했다.

“그런데 개중에는 단 것도 있어. 마치 꿈꾸는 맛처럼….”

민이 말했다. 민은 잠시 달콤한 오렌지를 떠올리듯 노을을 바라보다 변태에게 문자메시지를 쓰기 시작했다. 민이 ‘전송’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내가 민의 손을 잡았다. 민의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민은 나를 쳐다보지 않았고, 반쯤 가라앉은 노을을 보지 않았다. 민은 애써 눈물을 참으려 하지 않았고, 울려고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열고 싶었던 세상의 문고리를 살짝 돌렸다. 내가 잡은 민의 손에서 민트 향이 확 밀려왔다.

우리 넷은 샛노랗게 익은 오렌지가 자신을 태우며 붉게 사라지는 모습 뒤에서 배경처럼 서 있었다. 황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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