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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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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길, 오래된 미래

등록 2011-07-27 15:46 수정 2020-05-03 04:26

루쉰이던가. 길의 역사에서 희망을 읽어낸 이가. “생각해보니 희망이란 본시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는 거였다. 이는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시 땅 위엔 길이 없다. 다니는 사람이 많다 보면 거기가 곧 길이 되는 것이다.”
길의 역사는 루쉰이 말한 그대로다. 사람들이 많이, 자주 걸으면 길이 된다. 그 길 위에 사람들의 일상을 떠받칠 경제활동이 번성하고, 문화가 꽃핀다. 인적이 끊기면, 경제도 문화도 사그라지고, 길은 가뭇없이 사라진다. 사막에 꽃피었다가 모래바람 속에 묻혀버린 실크로드의 역사가 그랬다. 길의 역사는 사람의 역사이다.
한국은 이미 자동차 도로가 차고 넘친다. 그런데도 도로 확장·신설 공사는 끊이지 않는다. 언젠가 자동차 도로가 산천을 뒤덮을까봐 지레 겁이 난다. 자동차 도로는 근대의 표상이다. 도시와 도시를, 도시와 농촌을 빠르게 연결한다. 자동차 도로의 운명은, 말 그대로 속도전이다. 속도전에 치여 생명을 잃는 것도 많다. 이웃마을이 고속도로로 단절되고, 마을을 잇던 산길과 오솔길, 고샅은 퇴화한다. 사람의 왕래가 끊기면, 그 길을 탯줄로 삼은 경제와 문화도 사라진다.
그런데 도시화율이 83%에 이르는 한국에서 사람들이 오래도록 잊고 지내던 옛길을 일부러 찾아 걷기 시작했다. 지리산 둘레길, 제주 올레가 도시인들을 그저 걷기 위해 걷게 만든 마중물이다. 둘레길은 도법 스님 등 생명·평화를 소중히 여기는 이들과 지역민이 합심해 지리산 자락 산골마을을 잇던 옛길을 복원한 것이고, 올레는 ‘산티아고로 가는 길’에서 영감을 얻은 서명숙씨가 지역민들과 함께 제주 해안가를 중심으로 역시 옛길을 되살린 것이다. 올레는 ‘집 대문에서 마을길까지 이어지는 좁은 골목’을 뜻하는 제주말이다. 각각 한 해 수십만 명이 그 길을 걷는다. 지리산 둘레길과 제주 올레가 사람들 사이에 폭발적인 반향을 일으키자, 중앙정부와 지자체들이 ‘걷는 길 되살리기’에 경쟁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강원도 바우길, 소백산 자락길, 울진 금강소나무숲길(옛 십이령길)…. 근대·성장·물질·풍요 따위에 떠밀려 버려진 산천의 수많은 옛길이 되살아나려 하고 있다. ‘빨리빨리’를 모토로 삼아 먹고사는 문제에 목숨을 걸어온 현대 한국의 돌진적 압축 성장사를 고려할 때, 벼락같은 변화다. 산천의 옛길이 살아나면 그 길 위에 경제와 문화도 다시 꽃필 것이다.
“오매 징한 거, 이리 더운데 뭣 땀시 쌩짜로 걷는다냐? 물 한 사발 마시고 가소.” 산골 할머니는 땡볕에 배낭 메고 산길을 꾸역꾸역 걷는 도시 사람들이 요상스럽기만 하지만, 반가운 속내를 숨기려 하지도 않는다. 할머니는 사람이 그립다.
도시 사람들은 왜 버려진 옛길을 다시 걷기 시작한 것일까. 누군 한 해 600만 명이 찾는다는 ‘산티아고로 가는 길’을 거론하고, 누군 정화와 치유를 얘기한다. 도시의 본성인 경쟁에 치여 잊고 지내던 ‘나’를 찾는 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건 뭔가를 얻거나 채우는 과정이 아니다. 오래 걸어본 자는 안다. 육신의 피로와 함께 ‘생각’도 저만치 사라진다는 것을. 소설가 김별아씨가 백두대간 등정에 나선 지 4시간 만에 깨달았다지 않은가. “등산은 생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지우는 것이라는 사실! 산행에서 뭔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으리라는 기대는 무지에서 비롯한 착각에 불과했다는 것!”(·에코의서재) 김씨의 ‘산행’을 ‘걷기’로 바꿔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생각’을 지운 자리에 몸과 자연을 향한 섬세한 감각이 되살아난다.
잊혀졌던 옛길 걷기는, ‘비움의 미학’에 자신을 던지는 일이다. 도시엔 사람도 물건도 너무 많다. 인심만 빼고. 시골엔 없는 게 너무 많다. 노인만 빼고. 도시와 농촌의 관계는 주인과 노예의 관계만큼이나 식민적이다. 옛길을 걷는 도시인들이 비운 마음 자리에 무엇을 다시 채울지는 각자의 몫이다. 길의 역사에서 희망을 읽어낸 루쉰의 글 제목은 ‘고향’이다.
한겨레21 편집장 이제훈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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