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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뽀로로의 입국을 허하라

등록 2011-06-29 11:18 수정 2020-05-03 04:26

‘뽀통령’은 미국 여행을 금지당할까? ‘뽀통령’은 한국산 애니메이션 (이하 )의 메인 캐릭터인 뽀로로의 별칭이다. 어린이들의 대통령이라 불릴 정도로 인기가 높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런데 세계 110여 개국에 수출된 의 미국 수출길이 막힐 위기에 놓였다. 미국 재무부가 6월20일 발표한 ‘대통령 행정명령 13570 시행령’이 북한산 완제품뿐만 아니라 북한의 부품·서비스·기술 등이 들어간 제품의 미국 수입을 금지한 탓이다. 는 시즌1·2 104편 가운데 18편의 밑그림 작업에 북한 삼천리총회사가 참여했다. 올 연말 시즌4를 방영할 예정인 의 시리즈 전편은 아니라도, 이 18편은 미국 정부의 별도 승인을 얻지 못하면 미국 수출이 불가능할 수 있다는 뜻이다.
북한산 제품에 대한 미국의 수입 금지 조처는 한국전쟁 직후부터 지속돼왔다. 남북 경제협력에 의한 제품도 이 올가미를 피하기는 쉽지 않다. 익숙한 불편함으로 치부할 일이 아니다. 경협을 통한 남북의 화해협력과 통일 노력을 한국의 유일한 동맹국인 미국이 가로막는 이 기막힌 현실은 진지한 고민의 대상이 돼야 한다.
지난 4월18일 발표된 미국 대통령 행정명령 13570은 대북 제재 조처뿐만 아니라 한-미 관계와 남북관계에도 파장을 일으킬 내용을 담고 있다. 개성공단이 표적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지난 3월31일 하원 외교위원회 소위 청문회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통과되면 개성공단에서 만든 북한산 제품이 미국에 무관세로 수입되는 것 아니냐’는 의원들의 질의에, “북한에서 생산된 제품을 수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국에 분명히 했다”고 답했다. 개성공단 제품도 미국의 금수 대상에 들어간다는 얘기다.
하지만 캠벨의 이런 언급은 한-미 양국 정부가 합의·서명한 FTA 내용과 어긋난다. 양국 정부의 합의문을 보면, 개성공단 제품에 대한 특혜관세 부여 여부는, 협정 발효 1주년 기념일에 첫 회의를 열 ‘한반도 역외가공지역 위원회’에서 결정하게 돼 있다(협정 부속서 22-나). “한반도 비핵화를 향한 진전, 남북한 관계에 끼치는 영향, 환경·노동 기준 및 관행 등”이 결정 기준이다.
협정이 발효되지도 않았는데 미국 쪽이 선수를 친 데에는 복잡한 국내 정치가 작용하고 있다. 노동계의 영향력이 강한 민주당 의원들은 ‘노예노동을 강요하고 있다’며, 공화당 의원들은 ‘김정일의 외화 확보 창구’라며 개성공단을 문제 삼고 있다. 이유는 다르지만 ‘개성공단 제품의 미국 수입 금지’라는 결론은 같다. 오바마 행정부의 새 행정명령은 이 문제가 미 의회의 한-미 FTA 비준을 무산시킬 ‘딜브레이커’(Deal Breaker·협상 결렬 요인)가 될 위험을 회피하려는 사전 조처인 셈이다.
실제 개성공단의 북쪽 노동자들은 노조를 결성할 수 없고, 국제기준에 비춰 저임금을 받고 있다. 그러나 북한 당국이 ‘가족당 1명만 취업 가능’이라는 제한규정을 만들었을 정도로 북녘 인민들 사이엔 인기가 높은 일터이기도 하다. 첫발을 뗀 남북 경협의 역설이다.
문제는 한국 정부의 태도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4월29일 국회 남북관계발전특위에서, 캠벨 차관보의 발언과 관련한 야당 의원의 ‘개성공단 제품은 북한산인가 한국산인가’라는 질문에 “제품을 쓰는 수입국이 판단할 문제”라고 답했다.
개성공단이 어떤 곳인가. 천안함·연평도 사태의 와중에도 꿋꿋하게 버틴, 평화와 통일의 한반도를 열어갈 씨앗이다. 참여정부가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유럽자유무역연합(EFTA)·싱가포르 등과의 FTA 협상 때 기를 쓰고 개성공단 제품에 대한 특혜관세 부여를 명시한 까닭이다. 헌법은 “통일 지향”(4조)을 강조하고 있고, 여야 합의로 제정한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은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을 통한 남북 경제공동체 건설 노력”과 “남북 경제협력을 활성화하고 이를 위한 제도적 기반을 구축”(7조)해야 할 정부의 책무를 명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정부는 당연히 개성공단 제품이 미국의 금수 대상이 되지 않도록 할 책무가 있다. 미국이 개성공단 제품을 수입 금지한다면, 국회는 이 문제 때문에라도 한-미 FTA 비준을 거부해야 할 의무가 있다. 정부와 국회엔 동맹을 앞세워 헌법 정신을 저버릴 권리가 없다. 개성공단은 한-미 FTA의 ‘딜브레이커’가 될 자격이 충분하다.
한겨레21 편집장 이제훈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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