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포유류는 본능적으로 주변 환경과 조화로운 균형을 만들려고 애쓰는데, 유독 당신네 인간은 그렇지 않아. 당신네 인간은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자연자원이 고갈될 때까지 번식을 해나가지. 인간이란 지구의 암적인 존재야. 전염병이라고….”
영화 에서 스미스 요원이 모피어스에게 한 말이다. 그가 지적한 ‘인간 문제’란, 사회과학의 오랜 고민거리인 ‘공유지의 비극’(Tragedy of the Commons)을 가리킨다. 공유 목초지를 천년만년 이용하려면 방목을 절제해야 하는데, 각자가 자신의 이익만 추구해서 결국 목초지가 황폐해지고 만다는 슬픈 이야기 말이다. 오랜만의 동창모임에서 밥값을 n분의 1로 나눠내기로 한다. 그러자 경쟁적으로 비싼 음식을 시킨다. 결국 모두 밥값을 예상보다 많이 내게 되고 그 뒤론 동창모임에 발길을 끊게 된다. 이 허무 개그에도 ‘공유지의 비극’이 깔려 있다.
많은 학자들이 ‘과학’의 이름으로 스미스 요원의 견해에 동의한다.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 게임이 대표적이다. 범죄 혐의가 있는 두 친구가 붙잡힌다. 경찰은 둘을 따로 불러 어른다. ‘너만 자백하면 무죄 석방, 둘 다 자백하면 10년형, 다른 친구만 자백하면 너는 무기징역’이라고. 일관된 혐의 부인이 둘 모두에게 최선(둘 다 무죄 석방)이지만 그 길을 갈 수 없다. 양심 때문이 아니다. 친구를 100% 신뢰하지 못한다. 각자에게 최선은 자백이다. 자백만이 친구보다 손해보지 않을 유일한 길이다. 개별자의 이익이 공동 이익을 압도한다.
이런 이야기가 시사하는 바는 명백하다. ‘협력은 불가능하다, 경쟁만이 자연법칙이다.’ 합리적 이익 추구자로서의 경제인(Homo Economicus) 모델이나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이런 인간 이해에 바탕을 두고 있다. 경쟁원리는 불가피하게 ‘능력’ 위주로 사회를 재구성하며 ‘낙오자 배제와 승자독식’의 무한경쟁을 강제한다. 그 극단이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다. 여기서 홉스식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은 철의 법칙이다.
협력은 정녕 불가능한가? 아니다. 인류 생존의 원동력은 경쟁이 아닌 협력이라고 강조하는 이론과 역사적 사례 역시 풍부하다. 로버트 액설로드는 ‘팃포탯’(Tit for Tat) 전략을 적용해 ‘이타적 인간’을 전제하지 않아도 협력이 가능함을 증명했다. 이 전략은 ① 협조로 게임을 시작하며 ② 게임이 반복되면 상대방의 이전 전략을 그대로(협조엔 협조로, 배신엔 배신으로) 따르는 단순한 규칙에 토대를 두고 있다. 액설로드는 체스대회와 유사한 ‘컴퓨터 죄인의 딜레마 대회’를 열었고, 경제학·심리학·사회학·정치학·수학 등 다양한 분야의 게임 전문가들이 고도로 복잡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참여했는데, 팃포탯 전략이 1등을 차지했다. 이기적 행동보다는 팃포탯의 ‘신사적 협력-절제된 응징/관용’의 결합이 더 나은 생존 전략이라는 것이다.
‘선물경제’의 흔적을 보존하고 있는 수렵·채취 부족의 삶은 협력의 중요성을 새삼 강조한다. 이들은 대체로 사냥감을 누가 잡든 온 마을 사람들이 골고루 나눠먹는다. 왜 그럴까? 호크스 등의 연구에 따르면, 현존 수렵·채취 부족 가운데 가장 뛰어난 사냥꾼이라는 탄자니아 하드자 부족 전사들조차 사냥 성공률이 3%에 불과하다. 내 것만 챙기다간 굶어죽기 맞춤하다. 현대인들이 보험을 드는 심정과 다를 바 없는 이런 행동 양태를 적잖은 인류학자는 ‘강요된 공유’로 해석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삶의 조건은 수렵·채취 부족과 얼마나 다를 수 있나?
사실 사람들은 일상에서 경쟁과 협력을 모두 경험한다. 한쪽에만 전적으로 의존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런데도 경쟁에 목을 맨다. 왜? 누군가 ‘내 몫’을 배려하리라 안심할 수 없으므로…. 상호 신뢰 없이 협력은 지속될 수 없다. 협력하지 않으면 경쟁에 내몰린다. 신뢰의 길을 여는 소통과 공감, 연대가 절실한 까닭이다.
한겨레21 편집장 이제훈 nomad@hani.co.kr
*참고 문헌: (최정규 지음·뿌리와 이파리 펴냄), (로버트 액샐로드 지음·시스테마 펴냄), (P. A. 크로포토킨 지음·르네상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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