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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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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아기가 입술을 튕기면 비가 온다?

등록 2010-04-14 13:48 수정 2020-05-03 04:26
아이와 엄마. 한겨레 자료

아이와 엄마. 한겨레 자료

저는 이제 돌을 지난 아기를 기르는 엄마랍니다. 그런데 아기가 입술을 튕기며 침을 튀기면 어른들은 비가 오려나 보다고 얘기합니다. 저는 그냥 하는 얘긴가 했는데 정말로 투레질을 하고 나면 그날 혹은 며칠 내로 비가 오더라고요. 혹 아기들은 습도가 높은 것을 인지하는 능력이 있는지 아니면 그냥 그런 건지 알려주세요. 이건 돌 지나면 없어지더라고요. 신기, 신기~ 알려주세요~^^(아이사랑)

→ 몇 차례 말씀드렸지만 전 미혼남입니다. 어린아이가 입술을 튕기며 침을 튀기면 비가 온다는 말이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자세 바로잡고 추적해보겠습니다.

두 입술을 부르르 떨며 침을 내뱉거나 튀기는 행위를 우리말로 ‘투레질’이라고 합니다. 질문은 좀 간단해졌습니다. 유아의 투레질 뒤 비가 오나, 입니다.

일단 적잖은 주변인이 비슷한 속설을 들었다고 합니다. 저만 과문해 듣도 보도 못한 속담입니다. 조카만 넷인데 누구도 “삼촌, 나 투레질할 거니까 비 오는지 봐줘”라고 얘기하지 않고 자라버렸습니다. 어머니는 저의 투레질에 대해, 누이들은 조카의 투레질에 대해 들려준 바 없습니다.

결국 인터넷을 뒤졌습니다. 지난 3월9일치 한 주부의 블로그 글이 검색됩니다. “오늘은 00이 태어난 지 77일째 되는 날. 요즘 며칠째 우중충한 날씨가 계속되는데 이런 날에 아가들은 투레질을 한다. 먹은 것을 잘 올리고 뒤척이고 불편해한다”는 내용입니다.

실체가 좀 잡힙니다. 환경에 민감한 유아가 우중충한 날씨에 내보이는 반응일 수 있습니다. 우중충한 날씨는 저기압과 관련됩니다. 실제 기상청의 김승배 통보관은 “인체가 성숙하지 않은 아이들이 기압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일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왜 민감한 반응이 방귀나 물구나무서기는 아니냐는 의문이 남습니다. 저기압일 때 폭탄주를 말아먹는 일부 기자처럼, 분유에 모유를 섞어 마시고 싶을 수도 있을 텐데 말이죠. 농담입니다.

위 주부의 글에 댓글이 있었습니다. “갓난아기는 아직 호흡기가 공기 밀도에 잘 적응하지 못해 예민한 상태라고 합니다. 비가 오려면 저기압이 되어 산소량이 줄어들게 됩니다 그래서 투레질을 하며 심호흡을 해 모자라는 산소를 많이 흡수한다는 것입니다.” 산소가 부족해 한숨을 내쉬면서 침을 내뱉는다는 설명도 검색됩니다. 둘 다 한 동작으로 이어지는 듯합니다. 취재 참 쉽습니다. 전문의가 ‘오케이’만 하면 됩니다.

서울 하정훈소아과의 하정훈 원장에게 문의했습니다. “20년 넘게 소아과를 운영하는데, 투레질하는 아이들을 매일매일 셀 수도 없이 본다”며 “과학적 근거가 떨어진다”고 말합니다. (아뿔싸!) 하 원장은 도시 대기에서 기압차에 따른 산소 농도차는 미세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고지대 아이들이 투레질을 하느냐고 반문합니다. 만일 맑은 날 아이를 데리고 높은 산에 갔더니 투레질을 했다면 타당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그 역시 “어머니로부터 투레질에 관한 얘기를 들었다”며 “아이들은 원래 침이 많아 흘려 내보내는 것”이라고 정리합니다. 기사 마감할 시간이 됐다고 했습니다. 하 원장은 “환경이 달라지면 손가락을 빨거나 입술을 무는데 스트레스 때문이고, 그런 연관은 있을 수 있다”고 여지를 남깁니다. 그래서 이렇게 마감하겠습니다. 날씨에 특히 민감해 스트레스를 받는 아이가, 하필 투레질을 할 수도 있겠습니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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