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에서는 보통 재벌 2세인 남자 주인공과 가난한 집에서 자란 여자 주인공이 사랑을 합니다. 이때 남주인공의 어머니가 이 둘의 사랑을 방해하죠. 어느 날 남주인공의 어머니는 아들 몰래 여주인공(혹은 여주인공 어머니)을 불러내 헤어지라며 흰 봉투를 건넵니다. 도대체 그 봉투엔 돈이 얼마나 들었기에 재벌집 사모님은 수준을 운운하며 뻔뻔스러운 이야기를 할까요?(대구 사는 독자 장철규)
→ 난이도 별 셋 반 정도 되는 4차원 질문이네요. 질문지를 넘겨준 구아무개씨에게 얼마면 그 봉투를 받겠느냐고 물었습니다. “100만원?” 그는 현재 애인이 없습니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새색시에게도 물었습니다. “5억원.” 근거는 서울에서 아파트나 오피스텔 정도는 살 만큼의 액수, 사랑을 버리고 혼자 살게 되더라도 구질구질 돌아보지 않을 액수가 그만큼일 것 같답니다. 상상하는 봉투의 두께는 그렇게 사람마다 다릅니다.
재벌집 사모님이 내미는 봉투 장면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합니다. 에선 박정수가 김아중에게 고주원과 헤어지라며 돈봉투를 내밉니다. 그러곤 말하죠. “우리 아들 꼬여서 고치려고 한 네 팔자, 이 돈이면 고치고도 남을 거다.” 비슷한 대사로는 “섭섭지 않을 거다” “니 평생 먹고살 수 있는 돈이다” “이 돈으로 팔자 고치고 우리 아이 앞에 다시 나타나지 마라” 등의 막말이 있습니다.
팔자를 고치고도 남는다는 이 돈은 얼마일까요? 시청자는 궁금한데 여주인공은 절대 봉투에 손도 되지 않습니다. 간혹 속 김정은처럼 “액수가 작네요”라며 호기롭게 물리기도 합니다. 드라마의 클리셰 부분을 패러디해 보여주는 tvN 에서는 이 장면을 새롭게 해석합니다. 여주인공은 사모님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봉투의 액수를 확인합니다. 3천만원이 들었네요. 코믹극이기에 여자는 돈을 챙깁니다.
을 쓴 강은정 작가는 “액수는 상관없고, 확인해볼 필요도 없는 봉투”라고 답합니다. 사랑을 돈으로 계산하는 졸렬한 방법이니까요. 작가들이 대본에 봉투 장면을 쓸 때도 그 액수를 고민하지 않는답니다. 당연히 카메라도 봉투의 두께를 자세히 비추지 않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압니다. 봉투에 든 건 사랑을 저울에 달아도 될 만큼 큰 액수일 거라고요.
강 작가는 “봉투의 액수보다, 돈 주는 사람보다 돈 받는 사람의 태도가 중요하다”고 합니다. 어차피 돈봉투를 주는 사람은 사랑의 방해꾼이고, 악인입니다. 중요한 건 여주인공이 돈을 받느냐 안 받느냐, 사모님의 행동에 어떻게 대처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앞으로 봉투보다 여주인공의 태도를 유심히 보세요.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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