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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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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왜 여자들은 큰 지갑을 들고 다니죠?

등록 2009-08-20 10:31 수정 2020-05-03 04:25
왜 여자들은 큰 지갑을 들고 다니죠? 사진 한겨레 자료

왜 여자들은 큰 지갑을 들고 다니죠? 사진 한겨레 자료

왜 여자들은 큰 지갑만 가지고 다닐까요? 고등학교 시절 이후로 주머니에 지갑을 넣고 다니는 여자는 못 봤습니다. 그리고 지갑을 주로 작은 가방 등 도둑맞기 쉬운 장소에 보관하더라고요. 그 때문인지 체육시간에 지갑 도둑맞는 학생은 항상 여자였습니다. 여기에 무슨 심리적인 이유라도 있는지요.(유점희)

→ 무작위로 40대 남녀 두 명을 뽑아서 지갑을 조사했습니다. 두 남녀의 지갑은 조사자가 줍거나 훔친 것이 아니며, 지갑 내용도 조사자가 직접 열어 조사한 것이 아니라 연구 대상이 알려준 것임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직장 경력 18년차인 남자 H씨(46)의 지갑을 열어보았습니다. 현금카드(신용카드는 부인에게 압수당함), 명함, 주민등록증, 아파트 카드열쇠, 현금 7~8만원, 이상한 술집 명함 등이 있습니다. “동전은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더니 “주머니에 넣는다”고 했습니다. “불편하지 않느냐”고 했더니 “많이 넣을 때는 그렇겠지요”라고 답했습니다. 많이 넣었던 기억이 별로 없으며, 그 불편의 강도 또한 남의 일인 양(“그렇겠지요”) 크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주부 18년차인 경기 고양시의 주부 K씨(44)는 지갑에 통장 2개(은행에 통장정리하러 가려고), 만원짜리 현금 40장(놀러 가려고 많이 찾음), 500원짜리 6개, 1백원짜리 3개, 50원짜리 2개, 10원짜리 3개, 홍콩달러 등 외국돈, 카드 명세서 7장(일주일마다 정리), 영화카드, 통신회사카드, 각종 포인트카드(건강, 이동통신, 등산복업체, 스포츠용품, 서점, 쇼핑몰, 음식점), 학원비 결제용 카드, 증권사 카드, 아이 사진 3장, 명함 3장이 들어 있습니다. 주부 K씨는 “보통 때는 잘 안 쓰는 카드까지 왜 지갑에 넣었느냐”는 질문에 “언제 무엇을 쓸지 모르기 때문에 다 넣어둔다”고 말했습니다. “비상연락망 연락처는 왜 코팅해 다니느냐”고 물었더니 “누가 물어보면 대답해줘야지”라고 답했습니다.

부부끼리는 남성이 여성에게 소비를 전담하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성은 벌고 여성은 씁니다. 남성의 소비 행태는 아주 단순합니다. 반면 여성은 의식주 구매와 각종 공과금 처리를 다 하고 지갑은 가계부가 됩니다. 최근 소비 패턴별로 만들어지는 포인트 카드·적립카드 때문에 지갑은 더 부풀어오릅니다. 신세계 홍보실의 홍종순 과장은 이마트 포인트카드 발급의 남녀 비율이 6(여) 대 4(남)라고 합니다. 홍 과장은 “주부들이 남편 명의로 카드를 발급받는 예가 많다는 점을 고려할 때 여성의 카드 발급 비율은 더 높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남성은 홀가분하게 나다니는 반면에 여성은 가방을 들어야 합니다. (여성 옷의 주머니는 지갑이 들어가기에 적당하지 않습니다. 아주 작거나 장식용인 경우가 많습니다.) 여성의 정장 차림에서 클러치백은 패션의 완성입니다. 임옥희 편집장은 “남성은 맨손으로 세상에 대해 언제나 공격할 수 있는 모습이라면, 여성은 뭔가를 들어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모습으로 보이게 한다. 이런 상태에서는 공격이나 도망이 용이하지 않다”고 합니다. “오랜 세월 여성의 경제적인 동기와 생존전략이 밈(meme·문화적 유전자)으로 자리잡은 사례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여성은 지갑 외에도 여러 가지 물건을 많이 들고 다닙니다. “왜 여자들은 대일밴드를 가지고 다니느냐” 하는 것은 남성이 갖는 대표적인 의아함이지요. 임 편집장은 “360도를 돌았을 때 한 점 얼룩이 없도록 자신을 꾸미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스타킹 올 나간 것을 막는 매니큐어나, 구두에 뒷꿈치가 까질 때를 대비해 들고 다니는 대일밴드 등이 그 비상용품이 됩니다. 물론 음식을 먹다 번진 립스틱, 땀에 지워진 파운데이션도 언제나 복구할 수 있도록 비상체제를 갖추지요. 최근 젊은 남성이 화장을 하고 스타일리시하게 꾸미는 일이 많아졌는데, 이와 함께 젊은 남성을 위한 작은 백이 등장했습니다. 금성과 화성만큼 떨어졌던 남성과 여성이 점점 가까워지는 것일까요.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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