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평화를 위한 폭력은 없다

등록 2025-06-26 22:46 수정 2025-06-30 10:34
2025년 6월22일(현지 시각) 이란 테헤란의 엥헬랍 광장에서 열린 미국의 이란 공격에 항의하는 집회에서 한 이란 여성이 국기를 들어 보이고 있다. AFP 연합뉴스

2025년 6월22일(현지 시각) 이란 테헤란의 엥헬랍 광장에서 열린 미국의 이란 공격에 항의하는 집회에서 한 이란 여성이 국기를 들어 보이고 있다. AFP 연합뉴스


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이 12일 만에 일단 멈췄다. 이스라엘 전투기가 이란을 무차별 폭격하면서 시작된 이 전쟁은 이란이 무인기(드론)와 탄도미사일로 반격하면서 불이 붙었고, 미국이 이란의 3대 핵시설을 폭격하면서 확전의 기로에 섰다. 하지만 ‘시추에이션룸’(상황실)에서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모자를 쓰고 3대 핵시설 폭격을 지휘하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틀 뒤 뜬금없이 휴전을 선언했고, 이스라엘과 이란은 이를 받아들였다. 그러고는 트럼프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이 각자 승리를 선언하는 기이한 모습을 보였다.

‘12일 전쟁’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를 말하고 있다. 우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처럼 명분은 없고 의도만 분명한 전쟁이 계속 일어난다는 점이다.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무장 해제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정작 자국이 ‘세계 9대 핵무기 보유국’이라는 점에서 이 명분은 명백히 모순이다. 대신 이스라엘이 전쟁을 일으킨 의도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점령하기 전 등 뒤에 있는 이란의 개입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것임은 자명하다. 그러니 어쩌면 이런 전쟁이 다시 발생하지 않게 하는 유일한 해법은 세계가 “팔레스타인을 독립국가로 인정하는 것”(유달승)이다.

전쟁에 승패는 없고 인민의 고통만 존재한다는 점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정치 지도자들이 ‘시추에이션룸’ 같은 곳에 앉아 비디오게임을 하듯 ‘12일 전쟁’을 원격 지시하는 사이, 이란에서는 최소 54명의 여성과 어린이가 숨졌다. 이스라엘에서도 민간인 27명이 숨졌다. 이뿐만 아니다. ‘12일 전쟁’이 멈춘 직후인 2025년 6월25일(현지시각) 이스라엘 군인들이 가자지구에서 음식을 받아 가려던 팔레스타인 주민 33명을 사살했다. 이들을 포함해 지난 628일 동안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군에 의해 숨진 주민은 5만6156명에 이른다. 전쟁이 아니라 일방적 학살이다.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가 무너지고 있다는 점도 알 수 있다.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미국은 국제질서의 패권자 노릇을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 질서는 급격하게 무너지고, 세계는 다극화 시대로 전환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이미 2023년 가자지구 침공 때부터 미국의 말을 듣지 않고 있다. 이번에도 미국과 이란의 핵협상이 진행되는 와중에 독단적으로 이란을 폭격했다. 미국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전쟁에서도 적극 개입을 주저하고 있다. 이렇게 미국이 패권자로서의 행보가 아니라 오로지 자국의 이익에만 골몰하는 사이 세계 곳곳에서는 전쟁이 속속 발생하고 있다.

무엇보다 평화와 폭력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점이 우리를 절망하게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핵시설을 폭격한 뒤 대국민 연설에서 “이란은 이제 평화를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고, 네타냐후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과 힘을 통한 평화를 자주 얘기한다”고 화답했다. 평화를 위한 폭력이라는 형용모순의 문장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이런 절망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어 정치 지도자들에 의해 전도된 가치를 다시 되돌려놓아야 한다. 한겨레21이 이번호 표지이야기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이 바로 이것이다.

 

이재훈 편집장 nang@hani.co.kr

 

*‘만리재에서’는 편집장이 쓰는 칼럼입니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