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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인신공격’ 화법, 증오 키운다

등록 2024-01-20 11:27 수정 2024-01-25 10:07
2023년 2월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건설노동자들을 건폭(건설 폭력배)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3년 2월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건설노동자들을 건폭(건설 폭력배)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건희 특검법은) 총선을 겨냥해 흠집 내기를 위한 의도로 만든 법안이다.”

이관섭 대통령비서실장이 2023년 12월23일 한국방송에 나와 한 말입니다.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 하기엔 부적절한 일방적이고 무책임한 주장입니다. 오히려 궁금증만 더 파생시킵니다. 혐의가 없다면 특별검사가 무혐의 처분을 할 텐데 왜 흠집을 낸다는 건지, 이 법안이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건 8개월 전 일인데 왜 총선까지 기다렸는지, 총선 이후 특검을 하자는 주장에 윤석열 대통령은 왜 ‘대로’했는지 등등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논리학에서 이런 식의 논증을 ‘사람에 대한 오류’라고 합니다.(<비판적 사고를 위한 논리> 김희정·박은진 지음, 아카넷 펴냄 참조) 김건희 특검법의 내용이나 김건희 여사의 혐의를 설명하는 게 아니라, ‘이 법안을 만든 사람’에게 문제가 있다고 화살을 돌리는 식입니다. 이 법안을 추진한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이 4월 총선을 앞두고 많은 의석을 차지하려는 목적이 뚜렷한 정치집단이라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사실’이 정황증거는 될 수 있을지언정, 민주당이 대통령과 여권을 흠집 내려 이 법안을 통과시켰다는 결론으로 연결되진 않습니다. 오히려 충분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기 때문에 성실한 답변도 합리적 의심도 아닌 ‘인신공격’에 가깝습니다.

한겨레21 1497호 표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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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런 식의 주장이 언제부턴가 일상화됐다는 점입니다. 2024년 1월17일 ‘동일 지역구 3선 이상 페널티 적용’ 규정이 검사 출신 공천을 위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민주당 공관위를 보면 다 이재명 대표 관련자 아닌가. 거기야말로 이 대표의 사당 공천 공관위”라고 말한 게 대표적입니다.

다양한 비판에 ‘그럼 나쁜 민주당은?’이란 식으로 논점을 바꾸고 단순화하는 식의 주장은 논리적 오류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특정인과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와 증오를 부추깁니다. 먼저 국민의힘 지지자는 ‘한 위원장 주장에 대한 비판은 곧 민주당 옹호’라는 ‘잘못된 이분법’에 빠집니다. 반대자는 성실하게 반박할 의욕을 잃습니다. 다양한 문제를 ‘윤석열·한동훈 때문에’로 단순화해버리고 싶은 강한 유혹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이런 악순환을 끊을 출구전략은 없을까요? 안광복 철학교사가 ‘논리로 키우는 논술 내공’ 연재에서 ‘의도확대의 오류에서 벗어나기’ 편(<한겨레> 2008년 1월6일치)에 쓴 마지막 두 문장을 인용해봅니다.

“분노에 치를 떨게 하는 상대에게 칼날을 겨누기 전에, 내가 왜 이토록 화가 나는지부터 먼저 따져보자. 북받치는 감정은 늘 희생양과 핑곗거리를 찾는다는 점을 명심하자.”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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