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신당 밑작업’은 정부·여당의 수도권 선거 몰락을 우려한 직언일까, 자신을 축출한 정부·여당에 대한 복수일까.
2023년 11월18일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페이스북에 ‘이준석이 가는 길에 동참해주십시오’라며 신당 창당을 위한 연락망 구축 작업을 시작했다. 12월27일까지 대통령의 변화가 없으면 신당을 창당할 것이란 이 전 대표는, 변화의 3대 조건으로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계획 철회’ ‘해병대 사망사건 특검 도입’ ‘윤석열 대통령과 이태원 유족 간 만남’을 내걸었다. ‘민생’보다 ‘철 지난 색깔론’에 매몰된 윤 정부의 사과와 변화를 요구한 것이다. 하지만 정부·여당에선 이 전 대표의 행보가 ‘정치개혁’이라기보단 ‘몸값 높이기’ 전략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김기현 국민의힘 지도부는 ‘이준석·김종인·금태섭 회동’에 맞서 중도 확장 ‘슈퍼 빅텐트론’을 꺼내든 한편,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띄우며 ‘이준석의 이슈 몰이’를 진압하고 있다.
정부·여당의 ‘한동훈 카드’는 어느 정도 먹혔다. 한 장관의 배우자 사진이 공개된 데 이어 한 장관이 대구·대전·울산을 방문해 ‘인기 있는 장관’ 이미지를 연출하자 이준석이 중심이 된 정치 뉴스의 중심축은 한 장관 쪽으로 옮겨졌다. 이 과정에서 둘 사이 묘한 라이벌 구도가 형성됐다. 이 전 대표가 윤석열 정부의 이념 정치에 반기를 들며 ‘중도 확장성’ 이미지를 구축했다면, 한 장관은 윤 대통령과 겹치는 보수 지지세를 이어받되 그보단 ‘젊은 강남 우파’ 이미지로 피력하고 있다.
한 장관에 대한 이 전 대표의 태도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태도와는 확연히 다르다. 윤 대통령에 대해선 ‘신뢰가 이미 깨졌다’고 선을 긋는데, 한 장관에 대해선 “언젠가 경쟁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11월19일), “당에 개혁적 방향으로 메시지를 보태주면 동지가 되는 날도 올 수 있다”(20일)고 했다. 다만 22일 제이티비시(JTBC) 인터뷰에선 “한동훈은 윤석열 키즈고 나는 박근혜 키즈지만 이를 넘어섰다. 한 장관도 윤석열 키즈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 장관이 개혁적 방향으로 가면 동지가 될 수 있지만, 그 가능성은 많지 않다. 정치 입문이 윤 대통령 때문인데 바로 관점 차이를 드러내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전 대표의 측근인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한 발짝 더 나아가 확연한 연대를 이야기한다. 그는 21일 에스비에스(SBS) 라디오에서 “한동훈·이준석 연대 이게 우리 당의 필승카드”라며 “한동훈·이준석을 대체재라고 보는 분들도 있던데 제가 볼 때 보완재다. 이준석 대표는 2030 남성들 지지가 강하고, 한동훈은 2030 여성과 기존 전통적인 보수한테 지지가 있기 때문에 시너지만 잘 이룬다면, 한동훈·이준석 연대가 (성사)되면 총선에서 이길 수 있다”고 했다.
이런 기류에 대해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12월27일까지 시간을 주면서 ‘한 장관과 동지가 될 수도 경쟁할 수도 있다’ 이런 얘기가 나온 걸 보면, 한동훈·원희룡 이런 사람들이 (당의) 새로운 리더십으로 들어온다면 같이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다”고 분석했다. 박 대표는 이 전 대표의 신당 창당 가능성에 대해 “대통령의 변화, 당 지도체제 변화와 연동돼 있어 지금으로선 뭐라 말할 수 없다”면서도 “이 전 대표가 바라는 건 명예회복인데, 그 명예회복이란 결국 자신을 괴롭힌 윤핵관의 힘이 약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당 상황이) 대통령 권력도 약해지는 것 같고 윤핵관 권력도 약해지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시각도 있다. 이 전 대표가 윤 대통령에게 요구하는 ‘국민을 향한 사과’ ‘국정 기조 변화’가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전 대표의 입지나 운신 폭이 이미 좁아졌다는 분석이다. 정치평론가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은 “대통령이 변한다는 건 우리 정치사를 돌아봐도 쉽지 않다”며 “일단 대통령이 변했을 때 정치적 유불리를 따져보면 실이 될지 득이 될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런 상황에서 궁극적으로 당이 꾀할 수 있는 변화는 영남 중진의 불출마일 텐데, 국민의힘에서 영남 중진 불출마가 추진되면 이 전 대표가 무색해질 수 있다. 운신 폭이 좁아지는 딜레마가 시작된다. 신당 창당은 첫째는 이 전 대표의 의지, 둘째는 국민의힘과 새로운 정치세력이 결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지면 현실화된다고 봐야 하는데, (이 전 대표의 발언을 보면 ) 스스로 아직 준비가 안 된 것 같다 ”고 평가했다 .
여론은 ‘이준석 신당’의 가능성을 어떻게 볼까. 데일리안이 여론조사 전문기관 ‘여론조사공정’에 의뢰해 (11월13~14일, 전국 남녀 유권자 1001명 대상) ‘이준석 전 대표가 신당을 창당한다면, 내년 4월 총선에서 어느 정당 후보에게 투표하시겠습니까’라고 설문한 결과 16.2%가 ‘이준석 신당에 투표하겠다’고 답했다. 35.8%가 더불어민주당에, 35.4%가 국민의힘에 투표하겠다고 했다. 특히 ‘이준석 신당’이 창당될 경우 민주당 지지율은 변화가 거의 없는 반면, 국민의힘 지지율은 6.4%포인트 감소(41.8%→35.4%)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와이티엔(YTN)이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11월19∼20일, 전국 남녀 유권자 1천명 대상)에서도 ‘이 전 대표, 유승민 전 의원,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신당을 창당할 경우 지지할 것이냐’는 질문에 응답자 24%가 ‘그렇다’, 69%는 ‘지지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지지 응답자의 지역은 호남 38%, 대구·경북 31%였다.
‘이준석 신당’이 파괴력이 있을지, 청년·중도보수 성향 유권자의 국민의힘 이탈을 불러와 ‘보수 분열’을 만들어낼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윤 대통령 지지율이 30%대 중반에 고착화될 정도로 저조한 현 상황,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참패한 상황에선 국민의힘도 이런 여론조사를 의식할 수밖에 없다.
앞서 언급한 YTN 여론조사는 한동훈 장관이 여당 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물었다. 전체 응답자의 42%는 ‘도움이 될 거다’, 41%는 ‘도움이 안 될 거다’라고 말해 팽팽한 양상을 보였다. 특히 국민의힘 지지층은 74%가 ‘도움될 것’이라고 본 반면, 민주당 지지층은 64%가 ‘도움이 안 될 것’이라고 봤다.
아직은 정부·여당 주류도, 이준석 전 대표도 ‘결별’에 대해 공개적이고 명확한 시사를 하지 않았다. 이에 정치권 안팎에선 ‘국민의힘 간판 교체설’부터 ‘금태섭, 양향자, 민주당 비명계까지 포함한 빅텐트’ 등 각종 시나리오가 쏟아진다. 적어도 이 전 대표가 기한을 내건 12월 말까지는 모든 게 불투명한 상황이다.
하지만 유권자가 궁금해하고, 정작 알아야 할 것은 ‘그래서 민생과 관련한 어떤 혁신이 진행되고 있는가’이다 . 쏟아지는 경마식 정치 뉴스는 결국 총선을 앞둔 ‘권력의 합종연횡’에 대한 이야기다. 국민의힘은 ‘혁신’이란 이름의 변화를 추진하지만 민생과는 거리가 멀다. 인요한 당 혁신위원회는 ‘원내지도부, 중진, 친윤 인사의 불출마 혹은 험지 출마’ ‘모든 지역구 전략공천 원천 배제’ 등을 요구했지만, 이 역시 정치인들의 ‘권력 배분’에 대한 이야기일 뿐 ‘유권자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심지어 이마저도 장제원 의원의 반발, 김기현 대표의 ‘급발진’ 언급으로 의미가 퇴색됐다.
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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