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효과’를 절감 중이다. 한 친구가 말했다. “나는 요새 술 좋아하고 말 많은 직장 상사가 멀쩡해 보여. 무능하지는 않거든.” 다른 친구가 말했다. “나는 남편이 예뻐 보여. 무능하지만 남 탓 하지는 않거든.” 또 다른 친구가 말했다. “나는 내가 훌륭해 보여. 무능하고 남 탓 하지만 거짓말은 안 하거든.”
점점 인질이 돼가는 기분이다. 어쩌지 못하니까 그냥 받아들여버린달까. 괜찮다고 믿어버린달까.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가 안전하다는 주장을 들으면서, 취임 1주년 자화자찬은 안 한다더니 자료집 내고 온라인 사이트 열기 바쁜 대통령을 보면서, 세상 시끄럽건 말건 언제 어디서나 나만 돋보이면 그만인 여사님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체인지 싱킹’이 되는 것 같다. 이러다가 ‘어그레시브하게’ 대통령 부부가 좋아져버리는 건 아닐까. 미쳤나봐.
윤석열 이름에 이재명이나 더불어민주당을 넣어도 ‘그 효과’는 크게 다르지 않다. 어쩌면 이 순간에도 가상자산 거래를 하고 있을지 모르는 김남국을 넣어도 된다. 아무리 욕하면서 닮는다지만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됐을까.
전문 업자 수준을 넘어 중독에 가까운 가상자산 거래가 들통난 뒤 김남국 의원이 한 언행 중 가장 어이없는 두 가지가 있다. 검찰이 “이 정권의 실정을 덮으려고” 자기를 노렸다는 주장과, 다른 언론매체들은 제쳐두고 기어이 김어준의 유튜브 방송에만 두 차례 나와 그런 주장을 한 사실이다.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에게만 통할 얘기를 그들만 듣는 매체에 하는 건 신앙활동이지 정치활동이 아니다. 이 정권의 실정은 김남국의 가상자산 파동 따위로 덮이지 않는다. 그러기에는 너무 중차대하다. 검찰은 찍어내고 흘리고 꿰맞추고 몰아붙이는 데 이골이 난 집단이지만, 아예 없는 죄를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그는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편이 나았다.
많은 이가 검찰권력에 대한 입법통제 과정에서 보여준 민주당의 시행착오를 ‘못남’으로 치부했다. 실수하고 잘 못해도 취지는 이해했으니까. 하지만 명백한 자신의 잘못까지 “한동훈 검찰의 작품”이라고 눙치려는 궤변을 접하니, 기가 막힌다. 일부 민주당 인사는 그런 궤변을 옹호까지 한다. 이는 못난 게 아니라 나쁜 거다. 못난 건 참고 기다리거나 따끔하게 야단치며 품을 수 있지만 나쁜 건 어찌할 수가 없다.
범민주당 지지자 중 상당수는 조국 사태와 박원순 사태를 ‘겪어내’면서 어지간한 자극에는 상처 입지 않는 굳은살이 생겼다고 여겨왔지만 이번 일에는 마냥 우스꽝스럽고 허탈해졌다고 토로한다. 이런 복잡다단한 마음마저도 민주당은 참 쉽고 밋밋하게 대하는 것 같다.
김남국 의원을 국회 윤리위원회에 제소하기까지 내내 떠밀리듯 온 과정은 단지 우왕좌왕이 아니었다. 윤리와 책임의 실종이었다. 이재명 대표가 본인의 사법 리스크에 갇혔기 때문만일까. ‘강성 코인’에 올라타 현실 바로 보기를 게을리한 때문만일까. 그게 그의 정치적 실력과 리더십의 실체는 아닐까. 송영길 전 대표가 연루된 전당대회 ‘돈봉투’ 파동 때도 이 대표는 난처한 질문 앞에서 국민의힘 관련자들의 비위를 환기하며 화제를 돌렸다. 순발력과 감각을 보여줬다고 여길지 모르겠으나 ‘급이 안 맞는 일’을 갖다 붙이는 얄팍한 면피로 보였다. 위기 상황에서 지도자의 능력이 드러난다. 결국 사실은 스스로 말한다. 감춰지지도 꾸며지지도 않는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지만 썩은 가지 하나 제대로 도려내지 못하는 이에게 숲은커녕 나무조차 맡길 사람은 없다.
김소희 칼럼니스트*김소희의 정치의 품격: ‘격조 높은’ 정치·정치인 관찰 칼럼입니다.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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