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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은 TMT 같습니다 [만리재에서]

등록 2023-05-05 07:10 수정 2023-05-10 03:54
2022년 8월10일 윤석열대통령이 수해로 옹벽이 무너진 서울 동작구 극동아파트 피해현장을 살펴보면서 이야기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2022년 8월10일 윤석열대통령이 수해로 옹벽이 무너진 서울 동작구 극동아파트 피해현장을 살펴보면서 이야기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대통령은 TMT인 것 같습니다. ‘투 머치 토커’입니다. 재밌는 이야기도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말이 많아서 안 할 말도 섞입니다. 2021년 6월29일 대선 도전을 천명하고, 국민의힘 경선을 거쳐, 2022년 5월10일 대통령이 되기까지 과정을 요약하자면 ‘대통령의 입을 막는 역사’였습니다.

한 보수언론 논설위원은 열흘 만에 대변인을 그만두고 선거캠프를 나온 소감을 “(후보가) 1시간이면 혼자서 59분을 얘기한다”로 남겼습니다. “별의 순간을 잡으라”며 프러포즈했던 김종인 전 의원은 ‘실언’으로 지지율이 빠진다며 단속에 돌입하기도 했습니다. 취임 뒤 활발하게 기자들과의 접촉면을 넓혔던 도어스테핑(출근길 약식회견)도 입길에 오르는 일이 많자 하지 않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도어스테핑은 2022년 9월 ‘바이든/ 날리면’ 사태에 즈음해 중단됐습니다. 사태는 듣도 보도 못한(그러니까 초유의) 일이었습니다. 2배 재생, 저속 재생으로 온갖 곳에서 듣기 열풍이 일었습니다. ‘말리믄’이라는 제3의 제안에, ××가 아니라 △△이라는 발언, 미국 욕이 안 되면 다른 쪽은 그런 욕 들어도 되나 등등. 그런데 대통령은 무섭게 대응했습니다. “우리 국가안보의 핵심축인 동맹관계를 사실과 다른 가짜뉴스로 이간질하려고 아주 악의적인 행태를 보였기 때문”이라며 아시아 순방 대통령 전용기 탑승 에 MBC 기자를 배제했고, 이후 외교부는 정정보도청구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말 때문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빼고 있습니다. 뺏기고 있습니다.

당선자 시절, 접촉면이 줄어들면서 정치적 입장 역시 뾰족해졌습니다. 2022년 노동절에 ‘근로자’와 ‘노동자’ 표현을 뒤섞어 썼던 윤 대통령은, 2022년 12월 ‘화물연대 파업’을 “북핵 위협”에 비유해 말했습니다. 당선자 신분으로는 제주4·3 희생자 추념식에 갔지만, 대통령으로 맞은 2023년 4월3일 추념식에는 가지 않았습니다. 대신 4월2일 대구 야구장에서 시구했고, 4월1일 경선 후보와 당선자 신분으로 여러 번 방문한 대구 서문시장을 방문했습니다. 대통령이 많이 간 곳이 서문시장이라면, 많이 만난 사람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입니다. 2022년 6월 보름 동안 다섯 번을 만난 대통령과 회장님은, 2023년에도 만남을 이어갔습니다. 4월4일 만나고 2023년 한-미 정상회담에도 동행했습니다.

잘 듣는 사람만 만나고, 좋은 소리 해주는 언론만 보고, 호의적인 여론만 듣고, 찬양하는 댓글만 봅니다. 최근 한-미 정상회담 성과에 칭찬이 별로 없는 상황. 윤 대통령이 이른바 ‘남초’ 게시판에서 밈으로 난무하는 전 대통령의 ‘혼밥’ 이야기를 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대통령의 농담이 ‘게시판 출신’이라면 정말 실망스러울 것 같습니다. 농담도 아니라서 더 난감합니다.

자신이 말을 많이 하는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긴말을 참아주는 사람에게만 말하기 때문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말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주위에선 잘 안 하는 듯합니다.

구둘래 편집장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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