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분에 웃었다. 쌀 초과 생산분에 대한 정부의 의무 매입 방안을 담은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다음날, 조수진 국민의힘 최고위원이 그 대안으로 “밥 한 공기 다 비우기를 논의했다”고 밝혔다. 한국방송(K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케이비에스에만 처음 얘기드리는 것”이라고 운을 떼면서 말이다. 마침 밥을 먹으며 귀를 세우던 나는 씹던 밥알을 뿜을 뻔했다.
조수진 의원은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체제의 첫 특별위원회인 민생119 위원장이다. 가뭄 대책으로 섬에 생수 보내기 대국민 운동을 펼치겠다고 하더니 물가 상승을 살피겠다며 편의점 도시락 먹기 행사를 벌여, 안 그래도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 터였다. 그에 앞서 국민의힘 지도부는 일하는 청년들과 교감하겠다며 평일 오후 4시에 치맥 회동을 했고, 청년층 지원을 약속하며 대학 구내식당을 우르르 찾아 1천원 아침밥을 먹기도 했다. 국민의 ‘기본권’을 못 지켜줄 바에는 ‘기분권’이라도 지켜주려는 걸까. 하다 하다 안 되니까 웃겨주려고 작정한 사람들 같다.
정책을 내놓지 못하면 연구라도 할 것이지 왜 이런 설익은 캠페인을 늘어놓는 것일까. 원래부터 이런 사람들은 아니었을 텐데…. 정치적 ‘짬’도 적지 않은 이들이 대체 왜 이럴까. 4·3 추념식에 참석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미리 작정한 사람처럼 황급히 언론을 피하는 모습을 볼 때도 마음이 안 좋았다. 제주 출신에 제주도지사까지 지낸 이가 이 귀한 자리에서 입을 굳게 다물었다.
국민이 아닌 ‘단 한 분’의 심기만 살피다보니 빚어진 일이라고밖에 달리 해석이 안 된다. 그 한 분이 유난히 자기 객관화는 안 되면서 주관은 뚜렷하니 당과 정이 덩달아 무리하는 것이다. 공부도 그렇지만 공무도, 정치도 ‘자기 주도’를 해야 실력이 늘고 성과도 낼 게 아닌가.
여당의 수석 대변인은 방송에 나와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일본 후쿠시마 항의 방문을 ‘안새박새’라는 표현을 써가며 비난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 샌다는 말인데, 이 말을 듣자마자 국민의 상당수는 최근 일본에서 ‘오므라이스 해드시고’ 온 대통령의 망신살을 다시금 떠올린다. 민주당 공격에 앞장서고 싶었던 모양이나 그조차 상황 봐가며 해야지, 이거야말로 ‘내부 총질’을 한 격이다. 양곡관리법에 대해서도 국민의힘은 대책 없이 ‘대야 투쟁’뿐이다. 집권여당으로서 합리적인 방안을 찾기는커녕 국회의장의 중재안도 내팽개친 채 대통령의 거부권만 ‘올려치기’ 바쁘다. 큰 수매 창고가 다 호남 지역에 있어 민주당이 이 법안을 밀어붙였다는 식으로, 하다 하다 쌀로도 갈라치기했다.
제아무리 폼 잡고 시구하고, 시장통에서 떼로 동원됐을 지지자에게 둘러싸여도 순간의 즐거움일 뿐이다. 일을 못해 떨어진 지지율을 눈앞의 박수갈채라는 ‘뽕’으로 극복할 순 없다. 이러거나 저러거나 바뀌지 않을 30%의 지지층만 보고 간다 해도, 그조차 콘크리트가 아니다. 대구·경북 민심이라고 다를까. 그들은 윤석열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일극체제에 민감한 정서대로 이긴 자를 지지하는 것뿐이다. 그 약발도 시간이 갈수록 옅어진다.
지금 집권세력이 처한 상황은, 온라인에 떠도는 ‘숫자 9 시리즈’(좋아하는 운동은 야9, 도시는 대9, 주당 노동시간은 육십9, 일본에는 호9…)를 빌리자면 한마디로 ‘에999’다. 과거 왕조시대에는 백성이 위정자를 두려워해도 문제였지만 우스워하면 진짜 망조가 들었다. 윤석열 정권은 지금 어떤 모습일까.
김소희 칼럼니스트*김소희의 정치의 품격: ‘격조 높은’ 정치·정치인 관찰 칼럼입니다.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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