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와중에도 윤석열 대통령이 잘한다고 여기는 ‘찐 지지자’가 있다. 여론조사기관마다 차이는 있지만 지지하는 이유로 가장 많이 꼽는 것은 “모름/무응답”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뒤 대선에서 홍준표 후보가 받은 24%의 ‘짜디짠 지지율’과 수치는 비슷해도 성분이 다르다. 홍준표를 지지한 이들은 저마다 이유가 있었다. ‘보수의 궤멸을 막고자’부터 ‘왠지 끌려서’까지 범위도 넓었다. 지금 윤 대통령에 대한 ‘묻지 마 지지’는 ‘매몰비용 셈법’에 가까워 보인다. 이미 뽑았는데 어쩌나 하는, 맹목과 불안, 집착이 뒤섞였달까.
유승민 전 의원(사진)도 ‘묻지 마 지지’를 받고 있다. 내용은 완전 반대다. 해준 게 없으니 잇속을 차릴 건 없고, ‘기대’나 ‘우정’에 가까워 보인다. 한 친구는 윤 대통령에게 고맙다고 했다. 유승민의 존재를 일깨워준 덕이란다. 특히 청력이 멀쩡한 보수주의자가 얼마나 귀한지 새삼 알게 됐다고 했다. 보수 후보를 지지해본 적 없는 한 지인은 당장 오늘 대통령선거를 하면 유승민이 될 거라며, 진영을 뛰어넘는 ‘하이브리드 지지’를 장담했다. 안보관이나 경제정책에 이견이 있더라도 적어도 토론할 수는 있지 않겠냐며, 모든 논의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지도자의 허물이 지긋지긋하다고 했다. 다른 지인은 이대로라면 이 나라나 자신이나 멀쩡하지 못할 것 같단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급체했고, 윤석열 정권에 ‘피처링’(다른 가수의 음반 작업에 노래나 연주로 참여하기)한 홍준표와 원희룡도 소화불량 상태 같단다. 그럼 더불어민주당은? 말하는 제 속이 다 쓰리고 신물이 넘어온다고 했다.
그분도 대통령이 처음이라지만 국민도 이런 대통령은 처음이다. 다섯 달밖에 안 된 분이 마치 다섯 달 남은 듯한 ‘국정 동력’을 보인다. 여야는 가치나 이념이 아니라 감정으로 깊게 골이 패었다. 협치는커녕 협상도 어려워 보인다. 이 꼴 저 꼴 다 보기 싫은 이들이 유승민을 떠올린다. 유승민은 여기에 ‘호응’할 수 있을까.
일단 ‘반응’은 했다. ‘이 색이 날리면’ 국면에서 “막말보다 더 나쁜 게 거짓말이다” “국민을 개돼지 취급 말라”고 외쳤다. 앞으로 할 일은 하고 할 말도 하겠다고 했다. 경기도지사 후보 경선 패배 뒤 줄곧 몸을 사리고, 불과 며칠 전 예정된 생방송 출연도 석연치 않은 이유로 접은 이답지 않았다. 대통령의 언행과 처신을 더는 참을 수 없어서일까. 본인을 향한 우호적인 여론을 확인해서일까. 당장 당권 주자들은 앞다퉈 유승민을 견제했다. 대권을 노리는 홍준표 대구시장은 더 거칠었다. 내부 분탕질, 탄핵 전야, 개혁 분칠 등 표현을 쓰더니 급기야 “틈만 있으면 비집고 올라와 연탄가스 정치를 한다”고 폭언했다.
홍준표가 유승민을 때린다면 유승민은 홍준표를 따라 하면 좋겠다. 내용이 아닌 형식 말이다. 민감함과 순발력, 소통 자세는 배울 만하다. 욕도 먹을 줄 알아야 한다. 청년이 묻고 홍이 답하듯 국민이 묻고 승민이 답하면 어떤가. 특유의 결벽에 망설인다면, 그것이 바로 많은 이가 “정책과 자질은 유승민이 최고인데…” 하면서도 뒷말을 흐리는 이유라는 점을 알았으면 한다.
소신과 고집이 한 끗 차이이듯 세력화와 패거리 짓기, 정치력과 권모술수는 그리 멀리 있는 게 아닐 수 있다. 유승민이 유승민인 이유는 그 차이를 깐깐하고 고집스레 벌려왔기 때문이지만, 지나치면 스스로 설 자리를 없앨 수 있다. 사람들과 더 섞이고 부대끼는 게 세력화의 충분조건은 아니라도 필요조건임은 분명하다. 그의 책 제목에 담긴 ‘야수의 본능’까지 꺼낼 필요 없다. ‘사람의 상식’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나. 뭘 망설이나, 유승민.
김소희 칼럼니스트
*김소희의 정치의 품격: ‘격조 높은’ 정치·정치인 관찰 칼럼입니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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