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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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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 잡아 몸통 흔들던 이재명, 꼬리 잡힐까

전방위로 조이는 검찰과 경찰의 칼날
대선과 지방선거 잇단 패배에 반성 없이 정치 탄압 내세워 ‘친명’ 중심 재편
등록 2022-09-18 22:56 수정 2022-09-19 08:58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운데)와 (왼쪽부터) 서영교·고민정·정청래·박찬대 최고위원이 2022년 9월14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에서 참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운데)와 (왼쪽부터) 서영교·고민정·정청래·박찬대 최고위원이 2022년 9월14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에서 참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의원님 출석요구서가 방금 왔습니다. 전쟁입니다.’(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22년 9월1일 보좌관에게 받은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이재명의 두 번째 ‘전쟁’이 시작됐다. 이번 전쟁의 상대도 검찰과 경찰이다.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2부와 수원지검 성남지청 형사3부는 9월8일 이재명 대표를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이 대표가 대선 후보였던 2021년 12월 에스비에스(SBS) 등 언론 인터뷰에서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수사를 받다가 숨진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을 “성남시장 재직 때는 몰랐다”고 한 발언 등을 문제 삼았다. 이어 경기남부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는 9월13일 한가위 연휴가 끝나자마자 이 대표가 경기도 성남시장 시절 두산건설의 토지 용도 변경과 관련한 청탁을 들어주는 대가로 성남시 축구팀 성남FC에 후원금을 내게 한 혐의(제3자 뇌물공여죄)를 적용해 검찰에 사건을 송치했다고 밝혔다.

(왼쪽 위 시계 방향으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14년 6월5일 성남시장 선거에서 당선이 확정된 뒤 두 손을 들고 있다. 이재명 성남시장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제공

(왼쪽 위 시계 방향으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14년 6월5일 성남시장 선거에서 당선이 확정된 뒤 두 손을 들고 있다. 이재명 성남시장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제공

민주당의 투 트랙, 정치 탄압과 민생 집중

제1야당의 대표를 향하는 검찰과 경찰의 칼날은 이뿐이 아니다.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백현동 개발 특혜 의혹 △변호사비 대납 및 쌍방울그룹 관련 의혹 △부인 김혜경씨 경기도 법인카드 유용 의혹 등 6개 이상의 사건을 들여다보고 있다. 특히 검찰은 호반그룹을 압수수색하는 등 이 대표의 성남시장 재임 시절 위례신도시 개발사업에 대한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변호사비 대납 의혹은 이 대표가 2018년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으로 재판받을 때 변호인들에게 쌍방울그룹의 전환사채(CB) 등으로 거액의 수임료를 대납했다는 내용이다. 검찰이 이 대표의 경기도지사 재임 시절 부지사였던 이화영 전 의원 쪽으로 흘러간 쌍방울의 자금 지원 흐름을 집중 수사하는 것도 새로운 ‘뇌관’이 될 가능성이 크다. 벌금 100만원 이상의 형만 나와도 의원직은 날아간다. 민주당은 대선 때 받은 국고지원금 434억원을 반환해야 할 위기에 처한다.

이 대표는 일찍부터 검찰의 칼날을 예견하고 갑옷을 준비해두긴 했다. 그는 2022년 1월 대선 유세 중 “혹시 잘못한 게 있나 가혹하게 먼지를 털어도 (없는 죄를) 만들지는 않았는데 이번에는 제가 (대선을) 지면, 없는 죄 만들어서 감옥 갈 것 같다”고 말한 바 있다. 지지자들의 결집을 호소한 말이기도 하지만 본심이 드러났다는 분석도 많았다. 3월 대선에서 패한 이 대표는 휴지기 없이 곧바로 6월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뛰어들어 민주당 강세 지역에서 당선됐다. 국회의원이 되면 국회 회기 중에는 ‘불체포 특권’을 갖는다. 이어 대선과 지방선거 패배 책임론에도 아랑곳없이 8월 전당대회에 뛰어들어 당대표를 거머쥐었다. 그 과정에서 민주당은 당대표 등이 기소될 경우 당직을 정지했던 기존 당헌을 수정하는 등 ‘이재명 사당화’ 논란이 불거지는 걸 무릅써야 했다.

민주당은 ‘투 트랙’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재명 대표는 국민의힘 공세에서 비켜날 수 있게 민생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윤석열정권정치탄압대책위원회’를 별도로 만들었다. 이 대표는 “검찰의 억지 기소에는 늘 그래왔듯 사필귀정을, 국민과 사법부를 믿으며, 국민의 충직한 일꾼으로서 민생에 주력하겠다”고 했다. 민주당은 9월7일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각종 의혹에 대한 검경 수사가 미진하다는 점을 들어 ‘김건희 특검법’을 발의하고 여당과 강대강으로 부딪쳤다.

문재인 정부에서 법무부 장관을 지낸 박범계 윤석열정권정치탄압대책위원장은 경찰이 1년 전 수사결과를 뒤집고 제3자 뇌물공여죄 혐의로 이 대표 사건을 검찰에 송치한 것은 정치적인 수사라고 주장한다. 성남시가 두산건설의 정자동 땅을 병원용지에서 상업용지로 바꿔준 뒤 두산이 성남FC에 낸 후원금 50억원은 지역 축구팀에 광고비를 정당하게 집행한 것이라는 논리다. 두산 땅 가운데 10%를 기부채납 받은 것과 함께 축구팀 광고비를 지원받으며 시의 예산을 아꼈다는 것이다. 박 위원장은 “제3자 뇌물공여 혐의가 되려면 부정한 청탁과 그 부정한 청탁에 대한 대가가 있어야 한다. 성남FC가 광고비를 받아서 성남시가 축구팀에 지원해야 할 예산이 줄어들면 이건 성남시의 공적인 이익이 되는 것”이라고 설명하며 ‘부정한 청탁과 대가’는 없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대표가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처장을 모른다고 한 허위사실 공표 혐의에 대해선 “(당시에) 기억을 못해 그렇게 말했을 뿐이지 허위사실을 말한 것은 아니다”라고 양부남 민주당 법률위원장은 주장했다. 검찰이 어떻게든 이 대표를 옭아매려 한다는 인식이다. 안호영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검찰 기소 뒤 “대통령 후보에 대한 공직선거법 위반 기소는 처음일 것이다. 군사정권보다 더한 검사 정권의 정치탄압”이라고 했다.

이재명 대표가 2018년 6월3일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당선이 확실시되자 소감을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표가 2018년 6월3일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당선이 확실시되자 소감을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표니까 일치단결해 헤쳐나가자”

민주당이 이 대표에 대한 수사를 ‘정치 탄압’으로 정의하면서 ‘친명’(친이재명) 인사를 중심으로 당은 재편되고 있다. 9월5일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는 ‘이재명의 민주당’을 보여준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의총에선 검찰의 이재명 대표 출석요구를 거부할 것을 권고하고, 김건희 여사 사건 수사와 견줘 소환 통보의 부당함을 강조하기 위해 ‘김건희 특검법’을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나왔다. 의총에 불참한 조응천 의원만이 “(이 대표의 검찰) 출석 여부를 의총을 열어 논의하는 것 자체가 불편했다. 앞으로 소환 요구가 올 때마다 의총을 열 것인가”라고 다른 목소리를 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어쨌거나 현재는 야당 대표니까 (내부적으로) 일치단결해서 헤쳐나가야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민주당이 2022년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에서 잇따라 패배한 뒤 최근 내놓은 보고서(‘이기는 민주당은 어떻게 가능한가’)를 보면, 이 대표가 진두지휘한 선거운동에 대한 직접적 평가는 단 한 문장도 담겨 있지 않았다. 이 보고서는 우상호 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학자 등 외부 위원을 중심으로 구성한 ‘새로고침위원회’가 작성했는데, 선거 패배 원인을 미시적으로 분석하기보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평가와 당이 향후 나아가야 할 비전을 제시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민주당이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패배한 뒤 내놓은 평가보고서가 결국 당을 쪼갰다는 역사적 경험이 남아 있지만 현재 당권을 잡은 지도부를 향한 날카로운 반성의 목소리는 남기지 않은 셈이다. 이 대표가 인천 계양을 보궐선거에 출마하면서 6·1 지방선거 구도를 ‘대선 연장전’으로 만들었고, 이 때문에 선거에서 패배했다는 책임론도 잠잠해진 지 오래다.

민주당 내부에서 쓴소리가 사라진 사이 이 대표는 핵심 측근 그룹인 ‘7인회’ 소속 의원 가운데 4명(김병욱·문진석·임종성·김남국)에게 주요 당직을 맡겼다. 또한 변호사 시절부터 측근이었던 정진상 전 경기도 정책실장을 당대표 정무조정실장에 앉히면서 친정 체제를 확실히 다지고 있다.

‘이재명’이 가장 많이 검색된 날

이재명 대표의 정치 인생을 돌아보면 ‘싸움’을 통해 돌파구를 찾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민주당 내 변변한 지지기반도 없던 그는 성남시에서 여당과 청와대 등 기득권에 싸움을 거는 방식으로 정치인 체급을 올렸다. 검찰과의 싸움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끊임없이 대중에게 알리며 인지도를 올렸다. 기초단체장일 때 받았던 검찰 수사가 역설적으로 그를 전국구 정치인으로 성장시키는 데 한몫했다.

포털 네이버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이재명’을 많이 검색했는지 알려주는 트렌드 검색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트렌드 검색 결과를 집계하기 시작한 2016년 이후 ‘이재명’이 가장 많이 검색된 날짜를 찾아보면, 그가 대선에 출마하거나 패배한 날이 아니었다. 2018년 7월22일 성남지역 조폭 변론과 관련해 의혹을 제기한 방송 보도가 나온 날이었다.

당시 이 대표는 2018년 경기도지사에 당선된 뒤 검찰과 첫 번째 전쟁을 치르는 중이었다. 검찰은 이 대표와 부인 김혜경씨와 관련해 7가지 의혹에 대한 수사를 벌였다. △친형(고 이재선씨) 정신병원 강제입원 △대장동 개발 업적 과장 △과거 검사 사칭 관련 허위사실 공표 △배우 김아무개씨와의 스캔들 의혹 부인(명예훼손 등) △조직폭력배 연루설 △일베(일간베스트 저장소) 활동 의혹 △트위터 ‘혜경궁 김씨’ 의혹(공직선거법 위반 등) 등이다.

검찰은 이 가운데 △‘친형 강제입원 시도’ (직권남용) 등 3건을 기소했다. 이 대표는 2019년 5월16일 1심에선 무죄를 받았지만 2019년 9월5일 2심에선 일부 유죄(벌금 300만원)가 인정돼 정치생명이 끝날 위험에 처하기도 했다. 대법원은 2020년 7월16일 친형 강제입원과 관련해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을 공표한 혐의에 대해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7가지 의혹을 사실상 해소한 것이었다. 이 대표는 자신의 발목을 잡고 있던 ‘첫 번째 사법 리스크’를 떼어내자 바로 민주당의 유력한 대선주자로 떠올랐다.

이 대표는 당시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제가 정치를 시작한 이래 제기된 온갖 근거 없는 의혹과 음해들이 정리되는 것이다. 그동안 영혼까지 탈탈 털렸다”면서 홀가분함을 드러냈다.

‘두 번째 전쟁’의 결과는 아직 알 수 없다. 검찰의 기소, 법원의 판단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당장은 이 대표가 ‘대선 패배 책임론’에서 벗어나 ‘정치 탄압을 받는 야당 지도자’로 이미지를 바꾸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에게 지속적으로 단독회담을 요청하는 것도, 윤 대통령과 마주할 수 있는 지도자는 자신뿐임을 확인시켜주기 위함이다. 이 대표는 9월14일 “정부도 정쟁, 야당 탄압, 정적 제거에 국가 역량을 소모하지 마시고, 국민의 삶을 개선하는 민생, 한반도 평화 정책, 대한민국 경제산업 발전에 더 주력해주길 당부드린다”고 말한 뒤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찾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했다.

이재명 대표가 2022년 3월10일 대통령선거에서 패배한 뒤 서울 여의도동 민주당 당사를 떠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이재명 대표가 2022년 3월10일 대통령선거에서 패배한 뒤 서울 여의도동 민주당 당사를 떠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비주류에서 가능했던 ‘꼬리잡기’

이재명 대표는 2014년 <오직 민주주의, 꼬리를 잡아 몸통을 흔들다>(리북)라는 제목의 책을 냈다. ‘꼬리를 잡아 몸통을 흔든다’는 문구는 이 대표의 정치철학이자 싸움 기술로 알려져 있다. 일사불란하게 꼬리를 잡아 흔든 기술은 그를 대선 후보까지 발돋움시켰다. 몸통은 기득권이었고 보수 진영이었다. 그러나 이는 그가 비주류일 때 가능한 전법이었다. 그는 이제 국회 과반수를 차지하는 거대 야당의 대표다.

민주당의 또 다른 관계자는 “우리가 윤석열 대통령 주변에 ‘예스맨’밖에 없다고 비판한 것처럼 우리 역시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이유로 ‘예스맨’들로 주요 당직을 채운 게 아닌지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명 대표 체제로 바뀐 뒤 민주당 내부에서 통합과 포용의 리더십은 보이지 않고 이른바 전시체제만 강조된다는 우려다. 이 대표는 기본소득 이후로는 새로운 어젠다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의 한 다선 의원은 “전당대회 뒤 컨벤션효과도 없고, 윤석열 대통령 지지도가 이렇게 떨어져도 민주당 지지도가 오르지 않고 있다”며 “당이 잘못 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지금은 지켜보지만 조금 지나면 다른 목소리가 터져나오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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