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21일 김진욱 초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은 경기도 과천시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로부터 1년이 흘렀다. 신생 수사기관으로서 한계를 고려하더라도, ‘빌 공’(空)자를 써서 ‘공(空)수처’라는 조롱까지 듣는다. 무분별한 통신자료 조회, 원칙 없는 구속영장 청구는 물론이고 이렇다 할 수사 성과를 찾기 어렵다. 공수처는 얼마큼 국민의 마음과 신뢰를 얻었나. 헌정 질서에 얼마나 뿌리내렸나. 속 시원히 답하기 어렵다.
공수처에 실어 담고자 했던 국민의 여망은 분명했다. 검찰이 캐비닛에서 마음대로 꺼내 뭉개거나 부풀리던 고위공직자 부패 범죄를 공정하게 수사한다. ‘제 식구 감싸기’로 소리 소문 없이 묻혔던 판검사의 비리도 예외가 아니다. 검찰이 독점하던 기소권을 나눠 갖고 그 존재 자체로 검찰을 견제한다. 이러한 여망을 실현하려면, 공수처는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갈구하던 1년 전의 그 ‘낮은 자세’로 돌아가야만 한다. 공수처의 지난 1년을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짚어본다._편집자주
2021년 10월 ‘대장동 개발사업 의혹’을 동시에 수사 중이던 검찰과 경찰은 엇박자를 냈다.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이 창밖으로 던진 휴대전화를 찾는 과정에서, 검찰이 찾지 못한 휴대전화를 경찰이 확보하고 검찰과 경찰이 각각 따로 영장을 신청·청구하는 등 혼선이 계속됐다. 같은 피의자가 검찰과 경찰에 번갈아 출석하기도 했다. 수사 범위에 대한 혼선이 계속되자 검찰과 경찰 양쪽 수사팀이 수차례 만나 협의하고 나서야, 대장동 수사 범위가 정리됐다. 검경이 모두 수사권을 가진 사건에서 각자 수사를 벌이면서 나타난 ‘중복 수사’의 대표적인 예였다. 검경수사권 조정에 따라 바뀐 형사소송제도가 2021년 1월부터 시행됐지만, 수사권 조정 논의 초기부터 지적됐던 ‘중복 수사’ 우려 등이 현장에서 고스란히 드러난 셈이다.
2021년 1월부터 검찰권 견제를 위해 검찰의 직접수사 기능은 최소화하고 경찰의 권한과 책임은 확대하는 수사권 조정 방안이 시행됐다. 이로써 검찰은 특정한 중대범죄에 한해서만 직접수사를 개시할 수 있게 됐다. 개정된 검찰청법의 ‘검사의 수사개시 범죄 범위에 관한 규정’에 따라 검찰 수사 대상은 △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등 6대 중요범죄 △경찰공무원이 범한 범죄 또는 이와 직접 관련성이 있는 범죄 △경찰이 송치한 사건이나 중요범죄 등으로만 한정됐다. 경찰은 직접수사를 개시할 수 있는 범죄에 제한이 없다.
바뀐 제도가 시행된 지 1년이 지났지만, 비대해진 검찰을 견제하려는 애초의 개혁 취지만큼 제도가 제대로 안착하지는 못하고 있다. 경찰청이 2022년 1월6일 공개한 2021년 사건 통계를 보면, 검찰이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한 사건 비율은 10.9%로, 기존 수사 재지휘 비율보다 6.3%포인트 증가했다. 과거와 달리 검찰은 경찰에 수사 지휘를 할 수 없고, 보완수사만 요구할 수 있다. 경찰은 보완수사 뒤 결과를 검사에게 서면으로 통보해야 하는데, 보완수사 결과 범죄 혐의가 있다고 판단되지 않는 경우 사건을 자체 종결할 수 있다. 검찰 수사권 일부를 경찰에 넘기긴 했지만, 여전히 검찰이 ‘보완수사’ 요구를 통해 수사에 많은 권한을 행사하는 셈이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검찰의 권한을 더 쪼개서 중대범죄수사청을 별도로 만들고, 고위공직자에 대한 수사는 지금처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하고,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국수본)가 경찰 수사 전체를 컨트롤하는 등 3개의 수사기구가 각각 다른 수사를 하게 해야 한다”며 “중복 수사가 문제되는 경우엔 3개 수사기구를 아우르는 국무총리 산하 조정기구를 별도로 만들어 조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반면 대검 검찰개혁위원을 지낸 김한규 변호사는 “실무에선 경찰도 검찰도 제 몫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검찰의 권력 약화에만 초점을 두느라 국민에게 어떤 도움이 될지 고려하지 않고 (검경수사권 조정) 제도가 추진됐다”며 “중요 사건은 검경합동수사본부를 설치하거나 협의체를 만들어 중복 수사를 막고, 지금처럼 수사권은 경찰이 갖되 초기에 검찰이 지휘나 통제는 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장에선 고소·고발을 제기하는 시민들과 변호사 사이에서 불편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과거 고소·고발인은 범죄 유형과 상관없이 검찰이나 경찰 중에 선택해서 고소·고발장을 제출해 수사가 개시되도록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경찰에만 고소·고발장을 제출할 수 있다. 한 변호사는 “경제사범을 고소한 사건을 맡았는데, 검찰이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했고 이후 진전이 없던 경우가 여러 번 있었다”며 “무엇을 더 보강할지, 무엇을 더 제출할지 물어봐도 알려주지 않으니 답답할 뿐 검경수사권 조정 이후, 사건처리가 훨씬 늦어진 것을 체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청이 2022년 1월6일 공개한 2021년 사건당 평균 처리 기간은 64.2일로 전년보다 8.6일 늘었다.
경찰 권력이 검찰처럼 비대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2021년 7월 도입한 자치경찰제 역시 아직 현장에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했다. 자치경찰제는 지방분권 이념에 따라 경찰 설치와 유지, 운영 책임을 지방자치단체에 맡기고 경찰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자치경찰은 국가경찰 또는 수사경찰과 달리 각 시도 자치경찰위원회 통제를 받아 지역주민과 밀접한 생활안전, 교통 등을 담당한다. 다만 국가경찰 신분은 그대로 유지된다.
그러나 2022년 1월5일 서울시 자치경찰위원회가 공개한 ‘서울형 자치경찰상 확립을 위한 여론조사’(서울시민 1천 명 조사) 결과를 보면 서울시민 10명 중 4명이 ‘자치경찰제를 전혀 모른다’고 답했다. 지역의 한 경찰 중간 간부는 “미국 연방처럼 시도별로 각각 다른 치안행정을 펼 이유가 없는데 (검찰로부터) 수사권을 가져오는 과정에서 경찰 권한을 분산하는 용도로 만든 제도”라며 “지자체별로 위원회를 유지하는 예산이 크게 나가는데 실제 민생 현장에서 바뀌는 건 별로 없다”고 말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경찰 권력의 남용을 막기 위한 대안으로 자치경찰제가 도입됐는데 지금은 자치경찰이 국가경찰의 하위 기관처럼 돼버렸다”며 “국가경찰을 견제하는 독립적인 기관이 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창익 사무국장 역시 “지금의 자치경찰제는 간판만 자치경찰이다. 자치경찰의 핵심은 시민이 경찰에 대한 통제권을 갖는 것인데, 현재는 신분이 국가경찰이고 경찰서장의 말에 복종하기 때문에 자치경찰위원회는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지금 제도가 1단계라면 실질화된 2단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 영장 업무 전담 두는 법 개정 추진경찰은 검경수사권 조정에서 한발 더 나아가, 아예 검찰을 거치지 않고 법원에 영장을 직접 청구하는 방안까지 추진했다. 2021년 12월27일, 남구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은 “수사권 조정 이후에도 여전히 검찰이 영장청구권과 기소권을 독점하는 부분은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압수수색영장이라도 경찰이 직접 법원에 신청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면기 경찰대 교수는 “경찰청 소속 경찰영장검사 신설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경찰영장검사는 경찰에 채용돼 영장 검토와 청구를 전담하는 법률가(변호사)를 말한다. 현재는 검사만 영장을 청구할 수 있도록 헌법에 규정됐는데, ‘경찰에도 영장 업무를 전담하는 검사를 둔다’는 식으로 경찰청법을 개정하자는 것이다.
이에 대해 장영수 교수는 “애초에 검경수사권 조정의 취지가 수사와 기소를 분리시킨다는 것인데 경찰이 둘 다 하겠다는 것은 이에 역행한다”고, 오창익 사무국장은 “경찰영장검사도 수사권과 기소권을 다 가졌던 검찰과 다를 것이 없는 또 다른 검사다. 견제와 균형이라는 개혁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신지민 기자 godji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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