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7일 현재 여당 경선의 허들을 넘고 본선 링에 오를 것으로 확실시되는 이재명 경기지사(더불어민주당), 그리고 정권 교체라는 보수 진영의 기대를 끌어안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국민의힘). 두 후보는 모두 ‘관리될 리스크’로 치부하기 어려운 정치적 스캔들의 복판에 서 있다.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온 시기에 다급해진 추격자가 1위 후보를 향해 네거티브 공세를 펴는 것은 일종의 통과의례다. 그러나 여야의 유력 주자가 모두 검증의 진흙탕에 빠져 서로의 얼굴에 묻은 검댕만을 가리키는 진풍경은 일찍이 선거사에 없었다. 게다가 두 스캔들 모두 폭발력이 강력하다. 불과 4년 전 부패한 대통령을 탄핵한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믿기 어려운 현실이다.
이 지사가 치적으로 알려온 성남 대장동 개발사업의 이면은 ‘대장동 게이트’라는 이름에 맞춤한 대형 개발비리로 얼룩지고 있다. 그가 대장동 개발이라는 중책을 맡긴 산하기관 간부는 구속됐다. “1원도 받은 적 없다”는 해명이 있어도 유권자들의 마음에 의구심이 일렁일 수밖에 없다.
윤 전 총장은 총선을 앞두고 벌어진 야권·검찰발 ‘고발 사주 의혹’에 연루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수사망에 올랐다. ‘검찰총장의 눈과 귀’로 불리며 총장에게 직보하는 수사정보정책관이 관여한 사실이 확인됐으니 이 또한 사건의 무게가 가볍지 않다. 대장동 게이트의 주요 등장인물이 윤 전 총장의 부친 집을 사들인 사실도 석연치 않은 대목으로 남아 있다.
3·9 대선까진 5개월의 시간이 남았다. 정치의 시공간에선 하룻밤 사이에도 역사가 새로 쓰이지만 대장동 게이트와 고발 사주 게이트, 두 스캔들의 정치적 파장은 쉬 잦아들지 않을 공산이 크다. 이 길고 실망스러울 선거전은 어디로 향할 것인가. 두 게이트의 법적·정치적 전망을 짚어봤다. 대선마다 불거지곤 했던 권력형 스캔들에서 유력 주자들이 어떻게 살아남아 마침내 권좌에 앉았는지도 돌아봤다._편집자주
어김없이 대선 때마다 유력 후보를 둘러싼 의혹이 제기됐다. 어쩔 수 없이 검·경 수사가 따라붙었다. 1992년 제14대 대선부터 반복된 일이다. 결과적으로 검·경은 매번 유력 대선 후보의 혐의를 털어주거나 수사를 유보하는 결론을 냈다.
2022년 3월9일 제20대 대선을 다섯 달 앞두고 검찰과 경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유력 대선 주자를 둘러싼 의혹 사건을 수사 중이다. 공수처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 재임 당시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이 야당(당시 미래통합당)에 범여권 인사 고발을 사주한 의혹을 수사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과 경기남부경찰청은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성남시장 시절 대장동 개발 과정에서 민간업자들에게 특혜를 준 의혹을 수사한다.
검·경과 공수처는 과연 유력 대선 후보들의 범죄 혐의를 찾아낼 수 있을까. 과거에 그 실마리가 숨어 있다. 역대 대선을 앞두고 유력 후보들에 대해 어떤 의혹이 제기됐으며, 어떤 결말로 정리됐는지를 돌아보는 이유다.
1992년 제14대 대선은 막판까지 김대중 민주당 후보와 정주영 통일국민당(국민당) 후보가 김영삼 민주자유당(민자당) 후보를 추격하는 양상이었다. 선거 보름 전인 12월4일 검·경은 현대그룹 계열사 압수수색에 나섰다. 현대그룹 창업주인 정주영 후보를 겨냥한 불법 선거운동 의혹 수사였다. 다음날 현대중공업 출납 담당 직원은 ‘현대그룹이 현대중공업을 통해 비자금을 조성해 국민당 선거 자금을 댔다’고 양심선언을 했다. 경찰은 12월14일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해 ‘현대중공업이 비자금 565억원가량을 조성했고 그중 현재까지 국민당에 유입된 것으로 확인된 액수는 2억700만원’이라고 밝혔다.
다음날인 12월15일 국민당은 ‘부산 초원복국 선거 대책회의’ 녹취록과 사진을 공개했다. 대선을 일주일 앞둔 12월11일 김기춘 전 법무부 장관과 부산 소재 기관장 7명이 부산 초원복국에서 김영삼 후보 당선을 모의했다는 내용이다. 녹취록엔 관권 개입, 지역감정 조장 발언 등이 담겼다. 현대중공업 임원과 국가안전기획부 부산지부 직원이 공모해 도청 장치로 녹음한 것이었다. 국민당은 불법 관권선거를, 민자당은 불법 도청을 문제 삼았다.
결과적으로 ‘부산 초원복국 사건’은 김영삼 후보에게 타격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김대중 후보 당선을 우려한 영남 유권자들이 결속했다. 선거 결과 김영삼 후보는 득표율 41.96%로 김대중(33.82%), 정주영(16.31%) 후보를 제치고 당선됐다. 검찰은 대선 11일 뒤인 12월29일 ‘부산 초원복국 사건’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김기춘 전 장관과 도청 관련자 등 5명을 선거법 위반과 주거침입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했다.
1997년 제15대 대선 다섯 달 전만 해도 이회창 신한국당 총재는 단연 지지율 1위였다. <한겨레>가 7월17일 실시한 국민여론조사 결과, 지지율이 이회창 42.3%, 김대중(국민회의) 32.7%, 김종필(자민련) 8.8%로 나타났다. 이회창 총재는 7월21일 신한국당 경선에서 이인제 후보를 꺾고 대선 후보로 결정됐다.
경선 이후 이회창 총재 아들의 병역 비리 의혹이 도마에 올랐다. 7월24일 국회 본회의 대정부질문에서 김동진 국방부 장관이 이 총재의 두 아들이 체중 미달로 군 면제를 받았다며 판정 당시 키와 몸무게를 공개했다. 고의 감량 의혹이 제기됐다. 이 총재 지지율은 신한국당 경선 이후 하강곡선을 그렸다.
이회창 총재에게 반전의 기회가 찾아왔다. 강삼재 신한국당 사무총장이 10월7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가 은행 지점장이던 처조카를 통해 365개 차명계좌로 670억원 비자금을 관리해왔다’고 폭로했다. 신한국당은 1992년 대선 전후 김대중 총재가 10개 기업에서 비자금 134억7천만원을 받았다고도 주장했다.
검찰은 수사에 나서지 않았다. 김태정 검찰총장은 10월21일 김대중 총재의 비자금 의혹 사건 수사를 대선 이후로 유보하겠다고 발표했다. “대선을 불과 2개월 앞둔 시점에서 극심한 국론 분열이 예상된다”는 등의 이유였다. 다음날 이회창 총재는 수사 유보에 강력히 반발하며 김영삼 대통령의 탈당을 요구했다. 당은 내분에 휩싸였다. 그사이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10월31일 ‘DJP(김대중·김종필) 후보 단일화 협상’을 타결했다.
선거 막판 ‘북풍’과 ‘병풍’이 불었다. 국가안전기획부와 검찰은 12월5일 오익제 전 천도교 교령이 월북한 뒤 김대중 총재 앞으로 보낸 편지가 발견돼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서울지방병무청 총무과 직원 이재왕씨는 12월10일 기자회견을 열어 ‘이 총재의 장남이 병역 면제 방법을 묻고 입영 순서를 늦춰달라고 부탁했다’고 폭로했다. 한나라당(11월21일 신한국당이 재창당한 정당)은 이씨를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대선 결과 김대중 후보가 40.27%를 득표해 이회창(38.74%), 이인제(19.20%) 후보를 제치고 당선됐다. 대선이 끝나고 서울지검 공안1부는 이재왕씨를 명예훼손과 통합선거법 위반(공무원의 선거 개입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대검 중수부는 김대중 당선자와 비자금 사건 관련자들을 모두 무혐의 처리했다. 검찰은 실명제 실시 전 차명계좌였고 정치자금법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 등으로 무혐의로 결론냈다.
빌라 게이트와 2차 병풍, 2002년 대선노무현 새천년민주당(민주당) 고문은 2002년 3월에야 유력 대권 주자로 떠올랐다. 3월5일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의 ‘빌라 게이트’ 의혹이 제기됐다. 민주당 설훈 의원은 “이회창 총재가 서울 종로구 가회동에 고급 빌라 두 채를 월세로 살고 있다”며 “임차료가 월 1천만원에 이르는 호화 빌라에 이 총재가 무슨 돈으로 살고 있는지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론이 나빠지자 이 총재는 “가족들이 빌라 아래위층에 살다보니 집 때문에 고생하는 많은 국민의 마음을 불편하게 해드렸다”며 유감을 표명했다.
3월9일 시작한 민주당 국민경선에서 ‘노무현 돌풍’이 불기 시작했다. 당시 이 총재의 ‘빌라 게이트’와 며느리 ‘원정 출산’ 의혹으로 국민 여론이 안 좋은 상황에서 서민 이미지인 노무현 후보에게 표가 몰렸다. 3월11~12일 대선주자 지지도 여론조사에서 이 총재가 민주당 후보에게 처음으로 뒤지는 결과가 나왔다.
5월, 또다시 이회창 총재 장남 병역 면제 비리 의혹이 터졌다. <오마이뉴스>가 5월21일 ‘군 부사관 출신 김대업씨가 1997년 대선 직전 이 총재 장남 불법 병역 면제를 은폐하려고 이 총재 측근, 병무청 간부 등과 수차례 대책회의를 열고 장남 병적기록부 등을 변조·파기했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한나라당은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다. 7월31일 김대업씨와 한나라당은 명예훼손 혐의로 서로를 고소했다. 서울지검은 10월25일 김대업씨가 주장한 ‘병역비리 은폐 대책회의’ ‘병적기록표 위변조’ 의혹 등에 대해 근거가 없다는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12월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48.91%를 득표해 이회창 후보(46.58%)를 꺾고 당선됐다.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은 2007년 대선 전초전 격이었다. 한나라당 이명박, 박근혜 후보가 전체 대선 주자 지지율 1, 2위를 달렸다. 경선 전부터 이명박 후보는 ‘도곡동 땅과 자동차 시트 납품업체 다스 실소유주’ 의혹, 박근혜 후보는 ‘최태민 일가와의 수상한 관계’ 의혹 해명을 요구받았다.
검찰은 한나라당 경선 전인 7월6일 이명박 후보의 ‘도곡동 땅과 다스 실소유주’ 의혹 사건 수사에 착수했다. 의혹의 핵심은 이 후보가 도곡동 땅과 다스 실소유주인데도 차명 관리하며 재산신고를 제대로 하지 않아 공직자윤리법을 위반했고, 다스가 190억원을 투자한 투자자문회사 비비케이(BBK)의 주가조작 사건에 공모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한나라당 경선 결과를 일주일 앞둔 8월13일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다스 실소유주 의혹에 대한 판단은 유보하면서 “이상은씨 명의의 도곡동 땅은 제3자의 것으로 보인다”고 발표했다. 이명박 후보의 차명 소유를 암시한 것이다. 검찰은 대선을 14일 앞두고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김경준 전 비비케이 대표를 특경법상 횡령,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하고 이명박 후보는 주가조작 공모 혐의 증거가 없어 불기소 처분했다고 밝혔다. 도곡동 땅과 다스, 비비케이 실소유주가 이명박 후보라고 볼 증거가 없다고도 설명했다.
대선 결과 이명박 후보는 득표율 48.67%로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26.14%)를 꺾고 당선됐다. 당시까지 역대 최다 표차였다.(531만7708표 차이) 이명박 대통령 취임 나흘 전인 2008년 2월21일, 정호영 특검은 이명박 당선자의 도곡동 땅, 다스, 비비케이 관련 의혹을 모두 무혐의 처분했다. 12년 뒤인 2020년 10월29일 뇌물수수와 횡령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명박 전 대통령은 대법원에서 징역 17년이 확정됐다. 유죄로 확정된 혐의엔 이 전 대통령이 다스의 실소유주로서 1991년부터 2007년까지 회삿돈 252억원가량을 횡령한 혐의도 포함됐다.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2012년 대선2012년 대선은 막판까지 결과를 쉽게 예측할 수 없었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와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는 선거 직전 마지막 여론조사까지 접전을 벌였다.
선거 일주일 전 막판 변수가 등장했다. ‘국가정보원 직원의 불법 선거운동’ 의혹이 불거졌다. 민주통합당은 12월11일 “국정원 직원이 서울 역삼동의 한 오피스텔에서 불법 선거운동을 펼치고 있다”며 국정원의 불법 대선 개입 의혹을 제기했다. 국정원 3차장 산하 심리전단 조직이 문재인 후보 낙선을 위해 인터넷 댓글·게시글을 활용해 불법 선거운동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날 밤 경찰과 선거관리위원회 직원들이 오피스텔에 출동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문제의 오피스텔에 있던 국정원 직원 김아무개씨가 12월13일 경찰에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노트북을 제출했다.
이때만 해도 증거 분석 시간 등을 고려해 대선 이후 수사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됐다. 12월16일 밤 11시 선거를 사흘 앞두고 서울수서경찰서는 중간 수사 결과를 전격 발표했다. 보도자료를 통해 “서울지방경찰청 증거분석팀 분석 결과 김씨의 컴퓨터에서 문재인·박근혜 후보에 대한 비방·지지 게시글이나 댓글을 게재한 사실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국정원의 문재인 후보 낙선운동 혐의를 덜어준 것이다. 김용판 서울지방경찰청장 지시였다. 결국 박근혜 후보가 득표율 51.55%로 문재인 후보(48.02%)를 꺾고 당선됐다.
5년여가 지난 2018년 4월19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국정원 직원들과 함께 조직적으로 2012년 대선에 개입한 혐의(공직선거법·국정원법 위반)를 유죄로 인정하고 원 전 원장에게 징역 4년에 자격정지 4년형을 확정했다.
2017년 5월9일 제19대 대선은 이례적인 선거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3월10일) 이후 열렸다. 국정농단 사건 수사 외에 이렇다 할 의혹 제기나 수사는 없었다. 다만 국민의당이 투표 나흘 전인 5월5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아들 준용씨 입사 특혜 의혹’을 뒷받침하는 증언 녹음파일과 카카오톡 메시지 갈무리 파일을 공개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다음날 ‘가짜’라며 국민의당 관계자들을 검찰에 고발했다. 사건은 대선 결과에 별다른 영향을 주진 못했다. 선거 결과 문재인 후보가 득표율 41.08%로, 자유한국당 홍준표(24.03%)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21.41%)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1, 2위 간 역대 최다 표차였다.
대선이 끝난 뒤인 6월29일 서울남부지검 공안부(부장 강정석)는 국민의당 당원 이유미씨와 이준서 최고위원을 문재인 대통령(당시 후보)의 아들 준용씨의 한국고용정보원 입사 특혜를 증언하는 육성과 카카오톡 대화를 조작하거나 공표한 혐의(공직선거법의 허위사실 공표)로 구속기소했다. 이들은 각각 징역 1년, 8개월 형이 확정됐다.
과거 유력한 대권 주자들은 모두 대선 후보 당시에는 검·경의 수사 칼날을 피해갔다. 제20대 대선을 다섯 달 앞두고, 공교롭게도 지지율 1, 2위를 달리는 대권 주자 두 사람과 관련한 의혹 수사가 한창이다. 더불어민주당은 10월10일, 국민의힘은 11월5일 최종 대선 후보를 선출할 예정이다. 당장 코앞에 닥친 정치 일정에도 불구하고, 검·경과 공수처가 이번에는 한 점 의혹도 남기지 않는 수사 결과를 발표할 수 있을까.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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