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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이 이재명을 못 이기는 이유

저잣거리 정서를 몰라서… 쉽게 ‘해주려는’ 이보다 어렵게 ‘해내려는’ 이에게 감정이입
등록 2021-09-11 02:36 수정 2021-09-11 09:07
2021년 9월5일 더불어민주당 제20대 대통령 후보자 선출을 위한 충북·세종 순회 경선이 열린 청주 CJB컨벤션센터에서 경선 결과를 듣기 위해 이재명 후보(왼쪽)와 이낙연 후보가 단상으로 향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2021년 9월5일 더불어민주당 제20대 대통령 후보자 선출을 위한 충북·세종 순회 경선이 열린 청주 CJB컨벤션센터에서 경선 결과를 듣기 위해 이재명 후보(왼쪽)와 이낙연 후보가 단상으로 향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네거티브를 하지 않았다면 이낙연이 이재명과의 표차를 줄일 수 있었을까.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의 첫 순회투표지인 충청에서 거의 더블스코어로 차이가 나자 다들 놀랐다. 이낙연이 제일 놀란 듯하다. 그는 9월8일 국회의원직을 내놓겠다고 했다. ‘갑자기 분위기 사퇴’라니. 실례지만 그가 현직 의원인지 모르는 국민이 더 많을 터인데…. 더블스코어의 원인을 정녕 모르는 것일까.

최근 이낙연 캠프에서 이재명의 과거 변호사비 대납 의혹 등을 제기한 것이 평소 후보 이미지와 맞지 않는 네거티브 공세로 여겨졌기 때문이란 평가가 많았다. 나는 평소의 후보 이미지 자체가 더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이낙연 캠프 한 관계자의 말에 단서가 있다. 그는 이재명은 “작업복을 입은 후보”이고 이낙연은 “모시옷을 입은 후보”라고 했다. 같은 싸움을 해도 이낙연이 불리하고 이미지도 훨씬 더 망가진다는 뜻이리라. 글쎄. 모시옷은 아름다우나 실용적이지는 않다. 게다가 모시옷 입는 국민보다 작업복 입는 국민이 훨씬 많다.

대통령은 더는 나라의 ‘얼굴’이 아니다. 나 대신에 빛내줄 이가 필요한 게 아니다. 그건 이미 우아한 김연아가 해줬고, 파워풀한 김연경이나 유능하고 성실한 손흥민이 해주고 있다. 국격이나 외교적 이미지는 결과일 뿐, 대통령은 일하는 사람이다. 기왕이면 나와 같은 눈높이에서 비슷한 정서로 일해주기를 바란다. 이는 문재인 정권을 계승하겠다는 이낙연에게 문재인 지지자들조차 마음을 모아주지 않는 이유와 연결된다. 그가 준비가 안 된 건 아니다. 정책도 국정 전반을 망라해 체계가 잘 잡혀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낙연에게 감정이입을 못한다. 틈만 나면 시대착오적인 말을 하며 허풍 떠는 국민의힘 홍준표 후보에게보다 마음이 덜 간다. 동일시되지 않아서다.

경쟁자인 이재명에게는 품위나 안정감이 없다. 때론 비겁하고 치사하다는 인상도 준다. 낯 내는 일에 몰두하고 재빨리 뻥튀기해 포장하기 바쁘다. 그런데도 높은 지지를 얻는 것은 아등바등 기를 쓰고 뭔가를 하려는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작게라도 내 삶을 바꿀 그 무엇을 기대하게 말이다.

이낙연에게는 그런 ‘저잣거리 정서’가 안 느껴진다. 싸울 때도 자기 옷이 구겨질까 신경 쓰는 것 같다. 상대의 마음보다 일관된 자기 스타일을 지키는 게 더 중요해 보인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당시의 처신이 논란이 됐을 때 이낙연은 “나는 반대했다”며 당시 ‘유이’하게 나온 반란표 중 하나가 자신의 것임을 밝혔다. 그게 전부였다. 소회도, 설명도, 하다못해 변명도 없었다. 지지자들은 물론 국민에게 큰 상처를 남긴 일이고 이낙연 스스로 민주정부의 ‘적통’을 강조하면서 불거진 논란이었는데, 지나치게 말을 아꼈다. 괜한 시비를 더할까 조심하고 선을 지키는 자세는 2인자인 ‘총리’에게 맞는 태도이지 국민의 마음을 얻어 미래를 이끌겠다는 ‘대통령 후보’가 취할 태도는 아니다.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발탁돼 호남에서 내리 4선, 전남도지사를 거쳐 문재인 정부에서 전폭적인 신임 속에 총리를 했다. 당력이 총동원된 서울 종로에서 5선 배지를 달고 총선 압승 뒤 당대표도 했다. ‘지는 싸움’을 해본 적이 없다. ‘쉬운 선거’만 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 까닭에 ‘성공 방정식’ 또한 그 한계에 갇힌 건 아닐까.

이낙연은 국회의원직 사퇴 의사를 호남권 공약발표장인 광주에서 알렸다. 배수의 진을 치겠다고 했다. 그런데 왜 결연하기는커녕 난데없어 보일까. 뾰족수가 없으니 이거라도 던져 호남의 동정표를 모아보겠다거나 이재명의 경기도지사직도 덩달아 내놓게 하려는 의도로 보이는 건 그의 깊은 뜻을 몰라서일까. 혹시라도 ‘쉬운 정치’를 이어가려는 건 아닌지 자문해봤으면 좋겠다.

그의 선의와 섬세함, 반듯함을 모르지 않는다. 그런 대통령 한 번 가져봤다. 지금은 우아하게 ‘해주려는’ 사람보다 아등바등 ‘해내려는’ 사람이 훨씬 가깝게 느껴지는 시대이다.

김소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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