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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숙 사퇴...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기 위하여

윤희숙의 뜬금 사표는 수리됐으면, 그의 ‘기분권’보다 국민의 ‘선거권’이 중요하니까
등록 2021-08-27 17:53 수정 2021-08-28 02:21
2021년 8월25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윤희숙 의원(왼쪽)의 사퇴를 만류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2021년 8월25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윤희숙 의원(왼쪽)의 사퇴를 만류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은 좋은 딸인지는 모르겠으나 좋은 정치인은 아닌 것 같다. 아버지의 농지 소유와 관련해 국민권익위원회의 부동산 투기 의혹 명단에 자신이 포함된 것이 알려지자마자 의원직을 던졌다. 자신과 가족이 연루된 문제를 책임지는 자기 방식의 정치란다. 비장한데 무슨 논리인지 모르겠다. 찔리는 게 있어 지레 입막음하려는 게 아니라면 뜬금없고도 무책임하다. 이러면 아버지의 무고함이 증명되거나 본인의 억울함이 달래지나.

서울 동대문구에 사는 연로한 아버지가 5년 전에 세종시 농지(1만871㎡)를 사들이고 임대해온 맥락을 보면 자경이 목적이었다는 주장을 선뜻 수긍하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독립생계인인 아버지의 선택이니 이후 수사에서 적절히 소명하고 응당한 처분을 받으면 된다. 그게 정치인의 책임이다. 아무도 그에게 명단에 올랐다는 이유로 대권 도전이나 의원직 자격을 묻지 않았다. 그런데도 국민권익위 조사가 “야당 의원의 평판을 흠집 내려는 것”이라면서 문재인 정권과 “최전선에서 싸워온” 본인으로서는 “위기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단다. 그래서 국회의원을 그만두겠다니, 그를 뽑았거나 뽑지 않았어도 선거 결과를 수용했던 서울 서초갑 지역구민들은 ‘구민둥절’이겠다. 과잉도 이런 과잉이 없다.

스스로를 너무 대단하게 생각해서일까. 자신의 이미지에 조금이라도 티가 묻거나 자기 말에 조금이라도 무게가 덜 실리는 걸 못 견디는 사람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종종 목격된다는 얘기는 들었으나, 이렇게 극적인 오버를 보게 될 줄은 몰랐다. 기분이 태도가 된다는 게 이런 거구나.

안 그래도 ‘나만 옳다 vs 너는 싫다’의 각축 속에서 대선이 모든 논점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과몰입한 지지자들도 양극단으로 팽팽하게 줄다리기하는 모양새다. 이 후보가 좋아서가 아니라 저 후보를 꺾을 사람이라서 지지하는 이 전쟁 같은 사랑, 아니 선거라니. 이럴수록 냉정과 열정 사이, 정신줄을 잘 잡아야 하는 게 유권자의 도리겠다.

한 친구가 이런 취지를 살려 “이재명도 걱정 말고 윤석열도 미워 말자”는 구호를 만들었다. 다른 친구가 “윤석열도 걱정 말고 이재명도 미워 말자”로 바꾸었다. 일찍이 ‘자전거 타고 자장면 먹던’ 또래 다수와 달리 ‘우이동에서 우동만 먹던’ 또 다른 친구는 “꺼진 불도 다시 보고 유승민도 다시 보자” “홍이 난다 홍이 나”를 잇따라 내놓았다. 크게 웃었지만 찔리기도 했다. 나도 내 입맛과 취향에 따른 호불호로만 후보들을 평가해온 건 아닐까. 유권자로서 이기적인 ‘자파’가 될지언정 무책임한 ‘기분파’는 되지 말아야겠다.

투표 구력 쌓이며 철이 드니 정치인들의 말의 내용보다는 태도를 먼저 보게 된다. 철학이나 가치, 정책은 혼자 구현할 수 있는 게 아니지만 태도는 스스로 벼리고 만들 수 있다. 가장 밉상은 잘못을 지적받았을 때 “쟤는 더 잘못했다”고 물고 들어가는 것이다. 특히 거대 양당의 정치인들은 이와 관련해 그야말로 ‘데칼코마니’다. 다음은 비판자에게 “네가 그럴 자격이 있느냐”고 시비를 거는 것이다. 이 역시 양당이 꼭 닮았다. 소속 의원들의 투기 의혹 전수조사 결과를 놓고 보이는 행태도 그렇다. 서로의 잘못을 지적할 때도 호들갑스럽다. 이래저래 과잉이다.

적정한 태도가 적정한 정치를 만든다. 대선 후보들은 공약에 앞서 태도부터 점검했으면 좋겠다. 태도는 모든 것은 아니지만 많은 것을 말해준다. 설득할 줄 알고, 기꺼이 변화할 수 있으며, 때론 물러서거나 질 줄도 아는 이면 좋겠다. 이런 프로 정치인은 프로 유권자가 만든다.

윤희숙 의원은 자신의 발언이 희화화되는 게 싫다고 했다. 정작 본인이 정치를 희화화했다. 사퇴 회견 뒤 기자들에게 자신의 사직안을 “민주당이 아주 즐겁게 통과시켜줄 것”이라고 했다. 통과 못 시키리란 비아냥으로도 들린다. 그의 ‘뜬금 사표’가 수리됐으면 좋겠다. 그의 ‘기분권’보다 우리의 ‘선거권’이 훨씬 중요하다.

김소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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