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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대권 경쟁, 참 지루하다

막후·패거리·세몰이 정치… 민주주의 엿 먹이는 민주당주의
등록 2021-05-22 14:51 수정 2021-05-23 02:19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더불어민주당 대권 경쟁보다 국민의힘 당권 경쟁이 훨씬 볼만하다. 초선 김은혜도 나서면서 신구 세력 교체 가능성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주는 중이다. ‘전담 마크’ 모양새도 연출됐다. 이준석은 주호영의 팔공산 등반과 아재 정신을 논하고, 김웅은 홍준표의 막말을 실시간으로 반사하며, 김은혜는 나경원으로 대표되는 돌려막기를 비판한다. 3선의 조해진은 5선의 조경태가 라디오 방송에서 과도하게 신경질 내는 바람에(진행자가 자기 이름을 실수로 얼핏 조해진이라 불렀다고) 인격은 선수순이 아니라는 사실을 엉겁결에 증명하고 말았다.

이들 될성부른 도전자는 오가는 말의 재미도 더했지만 패거리를 짓거나 세 과시를 하지 않아 인상적이다. 친이·친박이 몰락한 무주공산에 유력 대권 주자도 없이 고라니떼가 뛰노는 모습일 수 있으나, 편 가르고 패 가르던 그때 그 시절에 견주면 훨씬 낫다. 쉽사리 다시 돌아가지는 않을 것 같다. 바닥을 친 덕분이다.

민주당은 바닥을 덜 쳤다. 이미 정계 은퇴한 이해찬 전 대표 (사진)가 대권 경쟁에서 다시 호명된다. 이른바 ‘이해찬 그룹’을 넘겨받았다는 유력 주자는 이를 또 적절히 마케팅한다. 다른 주자들도 질세라 세 과시에 여념 없다. 절대 보스 체제로 굴러가던 저 당과 달리 크고 작은 군웅이 할거해온 이 당의 특징도 있겠지만, 새삼 ‘막후 정치’가 무비판적으로 용인되는 건 절로 눈살이 찌푸려진다. 계파를 빙자한 ‘세몰이 정치’에 문제제기조차 없다. 가장 먼저 대권에 도전한 동료 의원은 내내 투명인간 취급이다. 이재명계, 이낙연계, 정세균계로 불리는 이들 중 본인을 그리 부르지 말아달라는 이도 한 명 없다. 민주당의 대권 경쟁이 맥없이 지루한 건 이 때문이다. 박용진이 아까울 정도다.

이게 바로 구태다. 일찍이 이해찬이 민주당 20년 집권론을 이야기할 때 수구기득권을 부수자는 다짐이구나 싶으면서도 뭔가 굉장히 ‘언밸런스’하다고 느꼈다. 내가 계속 이길 수 있는, 경쟁 없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소리로 들렸기 때문이다. 위험한 태도 아닌가. 2020년 총선 전 민주당이 끝내 비례 위성정당을 만드는 걸 보면서 알았다. 이해찬이 생각하는 민주주의는 바로 ‘민주당주의’라는 걸. 이미 맛이 간 야당이 저지른다고 따라서 저질러버렸다. 민주당이 조금이라도 손해 보는 건 민주주의 후퇴니까! 그 난리를 치며 만든, 연동형도 아니고 준연동형인 비례대표제는 민주당의 대못질에 옴짝달싹 못하고 아무 힘도 못 썼다. 우리 민주주의가 한 단계 도약할 중대한 계기가 무참히 사라졌다. 다원주의도 다당제도 연합정치 기반도 속절없이 무너졌다.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의 말대로 “천벌 받을 짓”이었다. 이해찬과 민주당은 이에 대해 사과는커녕 안타까움도 표한 적 없다.

임기 내내 개각 국면마다 사람을 못 구해 절절맨 것도 이런 편협한 패거리주의 탓 아닌가. 7대 원칙이니 5대 원칙이니 스스로 내세운 인사 기준도 모르쇠로 누가 봐도 부적절한 후보를 데려와서는 어쩔 수 없으니 참으라고 사실상 국민을 엿 먹이는 행태를 반복했다.

정작 할 일은 하지 않는다. 중대재해를 조장한 기업도 처벌 못하고 코로나19 재난 국면에서 인내해온 소상공인에 대한 손실 보상도 제대로 못한다. 국민 반대가 드세길 하나. 전혀 아니다. 오죽하면 소상공인들이 영업 제한으로 인한 매출 손실의 20%만이라도, 스스로 연 3천만원 상한선까지 정해가지고서 보상해달라 애원하겠는가. 여당 의원은 물론 야당 의원 누구도 대놓고 반대하지 않는 시급한 조처를 내내 뭉개오다가 난데없이 입법 청문회를 연다. 대체 뭐 하자는 플레이인지 모르겠다. 기획재정부 장관 하나 다루지 못하는 대통령과 여당이라니. 이쯤 되면 집권당이 아니라 집권동아리라 불러야 하지 않을까.

이들이 진보나 개혁, 민주주의를 참칭하는 걸 참을 수 없다. 임계점이다. 권력만 잡으면 다가 아니다. 민주당은 더 깨져야 한다.

김소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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