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문재인 정부 4년] 개혁은 인사로부터…사라진 ’소득주도성장’

과거와 다른 인물로 변화 가능성 보여줬던 문재인 정부 첫 인사
등록 2021-03-13 11:53 수정 2021-03-18 01:39
2017년 5월11일 문재인 대통령이 수석비서관들과 청와대 소공원에서 걷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17년 5월11일 문재인 대통령이 수석비서관들과 청와대 소공원에서 걷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정부 4년 개혁의 여정을 돌아본다. 때로 오해받았고, 때로 갈등에 휩싸였고, 때로 믿음을 잃었다. 틀짓기(프레이밍)의 문제일 때도, 어긋난 전선의 문제일 때도, 신뢰를 구하는 방식과 주체의 문제일 때도 있었다. 흔들렸다. 흔들림은 어김없이 문재인 정부 사람들의 흔들림과 겹쳤는데, 공교로운 일 같기도 자연스러운 일 같기도 했다.
이제 ‘문재인 정부’를 빼고. 그저 2017~2021년 개혁의 여정을 생각한다. 틀짓기의 실패, 어긋난 전선, 신뢰 상실은 현실 앞에 선 모든 개혁의 고민거리다. 앞선 5명 대통령(민주화 이후) 모두 개혁을 말했고 비슷한 고민에 휩싸였으나, 누구도 성공을 말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다음 대통령, 그다음 대통령 또한 현실 앞에 비슷한 일을 겪을 터다.
여정의 시작, 개혁과 사람에 얽힌 세 번의 변곡점 그리고 지금을 짚는다. 사소한 것 같기도, 잘 수습한 것 같기도 했는데 돌아보니 아쉬운 순간들이다. 아쉬움을 곱씹는 일은, 1년 남은 정부를 향한 뒤늦은 힐난도 무의미한 체념도 아니다. 개혁의 여정은 한 정부의 여정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길고, 기니까. 정부에는 임기가 있어도 개혁에는 기한이 없으니까. _편집자주

2017년 5월. 존재가 곧 개혁이고 비전이었다. 실패한 지난 정부 반대편, 다른 사회구조를 줄곧 이야기해온 이들의 이름이 불렸다. 청와대 비서와 행정부 각료로.

“검찰 출신이 (민정수석 자리를) 독점하면서 국정농단 한 축으로 기능해왔고 지탄을 받아온” 과거와 결별하고(조국 민정수석 임명), “젊은 청와대, 역동적이고 탈권위, 군림하지 않는 청와대”(임종석 비서실장)를 만들 사람들이다. “비외무고시 출신, 우리나라 최초·최고 여성”(강경화 외교부 장관 지명)이었고, 대통령과 “개인적인 인연은 없는”(김동연 부총리 지명) 이들이었다. “철저히 시스템과 원칙에 따라 운영”(이정도 청와대 총무비서관 임명)될 청와대는 “권력기관의 민주적 통제”(민갑룡 경찰청장 지명)를 한발 앞서 증명하기로 했다.

경제·사회 구조 바꾸려던 시도

경제구조 개혁도 시작해야 했다. “단순히 한 정부가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이미 한국 경제, 한국 사회가 어떤 변곡점을 아주 힘들게 지나가고” 있었으니까.(김수현 사회수석비서관 첫 브리핑) “과거 재벌, 대기업 중심 경제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사람 중심, 중소기업 중심으로 경제·사회 정책을 변화시킬 최고의 적임자”(장하성 정책실장 임명)가 불렸다. 국민 삶 전반을 아우르는 큰 시야와 걸맞은 재정이 필요했다. 흔히 ‘모피아’로 부르는 재무부 출신이 아닌 예산 관료, 무엇보다 “거시적 통찰 능력을 갖춘, 판잣집 소년가장에서 출발해 서민들의 어려움을 공감할 수 있는”(김동연 부총리 지명) 관료를 나란히 지명했다.

자산 격차의 핵심이 된 부동산은 더는 경기 부양 정책이 아니라 “주거 문제를 해소하고 도시재생 뉴딜 사업 성공, 그리고 이를 통한 일자리 창출”(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을 이끄는 주거 정책, 일자리 정책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개혁에 있어 경제 문제에서의 잘못도 실은 정치 문제에서의 잘못”(김기원, <한국의 진보를 비판한다>)이라는 교훈도 알고 있었다. “당정 협의뿐만 아니라 야당과의 소통에 온 힘을”(이낙연 국무총리 임명식) 다하겠다고 자주 다짐했다.

그렇게 국회의원(출신) 11명, 학자 12명,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3명, 그 밖의 정당인(여당 의원 보좌관, 지역 의원 등) 9명이 문재인 정부의 첫 인사로 청와대에 들어갔다(청와대 비서관급 이상). 변화의 가능성을 품은 이들이다. 지속성과 안정적 관리를 장점으로 치는 기존 관료 출신은 10명뿐이다. 2017년 8월, 문재인 정부 100일을 보내고 <한겨레21> 제1175호는 “초기부터 개혁의 고삐를 강하게 죄고 있다”고 평가했다.

매해 굽이친 개혁 여정

개혁의 여정이 시작됐다. 고삐 쥔 개혁 과제는 매년 굽이쳤다. 더는 사람을 앞세워 개혁과 비전을 전하지 않는다. 인물 구성은 변했다. 아직은 성과보다 논란으로 기억되는 개혁 과제가 더 많다. 소득주도성장 논란(44~45쪽), 검찰 개혁 논란(46~47쪽), 부동산 가격 폭등 논란(48~49쪽). 때로 빨리 뒷걸음쳤고, 때로 늦은 결단으로 지탄받았다.

2017년 5월30일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청와대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17년 5월30일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청와대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18년 11월. 대통령 국정 지지율은 55%(한국갤럽 조사, 2018년 11월 첫째 주)다. 1월만 해도 70%를 넘겼는데. ‘경제·민생 문제 해결 부족’ ‘정부 내 갈등’ 탓에 지지율이 떨어졌다고 분석한다. 최저임금 인상,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을 사이에 두고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언쟁을 벌였다더라’ 뒷말이 무성하다. 이런 상황, 개혁을 내건 정부의 대응은?

함께 물러난 ‘경제 투톱’

김동연 부총리와 장하성 실장이 나란히 자리를 물렀다. 김수현 사회수석을 정책실장으로 임명했다. “일을 만들고 되게 하는 원팀(one team)으로서 호흡을 맞춰나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당부를 잊지 않았다. 또한 단어를 바꿨다. 소득주도성장, 분란의 씨앗인 그 단어는 이날 새 부총리와 정책실장을 소개하며 단 한 번 등장한다. 대신 ‘포용적 성장’이라고 했다. 경제·사회 구조 개혁을 상징하던 단어와 사람이 바뀌었다. 어딘지 꼬인 것만은 분명하다. 논란은 진정된 것 같다.

2018년 한국의 현실, “외환위기 같은 특수 상황이 아니고, 개혁 추진 세력의 압도적 권력자원이 부재하며, 영국처럼 다수제 정치의 전통이 작동하지 않고, 사회집단 간 이해구조가 극단적”이다. 이런 공간에서 개혁은 “이해당사자들과 정부, 정치권과 국민이 함께 참여해 정치적 논쟁과 설득, 주고받기식의 정치적 타결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정치적 방식일 수밖에 없다”.(고원, ‘권력행동이론의 관점에서 본 사회개혁의 성과 결정요인’) 정책 또한 정치적 과정이다. 첫걸음은 더 많은 이가 비슷한 방식으로 사회문제를 인식하고, 필요한 개혁의 의미를 깨닫는 데서 시작한다. ①개혁의 특정 부분을 선택하고 ②적절한 이름을 붙이고 ③절박함과 중요성을 뒷받침할 서사를 만들어 ④합의를 유도하는 노력. ‘프레이밍’(틀짓기)이다.

소득주도성장의 틀짓기는 어땠나? ②소득주도성장, 낯선 이름이 경제구조 개혁의 앞자리에 놓였다. ①이 이름으로 설명할 수 있는 숱한 대목 가운데 정부가 선택한 건 ‘최저임금 16.4% 인상을 통한 저임금 노동 해소’다. 한계기업과 영세자영업자는 반발했다. 저임금 노동자의 복지 수준 확대를 자영업자에게 떠맡기는 셈으로 느꼈다. 소득주도성장이 분배 정책으로 소개된 탓에 시장 내부의 분배 대 성장, 익숙한 갈등 구도가 반복됐다. ‘일자리 안정자금’으로 고용을 유지하는 자영업자한테 재정 지원을 하겠다고 정부도 고통 분담 의지를 밝혔다. 다만 “한시적”이라고 못박았으므로 사회안전망 수준은 못 됐다.

정책명·리더 교체가 가져온 ‘움츠림’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곧장 나왔다. 반발에 부딪혀 새로운 관점의 ③이야기(서사)를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정부는 그저 “심각하게 고용이 줄지 않는다”고 비판하는 쪽이 만든 틀(고용 논란)에서 반대 자리에 섰을 뿐이다. 보통 30만 명씩 늘어나던 취업자 수는 2018년 9만7천 명 늘어나는 데 그쳤다. 정부가 틀린 걸까? 마침 경기둔화가 시작된 시점이다. 고용 감소는 최저임금 탓인가, 경기둔화 탓인가. 이미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개혁의 틀은 최저임금 인상이라는 단일 정책 수준으로 좁아져 있다. 정부와 비판자들은 ④합의 불가능한 논란을 맴돈다.

다른 가능성은 없었을까. 소득주도성장은 보기에 따라 경제·산업 정책과 사회·복지 정책의 통합적 접근을 시도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김대중 정부의 개혁을 한국 복지정책의 시작점이라고 하지만, 동시에 시장에서 불평등은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가 자리잡았다. 30년 동안 우리가 깨달은 것은 노동시장 구조, 산업정책이 함께 변하지 않은 채 복지 규모를 확대해봐야 불평등은 해소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최저임금 인상의 경우 한계기업, 자영업의 고통은 당연히 예상할 수 있다. 다만 이 고통을 어떻게 보완하며 산업구조를 고도화할지에 대한 논의로 만들지 못했다.”(윤홍식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고임금·고비용, 다만 이를 고부가가치와 사회안전망으로 만회하겠다는 ‘이야기’는 소득주도성장 논란에서 자리를 못 잡았다. 어쩌면 사회안전망을 크게 손질하는 복지정책의 시작점, 어쩌면 산업구조 고도화 정책의 시작점일 수 있었다.

1년 반을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인물이 바뀌고 단어 하나가 사라진 일은 어찌 보면 사소하다. 소득주도성장 대신 택한 단어, 포용적 성장의 의미도 경제정책과 복지를 함께 담는 건 비슷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쓰는 좀더 보편적인 언어이기도 하다. 또한 사람은 시점과 필요에 따라 바뀔 수도 있다. 그러나 사소할 수 없었다. 이름과 사람의 단순한 교체를 넘어 ‘움츠림’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경제에 대한 정부의 걱정과 관심은 이 시점을 거치며 “활력” “기업 투자” 같은 단어로 표현되기 시작한다. 구조 ‘개혁’에서 지표 ‘관리’로 옮아간다. “특별히 주문하고 싶은 게 있다. 우리 기업의 활력이 떨어지고 투자 의욕이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현장과 직접 소통하며 목소리를 듣고 기업의 투자 애로가 뭔지 그 해결책이 어디 있는지 방법을 찾는 데 각별히 노력해달라.”(문재인 대통령, 홍남기 부총리 임명식)

사회적 대타협은 어려워지고

개혁 전반에 걸쳐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사회적 대타협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주 52시간 근무제 대응 방안(탄력근로제) 같은 현안에만 집중했다. 경제와 복지 전반을 아우르는 대타협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한정된 주제로 각각 갈린 타협 테이블 안에서 갈등하는 주체들이 주고받을 것 자체가 없었다.”(윤홍식 교수) 경사노위는 별다른 관심을 얻지 못했다. 또 한편 중요한 구조개혁 과제인 국민연금 개혁안은 국회로 넘어갔으나 제대로 논의 한번 해보지 못했다. 국회도 움츠렸다.

2021년 정책실 소속 수석비서관 이상 네 자리(정책실장·경제수석·사회수석·일자리수석) 가운데 안정성을 장점으로 보는 관료 출신이 3명이다. 학자 출신은 김상조 정책실장이 유일하게 남아 있다. 김상조 실장은 2020년 말 사의를 표명했으나, 반려됐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특별한 설명이 없는 인용 문장은 모두 청와대 인선 발표 자료에서 따왔다.

*표지이야기 2부 - 국정 이슈 삼킨 ‘검찰 개혁’으로 이어집니다.
http://h21.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50090.html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