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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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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과 안철수의 별별 순간

서울시장 후보 되기가 서울시장 되기 보다 어렵네
등록 2021-03-12 17:02 수정 2021-03-13 01:49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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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 밖의 역전으로 ‘별의 순간’에 놓인 오세훈(사진 왼쪽) 국민의힘 후보와 그에 앞서 예상 밖 선택으로 ‘별의 순간’을 쥔 안철수(오른쪽) 국민의당 후보를 보면서 ‘오랜 이웃 모드’가 발동했다. 심란하던 옆집 아이가 어느새 자라 심부름도 하고 쓰레기 분리배출도 하는 멀쩡한 모습을 보는 기분이랄까. 4·7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두 사람이 보수 우파를 대표하는 얼굴로 추려진 것은 의미 있는 진전임이 틀림없다. 어쩌면 박근혜 탄핵의 뒷정리를 이제 시작한 것일 수도 있겠다. 그동안 어지럽혀진 그 구역을 팔 걷어붙이고 치우는 사람이 도통 없었다.

각 당의 후보로 확정된 두 사람이 단일화를 준비하며 가장 먼저 한 일은 심야 맥주 회동에서 마음을 확인한 일이었다. 둘 다 절실하고 절박하다. 다만 단일한 서울시장 후보가 되는 일이 서울시장 되는 일보다 어려워 보이는 게 문제다.

누가 유리할까. 오세훈은 상승기이고 안철수는 정체기이다. 당의 한계에 갇힌 오세훈보다 안철수가 확장성은 더 있다. 선거는 조직 싸움이기도 하다. 그 점에선 오세훈이 낫다. 어금버금하다. 강력한 존재감을 뿜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대권 등판 예감에 다들 정신이 팔려 여론도 미지근하다. ‘훈수’조차 두지 않는다. 알아서, 잘, 하라는 식이다.

두 사람 모두 어떻게든 단일화는 해야 한다고 여긴다. 그런데 어정쩡한 상태로 시간이 흐를 공산이 크다. 안철수는 최대 야당인 국민의힘 지지를 보장받으려면 입당이나 합당을 (약속이라도) 해야 하는데 그 순간 중도 표는 이탈할 게 뻔하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국이다. “나여야만 이길 수 있다”는 후렴만 되풀이한다. 그런 안철수를 상대로 협상하다 막판에 여차하면 던지고 곧장 대권 항해에 나설 작정이었을 오세훈은 윤석열이라는 거대한 암초에 걸린 모양새다. 딱히 플랜 비(B)도 없어 보인다. 선거대책위 면면을 봐도 바른정당 그룹이 그대로 옮아왔다. 당내에서 일사불란한 지지를 받기도 어려운 셈이다. 여론조사든 참여경선이든 결과에 따라 한 명은 돌이키기 힘든 타격을 입는다. ‘별의 순간’은 딱 거기까지.

세력으로나 개인으로나 절체절명인데, 구도나 수 계산은 잘 안 된다. 이럴 땐 그냥 ‘고’다. 각자 자기 스타일대로 정직하게 요행을 바라지 말고 하는 거다. 적시에 치고 들어오듯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 감각은 안철수가 10년 정치하면서 얻은 성과일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에 대구로 달려간 것 다음으로 잘한 일이다. 다만 몇 달이 지나도록 사람들은 그가 왜 서울시장을 해야 하는지, 뭘 하겠다는 것인지 도무지 알지 못한다. 맹렬한 ‘반문재인’ 주장만 반복하는 탓이다. 상대는 싸울 의지도 정신도 없는데 싸움을 거는 것으로 보인다. 유권자는 덜 미운 사람만큼이나 덜 피곤한 사람을 원한다.

오세훈은 시장 경험을 들어 업무 첫날부터 바로 결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누가 해도 별로 잘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이미 안다. 악담이 아니다. 굳이 시장이 잘할 이유가 없어서다. 어떤 사람이 리더가 되느냐에 따라 세상이 바뀌는 시대가 아니다. 시정은 시스템과 민심이라는 쌍끌이로 굴러가게 돼 있다. 지금도 권한대행 체제로 무탈하지 않나. 시장은 책임과 권한이 남다른 행정노동자일 뿐이다. 그러니 오세훈은 “잘할 수 있다” 말고 “잘하고 싶다”로 메시지를 바꾸는 편이 좋겠다. 실제 그의 당내 경선 승리에는 겸손함이 가장 큰 위력을 발휘했다.

잘 마시지도 못하는 맥주잔 놓고 허심탄회한 분위기 더는 연출할 필요 없다. 각자 좋아하는 거 그냥 마시라. 그리고 실력으로 승부하라. 마음을 얻는 실력 말이다.

(느닷없이 정계 복귀를 선언한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대표를 만나고 안 만나는지가 적잖은 유권자의 채점 항목에 들어 있으리라는 사실을 참고로 귀띔한다. 그나저나 이분은, 아무도 안 물어보고 안 궁금해하는 와중에 어디에서 어디로 복귀하신 걸까.)

김소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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